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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85호

COLUMN |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⑪

세상과 다른 학교의 시간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월, 아직 끝나지 않은 2020년


학급 단체 대화방에 오늘의 종례가 올라온다.

“얘들아! 오늘 종례가 좀 늦어서 미안. 오늘은 우리가 준비한 게임을 다 하고 나서도 시간이 좀 남는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의견을 보내주면 돼.”

학급자치회장이 올린 글이다. 예정됐던 학교 축제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학년별 비대면 축제로 변경됐다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학급별 축제로 최종 결정되었다.

갑작스레 학급별 축제로 바뀌자 우리 학년 담임 교사들은 의논 끝에 각자 한 가지 게임을 만들고 그것을 합쳐서 담임 교사가 진행하는 것으로 협의를 했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축제를 혼자 다 맡아서 하기는 부담이 컸던 담임 교사들은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을 한 가지씩 만들어 학년부에서 제출했다.

하지만 우리 반은 아이들에게 온전히 3시간을 맡겨보기로 했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만든 게임은 언뜻 살펴봐도 상당히 재밌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어 무척 탐이 났다. 하지만 포기한 이유가 있다. 예정됐던 학년별 축제에 사회자와 공연자로 참가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우리 반에 있었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1년 동안 우리 반 교실에서의 중심에 자기 결정권을 지닌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 남짓이었다. 우선 학급자치회장과 부회장에게 촉박한 일정을 설명하고, 두 사람이 중심이 돼 학급축제를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신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하기는 힘드니 매일 종례 시간을 활용해 급우들의 의견을 받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담임과 같이 협의하며, 하루하루 조금씩 채워가자고 권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의 절반이 흘러갔고 어느 정도의 틀이 만들어졌다. 남은 절반의 시간 동안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학생은 큰 계획이 세워지고 나면 거의 모든 준비가 다 된 것으로 알고 이때부터는 무척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막상 당일에 행사를 치러보면 당혹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행사가 끝나면 이를 준비했던 아이들에게 온갖 불만과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이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적절한 시기에 교사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관여하면 학생들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행사로 만들고자 한 처음의 목적이 사라지게 된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생이 중심되는 행사가 되도록 교사들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까닭이다.


새로운 시작의 달, 2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종업식 이후 입학식 전까지 2월에 주어지는 10여 일의 기간은 ‘봄방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런데 일부 혁신학교에서 그 기간에 새 학년을 맞아 새로 전입해오는 교사, 갓 부임하는 신규 교사까지 포함해 학교의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생활교육과 수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합의, 학교 여건에 맞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학교 자체적으로 약 일주일간 정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외부 강사까지 초청해 운영했다. 그 기간에 다른 학교 교사들을 만나면 대부분 “선생님 학교는 2월에 며칠 출근하나요?”라는 질문부터 받게 됐다. 혁신학교의 수가 늘고, 2월 새 학년 준비 연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 기간을 이제는 ‘봄방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당연히 새 학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정기인사 발표 후 일주일 정도를 ‘학교 업무 정상화’ 기간으로 명명하고, 전출 가는 교사도 참여할 수 있게 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내고 있다.

올해 우리 학교도 경기도교육청에서 권장한 그 기간에 ‘업무 정상화를 위한 2월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다. 작년까지는 학교장이 연수 일정과 프로그램, 강사진까지 다 결정해 교사들의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올해는 계획 수립 단계부터 교사들에게 연수 일정, 시작 요일, 원하는 프로그램(연수) 등과 관련해 설문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요구 사항은 많으나 연수는 최대한 짧게’로 의견이 모였다. 방학 기간에 며칠씩 출근해서 연수를 받고 각종 협의회를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신없이 바빠서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교사들도 버거운 3월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2월 교육과정이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나도 전체 교사들에게 번지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교직의 현실이 안타깝다.


모소대나무를 키우는 농부처럼

어느 날 광고를 보다가 중국의 극동 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대나무’에 대해 알게 됐다. 그 지방의 농부들은 여기저기 모소대나무 씨앗을 뿌려놓고 매일같이 정성을 들여 키우는데 싹이 움트고 4년이 지나도 불과 3cm밖에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5년째 되는 날부터 하루에 무려 30cm가 넘게 자라 6주가 지나면 15m 이상의 높이에 다다른다고 한다.

그래서 순식간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이 만들어진다고. 폭발적인 성장은 지난 4년 동안 모소대나무가 땅속에 수백 미터에 이르는 뿌리를 뻗쳤기에 가능하다. 그 성장의 밑바탕에는 뿌리가 살아 있음을 알고 계속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돌보는 농부가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나무 숲을 이루는 모소대나무처럼,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서툰 아이들과 2월 연수의 필요성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교사들에게도 농부의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본다.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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