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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89호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⑫

꼰대가 말하는 ‘꼰대 없는 교실’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 의지대로 해야 속이 시원하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우선 큰소리를 지르고 본다.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야”라는 말이 먼저 나간다.

인터넷에 떠도는 ‘꼰대의 특징’이다. 이 세 가지 특징 중에 나는 어느 하나에도 ‘해당 없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꼰대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라고 하니 50에 가까운 나이 많은 남자 교사인 나는 영락없이 꼰대다.
이런 꼰대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2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보니 교사라는 권위를 내세워 그동안 수많은 ‘꼰대짓’을 했음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언제까지 반성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내게는 정년까지 아직도 10년 넘게 남아 있으니) 앞으로라도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을 ‘학생의 자기 결정권’에 중심을 두려고 한다.


타반 출입금지

다른 학교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릇처럼 교실 문 쪽으로 가서 살펴본다. 자주 만나는 글귀가 있다. ‘타반 출입금지.’
때로는 좀 더 부드럽게 호소(?)하는 등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맥락은 한 가지다. ‘우리만의 공간에 다른 반 학생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문구가 붙은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우리 반 학생의 물건을 허락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손을 대거나 가져가는 행위’ ‘교실 문을 막고 서서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출입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 등을 자주 목격했거나 그로 인한 불편함을 반 아이들을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담임 교사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교실 문에 경고문을 붙여왔다.

지난해 입학식을 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 서너 명의 여학생들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 아이들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선생님, 우리도 2학년 교실처럼 문에 붙이면 안 돼요?” “뭐를?”“다른 반 학생들 못 들어오게요.”
곧 쉬는 시간이 끝나는 바람에 종례 시간 교실에서 다시 얘기를 꺼냈다. 말을 끝내자마자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넘쳐났다.
“우리 반에 그걸 붙이면 다른 반 아이들이 못 들어오겠지만, 우리도 그때부터는 다른 반에 못 들어갈 텐데 괜찮아?”
내말에 활활 타오르던 불길에 찬물을 쏟아부은 듯 순식간에 교실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마침 담임 겸 1학년 부장을 하고 있을 때라 이렇게 다시 제안했다.
“1학년 모든 반에서 이 주제로 학급회의를 해보면 어떨까? 학년 전체가 같이 결정하면 훨씬 좋을 거 같은데.”


1학년 학생들이 함께 내린 결론

결국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1학년 담임들에게도 동의를 구해 우리 1학년의 첫 번째 학급자치회의 주제는 ‘타반 학생의 출입을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로 정해졌다. 각반 학급자치회의에서 내린 최종 의견을 가지고 4개 반의 임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토론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다른 반 학생의 출입을 허용한다.
단, 다음 사항을 지키지 않을 시에 경고하고, 한 달에 경고 3회면 다음 한 달 동안 출입을 금한다.
남의 물건 만지지 않기/ 문을 막지 않기/ 시끄럽게 떠들지 않기/ 낙서하지 않기
다만, 사소한 것에 대해 경고하지 않으며, 반별로 기록자를 두어 관리한다.


뒤에 전해들은 얘기로는, 학급자치회의 결과 4개 반 중에서 3개 반이 다른 반 학생의 출입을 허용하자는 쪽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대한 1반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다른 반 학생의 출입을 허용하되 우려되는 부분을 단서 조항으로 넣어 자율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 반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떠들어 경고 세 번을 받은 다른 반 학생이 찾아왔다.
“선생님, 저는 이런 거 몰랐다고요. 그리고 ‘경고’라는 말도 못 들었어요.”

여러 번 같은 얘기를 해도 난생처음 듣는 말인 양 되묻기를 반복하는 게 이 또래 아이들이다. 분명 학급자치회의에서 다루었고 학년자치회의에서 나온 결과를 공지했을 테지만, 모든 아이에게 체화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수 있었다. 이후 임시 학급회의를 열어 전체 학생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재차 안내했고, ‘경고는 상대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세부안도 추가로 만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뒤로 우리 학년에서 ‘타반 출입금지’에 관한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만약 담임이 주도해 교실 문에 경고문을 붙이고, 이를 어긴 학생들을 매번 혼내거나 어떤 조처를 했다면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을까? 장담컨대 절대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타반 출입금지’를 보면서 내가 가진 의문은 하나였다. 대부분 학교는 ‘공동체’를 넣은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혁신학교의 교육 비전에는 거의 100%에 가깝게 ‘@@ 공동체’라는 말이 들어간다. 우리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 살 수 없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라고 가르치며 학생들의 이기적인 생활 태도를 지적하고, 여러 명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둠 활동을 넣어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그렇게 공동체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교실에서는 너무나 쉽게 나(우리 반)의 이익만을 위해서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실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실천한다’라는 항목에서 ‘그렇다’라고 대답한 우리나라 학생들의 비율이 프랑스나 영국과 비교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 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공동체’를 거창한 구호 속에서가 아니라 교실에서, 살아 있는 삶의 실천 과정에서 만나기 바란다.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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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1년 02월 24일 9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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