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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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1019호

독(讀)한 중학생 프로젝트 1

소행성 B612에서 온 작은 거인 <어린왕자>

1942년 초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한 남자가 냅킨에 장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함께 식사하던 사람이 뭘 그리느냐고 물었다. “별거 아냐. 내 마음속에서 늘 함께하는 한 어린 녀석이지.”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때? 어린이용 이야기로 말야. 올해 성탄절 전에 책을 낼 수 있으면 좋겠군.” 두 사람은 바로 <어린왕자>의 지은이 생텍쥐페리와 출판업자 히치콕이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그리고 여전히 울리고 있는 이 ‘세대 불문 동화’는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 쉽게 읽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다수 중학교의 필독서 <어린왕자>를 제대로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행사, 생텍쥐페리

190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영리하고 생기가 넘치며 잔꾀가 많은 소년이었다. (공부는 잘 못했다) 12살 때 처음 비행기를 타보고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21살 때는 전투 비행단에서 근무했다. 또 26살 때 항공사에 취업해 모로코의 남부 항공 기지에서 1년 넘게 근무했다. 이때 사막 지역에서의 경험이 <어린왕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944년 옛 비행 중대에 복귀했고, 비행을 하다 행방불명됐다. (B612에 가 있을지도.)



어린왕자
지은이 생텍쥐페리
펴낸곳 문학동네




scene 1

“레옹 베르트에게 이 책을 어떤 어른에게 바치게 된 것을 어린이들이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그 어른이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춥고 배고픈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 모든 이유로도 부족하다면 나는 이 책을 지난날 어린아이였던 그에게 바치기로 하겠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_서문 발췌


실로 많은 이들이 <어린왕자>의 시작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라고 생각하지만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레옹 베르트에게’라는 헌사가 나온단다. ‘첫 문장은 신이 내린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작가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이 도입 부분이지. 그만큼 생텍쥐페리는 (22살이나 많은) 이 친구에게 뭔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야. 당시 레옹 베르트는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 있던 유태인이었어. 이건 진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란 의미지.
즉 <어린왕자>는 권력과 강압적인 힘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는 뜻이면서, 누구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고통이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더라도 그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scene 2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코끼리를 삼키고서 소화시키는 보아구렁이를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구렁이의 뱃속을 그려 넣었다. … 어른들은 나더러 속이 보이건 안 보이건 간에 보아구렁이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이나 열심히 공부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해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여섯 살 때 화가로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_8쪽 발췌


10대들이 <어린왕자>를 재미없어하는 이유가 ‘꿈을 포기한 어린이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지? (청소년 필독서로 지정된 것도 한몫했을테고.) 어린왕자 얘기라면서 작가는 왜 뜬금없이 본인의 꿈과 작별한 얘길 하고 있는 걸까?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자라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어린 시절의 마음, 본연의 자신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할 거라고 독자에게 선전 포고를 한 거야.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이제 어린왕자가 누구인지 감이 살짝 왔을지도 모르겠다.



scene 3
“그래서 나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상대도 없이 홀로 지내왔는데 6년 전 어느 날 사하라 사막에서 문득 비행기 고장을 만나게 되었다. … ‘저기,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 나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후다닥 일어났다. … 여러분은 내가 지금 사람 사는 지역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런데 이 아이는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해서, 배고파서, 목말라서, 무서워서 죽겠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_11~13쪽 발췌


인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고립된 사막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저승사자? 그건 사람이 아니잖아. 그래~ 자기 자신뿐이지. 어린왕자는 비행사 자신인 거야.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를 그리고 화가를 꿈꿨던 행복했던 유년의 모습이지. 그러니 등장하자마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거 아니겠니. 어린왕자는 비행사가 그려준 ‘사실적인’ 양을 거부해. 상자를 그려주자 비로소 안심하지. 그건 어른들이 ‘모자’라 착각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같은 거야. 작가는 독자들이 어린왕자를 다치게 할까 봐 못내 걱정스러웠나 봐. “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무성의하게 읽어치우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구절을 써내려간 걸 보면 말야.



scene 4

“어린왕자는 다시 여우에게로 돌아왔다. ‘그럼 잘 있어.’ 그가 말했다. ‘잘 가!’ 여우가 말했다. ‘그럼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_105~106쪽 발췌

사람이 생을 살아가며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랑·우정·행복·기쁨·감동·감사 등이 아닐는지.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 이 대목은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어. 인간은 누구나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유기묘와 유기견을 떠올리면 쉬울 거야. 그 여린 동물들을 키우다 버린 이들에게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책임질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비행사도 사막 밖에 책임져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을 거야. 돌아가야겠지. 그러면 어린왕자를 보내줘야 할 거고.



scene 5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 ‘그래,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아저씨가 내 여우와 생각이 같은 걸 보니 기뻐.’ 어린왕자가 잠들었으므로 나는 그를 안고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부서지기 쉬운 무슨 보물을 안고 가는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 것은 없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_114~115쪽 발췌


비행사에게 어린왕자는 부서지기 쉬운 내면의 보석인 거야. 어린왕자는 자신의 장미를 책임지기 위해 지구별 소풍을 마치고 떠나. (같은 시각 비행사의 고장 난 비행기가 고쳐지는 건 우연이 아냐.)
그러곤 말하지.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리고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이란 늘 가시기 마련이니까.) 아저씬 나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하게 될 거야.”



생텍쥐페리가 이 책을 어린이들의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어른들에게 바친 이유가 이제 조금 이해가 가지? 우리 모두가 자신 안의 어린이를 소중히 보듬으며 약한 이(동식물을 모두 포함해서)를 가엾이 여기고 그 모든 것들에 책임을 질 자세가 돼 있다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해보자. 어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따뜻하게 저리지 않니?



‘독(讀)한 중학생 프로젝트’는 책 읽는 중학생의 시작을 돕기 위한 시리즈입니다. 아주 어렵게 첫 장을 펼쳤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내용에 책을 덮었다면 읽어보세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특징, 작가의 이야기를 알면 조금 더 쉽고 즐겁게 독서를 할 수 있을 겁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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