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뒤로

피플&칼럼

955호

COLUMN |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④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④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최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_ 나태주 시인의 <안부>

칠판 한구석에 이 시를 적고 사진을 찍어 반 아이들이 있는 단체채팅방에 올렸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으면서 담임이 올려주는 글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도 점점 식어들어갔다. 30분 동안 채팅창에는 ‘네’라는 한 글자만이 두 번 올라왔다.


우리 학교 3학년 어느 담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우리 반 교실 앞문 가까운 칠판 왼쪽 게시판에는 학급시간표를 밀어내고 ‘코로나 예방 수칙’이 크게 자리를 잡았다. 수능 고사장 마냥 듬성듬성 간격을 둔 책상만 봐도 KF94 마스크를 쓰고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혀온다. 이 상황에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진짜 등교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5월 20일부터 고3의 등교 수업이 시작됐지만 첫날부터 어느 지역은 아예 등교를 막았고, 어느 지역은 학교에 오자마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도 한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학교는 이 풍경을 수없이 반복하지 않을까.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온라인 교실’

온라인 수업 풍경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요즘은 매일 아침 9시 줌(Zoom)으로 화상 조회를 한다. 쌍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해, 할 수 있는 것이 늘었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고, 그날의 시간표와 공지사항을 안내하면 궁금해하는 것을 바로 그 자리에서 물어보고 대답해줄 수 있게 됐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오전에 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을 진행했다. 1시간은 ‘그동안 학교생활하면서 만났던 선생님 중에 가장 존경하는(좋아하는) 분이 계시면 그분을 왜 존경하게(좋아하게) 되었는지 100자 이내로 적어서 보내기’였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수업이 재밌었다’는 얘기가 가장 많았다.

10여 분 동안 얼굴을 마주하는 아침 조회만으로는 아이들을 자세히 알기 어려워 ‘생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좋았던 일, 받았던 선물, 서운했던 일, 슬펐던 일 등)’에 관해서도 적어 보내게 했다.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날에 대한 기억들이 꽤 많이 도착했다. 물론 ‘아빠가 하필 그때 개업하는 바람에 생일파티를 못해서 서운했다’는 내용도 있었고, 어떤 아이는 ‘사업 때문에 늘 중국에 나가 계시는 아빠가 자신의 생일에 맞춰 1년에 한 번씩 돌아오셔서 생일파티를 해주신다’는 마음 뭉클한 사연도 만났다.

모두가 처음이라 서툴렀던 온라인 수업,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이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에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 나아지고 가까워진 모양새다.


온라인의 이면(裏面), ‘스승’이 해야 할 일

한편, 아픈 손가락이 된 아이도 있다. ‘그동안 만났던 선생님 중에 존경하는(좋아하는) 선생님이 전혀 없어요’라고 적어 보낸 아이였다. 생일에 대한 특별한 기억도 없다고 했다. 일하는 엄마가 출근 전 깨우고 가면 다시 잠들어 9시 출석 체크를 못했던 아이다. 다행인지 줌으로 출석을 체크하면서 매번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출석만 하고 바로 게임에 빠져버리는 게 문제지만. 온라인 강의 수강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과제도 안 내 매번 마감일에 독촉하는 메시지나 전화를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때도 이런 상황이 많아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꽤 들었단다. 그러니 선생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을 거 같다. 그래서 ‘그동안 존경하는(좋아하는) 선생님이 없으면, 왜 만나지 못했을까에 대해서 적어볼까?’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다.

이제는 그 답을 직접 듣고 싶어졌다. 어머님께 전화해 그동안의 사정을 말씀드리며 가정방문을 하고 싶다 청했다. 어머님은 “아이가 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며, “언제든지 방문하시라”고 말씀해주셨다. 등교라도 한다면 그 시간만큼은 게임을 하지 않을 테니 빨리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통화 내내 간절하게 묻어났다.

환경이 갖춰지면 우수한 학습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율도 높은 온라인 수업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소외된 아이들이 있다. 특별한 환경의 아이들도 아니다. 아직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거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서는 부모는 수없이 많지 않은가. ‘학교 안’에서라면 생활과 가치관을 바로잡으려는 교사와 부딪힐 수 있지만, 혼자 남은 집에서 그저 재미와 자극의 세계에 몰입하는 아이의 모습이 스승의 날에 더 눈에 밟혔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만남’이었다.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뭔가 더 교감할 부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물론 가정방문을 한다고 해서 아이가 갑자기 게임을 끊고 9시부터 시간표에 맞춰 온라인 강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5월이 다 가도록 만나지 못했지만 담임으로서, 교사로서 책임감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예상대로 아이는 “이제 잘할 테니 안 오셔도 된다”며 강력하게 거부했다. 단번에 아이로부터 ‘오케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일단 어머님의 허락을 구했으니 가정방문은 곧 할 예정이다. 다만, 그전에 아이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믿음의 시간을 좀 더 갖고 싶다.

오늘 아침에도 반 아이들을 모니터에서 만났다. 이젠 얼굴만 봐도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새 적응한 탓이다. 물론 학생과 직접 얼굴을 마주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여전히 잡히지 않는 지금, 온라인과 학교 각각의 교실을 모두 사용하게 될지 모른다. 말 그대로 전례 없는 상황, 모두 제대로 수업에 참여하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려는 교사의 고민도 깊어질 터다. 그래도 단방향 출석 점검이 쌍방향으로 바뀌고, 이름만 알던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게 된 것처럼 익숙해지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내리라 믿는다. 학생이 건강하게 수업받는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나태주의 <안부>라는 시를 읽어본다.

어찌됐든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 (주)내일교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일교육
  • 백원석 교사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05월 27일 955호)

댓글 0

댓글쓰기
240318 숭실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