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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7호

지역 우수고 따라잡기 | 경북 풍산고

공교육의 힘 보여준 풍산고 "IB로 한 번 더 도약한다”

경북 풍산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농어촌 자율학교다. 지역 인구 유출과 학생 수 감소로 위기를 맞았으나 2002년 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100% 보장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다양하게 개설한 실험·과제 탐구 과목은 물론, 다채로운 비교과 프로젝트 및 진로 프로그램은 학생의 역량을 높이면서 진로를 깊이 모색하도록 돕는다. 이는 입시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학년당 4학급의 소규모 학교,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주변 환경에도 매년 지원율이 3:1을 웃돈다.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과 2028 대입 개편을 앞두고 다시금 ‘공교육의 역할과 방법’을 찾아 나선 풍산고를 찾았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의종·풍산고






폐교 위기 벗어나 가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

‘산골 학교의 유쾌한 반란’ ‘작지만 강한 학교’ ‘대도시 부럽지 않은 지역 일반고’.

언론이 풍산고에 붙인 말이다. 2000년대 초 폐교 위기에 직면했다가 2002년 6월 자율학교 지정 이후 10년이 지나지 않아 우수한 수능 성적에 힘입어 대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 주목받았다. 당시 전국 단위 선발권을 얻은 후, 소규모 수준별 수업, 방과 후 학습 및 자율학습, 기숙학교의 이점을 살린 선후배 멘토링 등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학업 역량 향상을 이끌었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주변 환경을 학교생활에 몰두할 동력으로 삼아 수능 중심 전형의 대입 환경에 맞춰 교육과정을 운영한 것이 도약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이 경험은 풍산고가 선택형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된 대입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발판이 됐다. 풍산고 이준설 교장은 “또 한 번 급격한 학생 수 감소가 예고된 시점이었다. 당시 재학생이 수능에서 충분히 성과를 냈지만 고민이 컸다. 수능은 특성상 사교육에서의 연습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수능을 안 보고도 대학 진학이 가능해지면 상위권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 뻔했다. 종합전형의 확대도 위기였다.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소규모 학교라 내신에선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학교의 경쟁력과 학교 교육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학생 중심 수업의 비중을 높여 역량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교사가 외부 연수와 수업 코칭을 받고, 전문적 학습 공동체도 여럿 운영하며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원하는 과목 100% 개설
학교생활·대입 컨설팅도 제공

풍산고는 2018년부터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100% 보장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풍산고 미래전략기획부장 임지영 교사는 “신청자가 4~5명인 과목도 개설한다. 다양한 진로선택 과목은 물론 <고급물리학> <고급화학> <고급생명과학> <물리학실험> <화학실험> <생명과학실험> <국제관계와 국제기구> <세계문제와 미래사회> 등 심화 과목도 다수 제공한다. 정보·수리·과학 융합 교과 특성화학교로 지정된 만큼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관련 과목도 여럿 운영한다. 모든 수업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비롯해 토론과 발표, 심화 탐구를 학생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는 것 또한 풍산고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수업뿐만이 아니다. ‘진로 맞춤 창의 연구’ ‘과학탐구 실전 프로그램’ ‘토론 기반 융합 탐구 프로그램’ ‘독서 프로그램’ ‘인문학 콘서트’ ‘학술제’ 등 학생들이 수업에서 얻은 호기심을 해결·발전할 수 있는 비교과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운영한다.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특히 담임 교사와 협업한 ‘교육과정·진로 상담팀’은 학생 개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과목·비교과 활동을 선택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해나가도록 개인 컨설팅을 수시로 제공한다. 이는 대입, 특히 수시에서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내후년 IB 과정 도입… ‘공교육 모델’ 제시할 것

내년 고등학교 신입생은 교육과정부터 대입까지 변화가 크다. 고교 선택을 앞둔 중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선 불안감이 높다. 풍산고는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로 운영 기반을 마련한 데다 2023년 농어촌 소규모 일반고의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학교 맞춤형 교육과정 모델도 개발하며 안착 중이다. 새로운 도전도 시작한다. 올해 경북도교육청의 국제 바칼로레아(IB) 관심학교에 선정, 내후년에 후보학교로 IB 과정을 도입한다. IB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개념 이해와 탐구 학습·활동을 통한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학교 교육 체제로, 토론 위주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가 특징이다.

이 교장은 “교육과정과 대입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과도기에 학교가 쌓아온 선택형 교육과정과 학생 중심 수업을 강화하면서, 수능의 영향력에선 벗어날 방안으로 IB를 선택했다. 고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하고, 지금까지 학교가 쌓아온 역량이라면 국제 인증을 받는 데 무리가 없다고 자신한다.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INI INTERVIEW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답은 학교에 있다…공교육 모델 제시할 것”



이준설 교장
경북 풍산고


Q. 전국 단위 모집이 가능한 농어촌 자율학교다. 학교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현재 대입 체제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서 교육과정 또한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는 생각이다. 학생·학부모 친화적 교육도 한몫했다고 본다. 매주 인원에 상관없이 직접 설명회를 진행한다. 특히 10월 말부터 원서 접수 전까지 진행하는 1:1 개별 상담에서는 입학 가능성을 넘어 학교의 특성이나 수업의 특징, 기숙생활 문화 등을 상세히 안내하며, 여러 고민도 나눈다. 그래서인지 내신 부담이 상당한데도 수업은 물론 비교과 프로젝트에도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며, 중도 이탈률 또한 매우 낮다. 학교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이해하고 입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소규모 학교인데 다양한 수업을 대면으로 제공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인근 학교와 거리가 멀고, 실험·탐구 수업은 비대면 수업이 어려워 대면 수업을 진행한다. 교내 선생님만으로 지도가 어려운 경우 대학에서 강사를 초빙한다.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최신 실험 기기를 구비한 과학실만 3개이고, 교내 식당, 소·중·대강당, 세 동의 기숙사, 학록 창의관, 서애 도서관 등을 갖춰 학생들의 쾌적한 학교생활을 돕고 있다. 재단 회장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 미국 명사 초청 강연은 학생의 시야를 넓혀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Q. 기숙학교라는 점도 풍산고의 특징 중 하나로 꼽는데?

학교는 지식 전달 외에 올바른 사회 구성원을 길러낼 의무도 있다. 월 1회 외출이 허락되는 기숙생활을 3년간 하는 것은 요즘 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성장 배경도 다양하기에, 생각지 못한 마찰과 갈등이 발생한다. 그 안에서 배려하고 인내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다 보면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4인 1실 기숙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다. 선후배-동료 학생 간 학습 멘토링부터 다양한 탐구 협업까지 하며 학업·진로 역량도 키워간다.


Q. 고교 교육·대입 환경에 맞춰 도전을 거듭한 이유와 동력은?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시대, 학교에서 문제 풀이 훈련에 집중한 학생이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지속가능한 가치를 추구하고 공교육의 힘을 보여줄 학교의 모습을 고민하다, 학생 스스로 고민하고 성장하는 수업에 중심을 둔 교육과정에 무게를 두게 됐다. 현재 재학생의 55%가 종합전형 등 수시로 대학에 진학한다.


Q. 고교학점제와 2028 대입 개편을 앞두고 IB에 도전한 이유는?

고교학점제는 이전 교육과정보다 더 학생 선택권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재 대입 체제에선 학생들이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적성과 진로에 맞게 수업을 선택하기도, 탐구·토론·발표 수업을 하기도 어렵다. 9개 교과 외에는 상대평가를 하고,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선발 비율 40% 이상 규정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상대평가에 대한 부담이 크다.

IB 교육과정은 풍산고의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유지·강화하면서, 종합전형의 평가 기준에 부합하며 외국 대학 입시에도 활용 가능해 대학 진학 면에서도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도전했다. 교육과정과 대입의 불일치가 계속되고 있지만, 학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풍산고의 도전이 공교육의 역할을 돌아보고 발전시키는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


Q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급함을 내려놓길 바란다. 학교 특성상 신입생 대부분이 선행학습을 하지만, 하지 않는 학생도 꽤 있다. 입학 후 지켜보면 평균 성적은 비슷하다. 오히려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의 상승세를 종종 확인한다. 이유를 찾다 ‘수업에 대한 기대감’이 다름을 발견했다. 진도만 나간 선행학습은 기초 실력을 쌓기 어렵고,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학교 수업에 소홀케 하며, 시험에 대한 부담은 높인다. 반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은 수업에 집중하고, 실력을 쌓고 성적도 상승하는 재미를 느낀다. 현재 공부를 탄탄히 하고, 책이나 여행을 통해 경험을 쌓길 바란다. 조부모의 마음으로 거리를 두고 자녀와 교감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학생이 말하는 풍산고/


"학원 안 다녀도 바쁜 학교생활,
고민하며 성장하는 ‘즐거움’ 만끽 중”


2학년 김지민(왼쪽) 권은체



Q 풍산고 진학을 결심한 계기는?

권은체_ 언니가 풍산고 출신인데, 집에 오면 표정이 정말 밝았어요. 고등학생인데…. (웃음) 학교 수업이나 진로에 대해 즐겁게 얘기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생활하며 자신감도 커졌더라고요. 집이 경기 오산이라 멀긴 하지만, 언니처럼 고교 생활을 해보고 싶어 풍산고에 지원했습니다.

김지민_ 같은 재단인 풍산중 출신이에요. 학교 건물을 같이 쓰고 교류도 많아요. 학생회에서 풍산고에 진학한 선배에게 고교 생활을 물었는데 다양한 탐구 활동이 즐겁다고 하더라고요. 강의식 수업보다 흥미 분야를 파고드는 학술적 활동을 하고 싶었기에 진학을 결심했죠.


Q 지금까지의 학교생활에서 자신을 가장 성장시킨 수업, 활동을 꼽는다면?

권은체_ ‘진로 맞춤 창의 연구’요. 고1 때 기사를 보다 심각한 농약 피해를 알게 됐어요. 개선 방안을 찾다 ‘친환경 페로몬을 활용한 해충 방제’를 알게 됐어요. 학교 정문 옆 밭에 작물을 심는 ‘농심 활동’을 하며, 인공 합성 페로몬을 활용해 트랩을 제작·설치, 해충을 포획하는 실험을 했어요. 이후 농생명과학, 환경 분야에 관심이 생겨 학교의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스마트팜을 견학했고, 현재는 다음 연구를 기획 중이에요. 수업도 <미적분> <물리학Ⅰ> <생명과학Ⅰ·Ⅱ>나 실험 과목 등 수학·과학 위주로 선택했어요.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학교 일정이 빠듯하지만 제가 선택한 학교인 만큼 후회하기보다는 과정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풍산고에 오지 않았다면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못했을 활동이라 더 기억에 남아요.

김지민_ ‘토론 기반 융합 탐구’를 꼽고 싶습니다. 관심 분야가 비슷한 학생끼리 모둠을 구성해 1차 토론을 한 다음, 각자 진로에 맞춰 심화 탐구를 해요. 지난해 주제는 학생 참정권이었어요. 찬성 입장에서 토론했는데, 상대 편에선 청소년이 포퓰리즘에 더 취약하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개진했어요. 그 의견에 의문이 생겨 포퓰리즘의 개념과 특성에 대해 탐구하고, 설문조사를 진행해 학생들이 실제 포퓰리즘에 취약한지 실증적으로 연구했죠. 평범한 이슈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 실제 생활과 관련 깊다는 점이 흥미로워 사회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다만 학문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인문 계열의 특성상 관심 분야가 바뀔 수도 있어 수업은 경제 이해에 도움이 될 <미적분>, 인문학의 기반인 <세계사>도 이수하고 있어요. 자신을 알아가며 필요한 걸 배울 수 있는 학교 프로그램이 많아 좋아요.


Q.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권은체_ 마음도 몸도 건강한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어요. 깨끗한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친구와 유대감도 끈끈해지고,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해져요. 선생님들이 학업부터 생활, 진로까지 모든 면에서 꼼꼼하게 돌봐주시고요. 단,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만큼 자기 주도 학습 습관과 성실성을 갖춰야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하세요.

김지민_ 중학생 때부터 무엇이든지 많이 시도해보길 권해요. 풍산고는 학생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데, 스스로 도전해본 경험이 있어야 잡을 수 있어요. 또 외국인 명사 특강이 많고, 탐구 자료를 원어로 활용하는 경우가 잦아 영어 실력을 갖추면 학교생활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다 같이 열심히 하며, 함께 성장하는 학교이니 내신에 큰 부담을 느끼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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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 고등 (2024년 10월 23일 1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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