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침공’은 지난해 정시에서 자연 계열 지망 학생들이 합격선이 보다 더 높은 대학의 인문 계열에 지원·합격한 현상을 말한다. 올해도 정시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고등학생은 물론 고교 선택을 앞둔 중학생에게도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교과 성적이 통합 산출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대입에서마저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그렇다보니 자연 계열 학생이 적은 학교를 찾아 외고·국제고 진학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문 계열 성향 학생들을 위한 고교 선택 기준을 짚어봤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도움말 김학수 소장(대치입시연구소길)·이치우 입시평가소장(비상교육)·임태형 대표(학원멘토)·전천석 소장(삼선대학입시연구소)
통합형 교육과정·달라진 대입
자연 계열 지망 학생 적은 고교 찾아라?
2022학년 대입에서는 자연 계열 학생들의 ‘교차지원’이 화제였다. 수능 체계가 바뀌고, 주요 대학의 정시 선발 비중이 40%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교차지원 규모가 예상을 웃돌았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수시에서 학교장 추천 형태의 학생부 교과 전형도 확대됐다. 교과 성적이 주요 전형 요소인데,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적용하는 곳이 많다. 이 같은 대입 환경의 변화는 고교 선택 기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문 계열 성향의 중학생과 그 학부모들은 더 고민이 크다. 입시에서 변별력이 큰 수학 교과에서 계열 구분 없이 수험생 성적이 통합 산출되다 보니 이전에 비해 교과 등급이 하락한 데다, 지난해 바뀐 수능에서 수학 선택 과목에 따른 차이가 더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 따라서 약점이 덜 부각될 학교를 우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특히 외고·국제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교육과정 특성상 자연 계열 성향 학생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작년까지의 약세를 딛고 경쟁률 상승을 예측하는 이도 나온다. 2022학년엔 전국 30개 외고의 절반인 15개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평균 경쟁률은 0.98:1이었다. 경쟁률은 2020학년 1.37:1. 2021학년 1.04:1로 3년간 감소세를 이어갔다.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학교는 2020년 2개교에서 2021학년 14개교로 증가세를 기록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2025년 일괄 폐지될 예정이었던 외고·국제고·자사고가 정권 교체 후 존치될 가능성이 높아져 교육 특구 인근 혹은 대입 실적이 우수했던 학교를 중심으로 지원이 늘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진로 진학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강조한다. 비상교육 이치우 입시평가소장은 “자연 성향 학생이 없다지만, 비슷한 성향과 학업 수준을 가진 학생들이 밀집한 곳이 외고·국제고다. 교과 성적 경쟁에 대한 체감도가 자연 계열 학생들이 모인 학교와 유사하거나 더 높을 수 있다. 같은 유형 안에서도 학교에 따라 교내 프로그램의 질이나 대입 실적이 차이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고교 선택의 제1기준은 학생의 소질과 적성이다. 여기에 상위권 대학 진학을 염두에 뒀다면 주요 대입 전형의 특성까지 파악하고, 자신의 성향 등과 견주어 고교 선택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교 선택 체크 포인트
.CHECK POINT 01_ 교과 성적+수능.
교과 영향력 커진 대입, 일반고 이점 커져
최근 대입 학생부 위주 전형에서 교과 성적의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형을 불문하고 학업 역량이 중요한 평가 요소이고, 학생부 기록이 간소화되며 상대적으로 학생부의 교과 학습 발달 상황에 기록되는 성적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의 영향력이 커진 영향으로 보인다.
삼선대학입시연구소 전천석 소장은 “최근 대입은 교과 성적과 수능의 영향력이 커졌다. 지난해 확대된 교과 전형은 교과 성적이 주요 요소이며, 수능 최저 학력 기준 충족 여부가 합격을 좌우한다. 또 고려대 학업 우수형, 연세대 활동 우수형 등 일부 대학은 종합 전형에서도 최저 기준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지망 계열을 불문하고 입학 후 교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고교에 진학하면 대입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조언이 많다. 특히 인문 성향 학생들은 정시에서 교차지원을 하는 자연 성향 학생들로 인해 선호도 높은 대학·학과 진학이 힘들어질 수 있어 수시를 중심으로 대입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데, 교과 성적의 영향력이 크다. 학생 수가 적거나 비슷한 학업 수준의 학생이 몰려 있는 학교보다는 모집 인원이 많고 다양한 성적대의 학생이 포진한 학교가 성적 경쟁이 덜하다. 일반고가 특목·자사고에 비해 이런 성향의 학교가 많다. 특목고와 비교해 진학 후 세부 계열이나 전공을 더 폭넓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일반고 진학의 강점이다.
학원멘토 임태형 대표는 “일반고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때보다 대입에서 이점이 많다. 상위권 대학의 추천형 교과 전형, 지역 대학의 지역 인재 전형에 유리하다. 교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종합 전형 지원도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CHECK POINT 02_ 교육과정.
인문 성향 강점 발휘할 종합 전형
고2 때부터 배울 과목을 선택하게 된 후 교육과정은 고교 선택의 주요 요소로 주목받았다. 소질이나 적성에 맞는 교과 혹은 희망 전공·진로와 관련 있는 교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학교가 종합 전형 지원 시 유리하다는 인식에서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대치입시연구소길 김학수 소장은 “특히 인문 성향 학생은 현재 대입 구조상 종합 전형이 유리하다. ‘문과 침공’은 정시에 한정된다. 수시는 계열·전공별로 지원하고 평가받는다. 교과 성적이나 수능에서 자연 계열 학생들에 비해 낮은 성적을 받은, 비슷한 상황의 학생들끼리 경쟁한다. 게다가 종합 전형은 성적과 고교 학습·활동을 살핀다. 교과 등급 이면의 내용을 보기에 인문 성향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목고 강점 있지만 내실 따져야
인문 성향 교육과정이 잘 구축된 곳으로 외고·국제고가 꼽힌다. 최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주요 대학 종합 전형 신입생의 출신 학교 현황에서 외고·국제고의 비중이 상승한 것도 교육과정의 영향으로 보는 이가 많다. 이 입시평가소장은 “추천형 교과 전형이 확대되면서 수시가 교과와 종합으로 양분화됐다. 외고·국제고 학생은 정시나 교과에서는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려워 종합 전형에 쏠린다. 과거에 비해 지원 대학의 폭도 넓어졌다. 특히 상위권 대학의 어문 계열 전공 모집 인원이 상당하다. 외고·국제고는 이들 학과와 연계성이 높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지원자도 많고 평가에도 부합해 합격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를 고려하면 외국어 분야에 관심이 높고 어문·국제 계열 전공을 희망할 경우 외고·국제고 진학을 고민해볼 만하다. 다만 선호도 높은 대학에서는 외고·국제고 일부 학교에서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과목 선택이나 교내 활동에 대한 참여를 넘어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참여하고 소화했는지 눈여겨보기 때문이다.
최근 일반고 중에서도 교과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활동의 질도 우수한 학교가 있고, 특목고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진학 후 어느 정도의 교과 성적을 확보할 수 있는지도 가늠해둘 필요가 있다. 전 소장은 “특목고 진학 후 5등급 이하에 머문다면 눈높이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기 힘들다. 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교과 성적도 유지해야 해 ‘멀티플레이어’ 성향이 강하고 멘탈도 뛰어나야 한다. 고교 선택 시 학생의 입학 후 적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여러 대학의 선택 과목 이수 안내에 따르면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에 비해 대학 공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교과목이 많지 않다. 위계 있는 학습을 요구하는 교과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데 경영·경제나 심리 등 상경·사회과학 계열에 <미적분>이나 <생명과학Ⅰ> 이수를 권장하는 사례가 있다. 외고·국제고는 이런 과목을 제대로 개설하기 어렵고, 일반고나 자사고는 선택이 가능한 것처럼 안내하나 실제 운영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관심 전공과 관련 있는 교과목의 개설·운영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전 소장은 “진학 희망 학교의 교육과정이 얼마나 내실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있어 보이는 과목 선택, 활동의 양은 대입에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적지 않은 학교가 <확률과 통계> <미적분> 중 하나만 이수할 수 있게 하거나, 인문 계열 학생들은 과학탐구 과목이 특정 과목으로 쏠릴 수밖에 없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데다, 대입에서 권장 과목을 이수한 학생에 비해 불리할 수 있다. 재학생에게 물어보거나 학교 알리미에서 진학 희망 학교들을 검색해 ‘평가 계획서’를 살펴보면 실제 운영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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