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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호

COLUMN |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⑥

내 친구를 돌려주세요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⑥

내 친구를 돌려주세요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최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얼마 전 ‘학급 자치 활동’ 시간에 ‘우리 반 친구 찾기’를 해봤다. 대개 학년초 학생끼리 서먹서먹할 때,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야 했다. 3주에 한 번 학교에 오는 상황이라, 활동도 비대면으로 만들었다. 20개의 문항을 주고 반 친구들과 대화 앱을 통해 개별적으로 문항에 해당하는 친구를 찾아 그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20개 중에서 15개 이상을 적어내면 ‘통과’로 인정했다. 학생들에게 내준 질문은 대략 이랬다.

‘나와 생일이 같은 달에 있는 친구’ ‘누나(언니)가 있는 친구’
‘네 번째 손가락이 두 번째 손가락보다 긴 친구’

이런 종류의 20개 질문 중에 ‘그동안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도 있었다. 이 항목에 모든 아이들이 친구 이름을 적어냈다. 반 전체 아이들이 한 번 이상 대화를 안 해본 반 친구가 최소 한 명 이상은 있다는 얘기다.


엉뚱한 상상이 현실이 된 지금의 학교

장마라 열대야도 아닌데 잠을 설치고 새벽에 잠을 깨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잠 못 이루게 하는 생각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학생들의 등교다. 지난 3월, 등교가 늦어졌을 때 우스갯소리처럼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한 반에 5명 정도씩 요일별로 등교하고, 학교에 오지 않고 가정학습만 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정말 ‘엉뚱한 상상’을 펼쳐본 적이 있다(본지 947호 60~61쪽 참조).

스스로도 잠이 덜 깬 새벽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발상으로 치부하고 넘겼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며 타성에 젖은 일부의 학교 문화를 바꿀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된다고 여겼던 상상이 현실이 됐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 지역은 ‘학교 밀집도 최소화 조치’ 시행으로 등교 인원을 전교생의 3분의 1 이하로 제한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학년 당 요일을 정해 주 1회 등교하고, 중학교도 3주 간격으로 1개 학년씩 학교에 온다.

중학교 1학년은 6월 8일 등교를 시작했다. 8월 초까지 3번, 3주 등교하고 여름방학을 맞는다. 문제는 2학기에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학생들이 학교를 ‘원격 수업 기간에 한 학습을 가끔 등교해서 평가받는 곳’으로 인식할까 걱정이다.


‘친구와의 수다와 장난’을 빼앗긴 학교

근래 10년간 교사들은 겨울방학 기간인 2월을 꽤 분주하게 보냈다. 이전까지는 늦은 인사 발표로 인해 새 학년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야 간신히 모여서 업무를 나누고, 자신의 담당 학년을 확인해 교재를 준비하는 등 매우 빠듯한 일정 속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혁신학교 등 기존의 학교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정책이 도입되면서 학교와 교사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새 학년 준비를 위한 시간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급하게 업무 분장과 수업 준비를 할 게 아니라 새로 전입한 교사들까지 포함해 학교의 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과목과 진도를 뛰어넘어 학교·지역·학생의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생활 지도 방식에서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책임질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주는 생활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전문가를 초청해 연수를 듣고 직접 실행 학습을 통해 몸으로 익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2월의 준비가 무색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등교가 차일피일 미뤄졌고, 간신히 재개된 등교 이후 교실은 내가 학교를 다니던 30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언제든 평가할 수 있도록 멀찍이 떨어뜨려서 놓인 한 줄 책상, 학생끼리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하거나 친밀하게 붙어 있지 못하게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을 감시(?)의 눈초리로 주시하는 교사들.

사실 학생에게 학교는 ‘또래와의 대화’가 가능한 기회의 장이다.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정에서도 대화를 나눌 또래가 없는 요즘 아이들이 그나마 편하게 모여 앉아 옆자리 친구와 가벼운 장난을 쳐가며 친밀도를 높였다.

여기에 달라진 학교 수업은 교우관계의 폭을 넓히는 효과가 있었다. 모둠 수업이 확산되고, 교사의 일방식 강의보다 조사나 토론·발표 등 학생 활동이 수업의 중심에 들어오면서 학생들은 종전보다 서로 많은 대화와 활동을 나눠야 했다. 덜 친한 급우와 같은 모둠이 되면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서나, 수업 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차이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역할을 나눠 하나의 목표를 이뤄가는 ‘공동체성’이 단단해지던 찰나였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은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하기’가 무척 어렵다. ‘방역’이 최우선 순위가 돼 학생 간 수다나 스킨십은 원천 차단의 대상이 됐다. 그렇다 보니 개학하고 한 달이면 반의 모든 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또 깊게 정을 쌓던 학생들의 모습도 바뀔 수밖에 없다. 우리 반 학생들이 제출한 활동지를 보니,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급우가 20% 정도였다.

새벽잠을 설쳐 충혈된 눈에, 교육부 장관과 수도권 지역의 교육감들이 모여서 수도권 지역 등교 인원 제한 조치의 완화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는 뉴스가 보였다. 야구장은 7월 26일부터 수용 인원의 10%까지 관중 입장을 허용했고, 박물관과 같은 다중 이용 시설도 조금씩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를 전제로 개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2학기를 맞을까? 방역 지침은 준수하되, 학생들이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맺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핵심 역량으로 ‘공동체’와 ‘의사소통’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몇 년간 강조했고, 지금도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학교와 교실에서는 너무나 가혹하게, 아이들에게 공동체를 느낄 시간도 주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하며 혼자서 이겨내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사로서 자꾸 되묻게 된다.

지난 몇 개월, 등교 형태와 수업이 달라지면서 오랫동안 비판받았던 학교와 교사, 학교 수업의 역할이 재조명됐다. 이를 떠올려볼 때 학생의 건강과 교실 수업, 학교생활이 공존할 방법을 늦지 않게 찾아야 한다.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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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08월 12일 9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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