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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호

COLUMN |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⑤

이제는 가정의 시간, 학생의 시간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⑤

이제는
가정의 시간, 학생의 시간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최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법원의 시간.’
사회적인 논쟁거리가 되는 사건이 마침내 기소되어 법원으로 넘어가자 언론에서는 하나같이 이러한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유례없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7월의 학교는 누구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몇 달 만에 간신히 아이들이 학교에 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위험은 여전하다. 학교는 초긴장 상태로 매일 매일을 보낸다. 며칠 전만 해도 인근 중학교 학생이 확진자로 판명돼 지역 사회가 혼란의 도가니였다. 다행히 더 확산되지 않고 조용히 위기를 넘겼지만 우리 학교, 내 교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학생들은 3주에 한 주만 등교한다지만, 아이들이 있거나 없거나 교사로서 긴장의 연속이다.


짧은 등교 수업에 조는 학생 속출(?)

그런데 등교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종종 지금이 코로나19로 위태위태한 상황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턱밑으로 내려온 마스크, 거리를 두지 않고 이뤄지는 대화나 스킨십, 하교하면서부터 몰려다니며 어울리는 모습까지.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원격 수업이 이루어지는 기간을 ‘방학’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엄연히 학기중인데, 상당수 학생은 진짜 방학처럼 생활 리듬이 깨져 밤늦게 자 다음날 점심 무렵에 일어난다. 당연히 원격 수업은 대충 듣고, 시간만 채운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등교하니, 오전 시간에는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이 꽤 많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점심 먹고 밀려오는 식곤증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일어났던 현상이 이제는 오전에 교실 곳곳에서 보인다.

교육부는 상대적으로 학생 수가 많은 수도권 중학교는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등교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등교하는데, 2주 원격 수업 후에 학교에 오면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행평가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1시간 내내 어찌할 줄 몰라서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아예 처음부터 수행평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엎드려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물론 수행평가 얘기가 나오자마자 두 눈을 반짝이며 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 학생도 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수행평가를 해보니 아이들이 극과 극이에요. 예전에는 잘은 못해도 어떻게든지 해보려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아이들을 보기 어려워요. 원격 수업 기간에 수업 듣는 시늉만 한 아이들은 아예 손을 못 대고,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거나 누군가 시켜서라도 학습을 해온 아이들은 아주 잘해요.”

교사협의회 시간, 한 교사의 발언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위험 신호다. 스스로 알아서 잘하거나, 집에서 아이 학업을 일일이 챙길 시간과 관심이 있는 부모를 둔 학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학교에선 원격 수업도 엄연한 수업인 만큼 얼마 안 되는 등교 기간에 아이들의 배움을 확인해야 하니 수행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편하게 쉴 땐 좋았지만, ‘평가’ 앞에서 아이들은 패배감이나 무력감을 느낀다. 특히 아직 어린 중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은 이른 학업 포기, 학교에 대한 흥미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몇 년, 중학교는 학교 밖의 시선과 달리 누구든 친구들과 함께 움직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모르는 것들을 채워가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가지려고 했다. 성적이 낮아도, 조금 내성적이어도, 수업에선 제 나름의 역할을 하며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이 많아지던 차에 코로나19는 배움과 관계에서 소외될 수 있는 아이들을 도로 늘려놓고 말았다.


이제 정말, 학교와 가정·학생이 함께해야

우리가 모두 실시간으로 겪으며 예상하듯,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을 번갈아 하는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갈수록 등교 수업보다 원격 수업이 중심이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을 학생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학부모와의 전화 상담 때 이런 말씀을 드렸다.

“지금의 상황은 금방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전히 등교해서 하는 수업만 수업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러니 학부모님께서도 우리 아이가 원격 수업 기간에 학교에서 보내준 ‘교육과정 편성표’에 따라 잘하고 있는지 중간 중간 확인을 해주세요. 꼭 옆에서 지켜보라는 것은 아니고요. 아이와 자주 대화 시간을 갖고 원격 수업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지 물어보고, 혹시 부모가 도와줄것은 없는지도 살펴봐주셔야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년에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상담에 응한 학부모 모두가 이 말에 동의했지만 맞벌이 가정 등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돌봐줄 여건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땐 모든 것이 아이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니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잘 챙겨서 묵묵히 하는 아이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어른의 관심과 지지, 격려가 있어야 동기가 부여되는 아이와의 학업 편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이 ‘학교의 시간’, ‘교사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가정의 시간’, ‘학생의 시간’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싶다. 가정에서 배움과 돌봄이 안 되는 아이를 학교에서 교사 옆에 붙잡아두고 시키거나 학교 수업 시간에 ‘한 명의 아이도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게 다양한 활동을 넣어서 수업을 설계하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 무엇보다 방역의 의무를 먼저 떠올리는 상황에서 학교가 이전처럼 학생들을 껴안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교육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학교가, 교사가 좋은 콘텐츠와 다양한 디지털 도구로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가정과 학생의 역할에 대한 교육도 필요할 것 같다. 분명 교육의 위기이지만, 다르게 보면 비로소 교육 3주체가 함께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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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07월 08일 9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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