취재 조나리 기자 jonr@naeil.com
도움말·사진 김영진 교사(세종 소담고등학교)
고3 2학기 수업 공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하지만 학교는 문을 열고 있고,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3학년 2학기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닌,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 될 수는 없을까요?
4년째 고3을 맡고 있는 세종 소담고 김영진 쌤은 매년 9월 수시 원서 접수가 끝날 때마다 이 같은 고민에 휩싸였답니다. 사실 고3 수업은 2학기부터 어려운 상황인데요.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막바지 준비에 정신이 없고,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학교 수업이 모두 본인의 수능 선택 과목과 관련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진짜 문제는 수능도 보지 않는 학생이랍니다.
“10월 초가 되면 면접 준비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면접조차 없는 학생들,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조퇴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은 점점 늘고 수업도 진행이 안 되죠. 그렇지만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은 뭔가 배워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짧지도 않거든요. 석 달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죠.”
문제의식을 공유한 김영진 쌤과 3학년 교과 쌤들은 틈틈이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갔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고3 전환기 교과 특색 프로그램’. 마침 수행여행 지원금이 꽤 남아서 각 교과 쌤들에게 수업에 필요한 예산 신청도 알뜰살뜰 받았죠.
“거의 대부분의 교과에서 다 참여했습니다. <지구과학Ⅱ> <화학Ⅱ> <생물Ⅱ>와 같은 과학 심화 과목들이 좋은 사례였는데, 세 과목이 환경을 주제로 융합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체식 식단을 짜서 요리도 하고 커피 찌꺼기로 화분도 만들고요, 학교 주변에서 쓰레기 줍기 활동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께서 불편하시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학생들 반응도 좋았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고3 2학기 교실이 활기찬 교실로 변했거든요. 사회 교과를 담당하는 김영진 쌤도 학생들과 도서관에서 다양한 독서 활동을 했습니다. 평소 수업도 안 듣던 학생들도 이번 활동을 계기로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3학년 교실이 활기를 띠니까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바람직한 일이죠. 다만 첫 시도다 보니 이벤트성 프로그램들이 좀 있었어요. 학생들도 초반에는 귀여운 저항을 하기도 했고요. 쉬고 싶다는 거죠. 하하. 그러다 보니 힐링이나 만들기 수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요.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면 좀 더 오랜 시간을 두고 준비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꼭 배워야 할 것들이 있잖아요. 노동이나 인권, 다양성과 같은 거죠. 교과 간 융합 수업도 좋고요. 학생들의 너무나 소중한 10대 후반이 세상의 가치와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라떼는…’이 유행할 만큼 빠르게 바뀌는 사회,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유쾌한 쌤들과 발랄한 학생들이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죠. 소소하지만 즐거운 학교 풍경을 담아보려 합니다. 우리 학교 이야기를 알리고 싶은 분들은 이메일(jonr@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 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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