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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81호

COLUMN |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⑩

성장 돕는 교사 되기 2 끊임없이 의심하라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학급 단톡방에 학급자치회장(회장)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번 달 학급회의 주제를 ‘상습적인 지각을 하는 학생, 어떻게 할 것인가’로 정해 논의하라고 하셔서 오늘 저희가 온라인으로 회의한 결과입니다.


1. 결정 사항 : 지각 학생에게 1분당 100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2. 결정 과정

- 벌금 부과 학급 규칙에 대한 찬성: 20명, 반대: 9명, 기권 : 1명

(다수결 원칙에 따라 규칙 통과)

3. 규칙 시행일 : 다음주 월요일부터


회장은 위의 글을 올리고 나서 그 아래 ‘확인했으면 ‘네’라고 댓글 달아주세요^^’라고 적었다. 그 글 아래 5개의 ‘네’가 순식간에 올라온다. 그런데 그 뒤로 회장의 글을 읽은 사람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데 더는 ‘네’가 올라오지 않았다.


학생들이 논의한 회의 결과는 민주적일까?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발간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라는 중학교 인정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각색했다. 하지만 학급회의의 주제만 다를 뿐, 비슷한 논의의 과정과 결정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교육적인가? 여기서 담임 교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학급의 의결 과정은 ‘질의응답 → 찬반토론 → 비밀투표’ 순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관점에서 위의 학급회의는 절차 대부분을 준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학생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담임 교사는 고민 끝에 학급회의를 통해 방법을 찾자 했다. 그래서 학급회의 안건으로 상정했고, 학생들은 다양한 방법을 얘기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벌금 부과’가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벌금 액수에 대해 또다시 의견을 쏟아냈다. 마침내 학생 신분을 고려해 ‘1분당 100원’이라는 액수가 다수의 공감을 얻었다. 민주적인 회의의 과정으로 보이고, 그 결론을 학생들 처지에서는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제 상황에 대한 처벌, 그 수위에 대한 논의만 뜨겁다. 우리도,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잘하면 보상을 받고, 못하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잘못에 대한 처벌만 논의하는 학생들을 만든 우리들

초등학교를 떠올려보자. ‘복도에서 뛰지 말라’라는 경고를 받거나, 이를 주제로 한 학급회의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경고 혹은 회의의 결론은 뛰는 학생들을 어떻게 처벌(조치)할 것인가에 온갖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별반 나아진 것 없이 우리는 수십 년째 같은 주제의 논의를 지금도 학교에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학교 건물의 구조는 교도소와 흡사하다. 일렬로 늘어선 교실과 그 교실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복도가 나란히 한 줄로 늘어선 모습. 오랜 시간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게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게 길게 쭉 뻗은, 100m 트랙을 연상시키는 열린 공간에서 뛰지 말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렇다고 우사인 볼트처럼 최선을 다해 달리라는 것은 더욱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직선의 학교 공간을 중간중간 굽은 형태로 만들어 원형에 가깝게 하거나, 복도 중간에 의자나 소파, 테이블을 놓아 쉼터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복도라는 공간에서 뛰고 싶은 충동을 조금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각 벌금도 마찬가지다.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사정을 들어보고, 잦은 지각으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받는 안 좋은 영향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급회의에서의 논의는 지각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지각하는 친구를 돕는 방법이 주가 되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보고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어른들, 교사들의 책임이다. 어려서부터 잘못을 하면 모두 잘못한 이의 탓이며, 그 책임 또한 전부 짊어져야 한다고 배웠다.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니 늘 규칙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제재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곧 공동체의 힘(역량)이 된다. 한데, 어려서부터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에 아이들에게도 그런 역량을 길러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어떤 결정의 과정에서 아이들의 순수성만 믿고 그대로 맡겨두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세로 지켜봐야 한다. 복잡한 상황에서 사람은 익숙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응보적 정의의 방법을 이제는 회복적 정의의 방법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고, 그 역할은 어른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부르던 나라들도 감히 어떻게 하지 못하는 코로나 팬데믹을 우리나라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언론의 설문조사 결과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공동체를 지향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는지 그 목표가 뚜렷해졌다. 개인적인 성향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이들. 그 성장을 돕기 위해 우리 어른들도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며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고.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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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COLUMN 교단일기 (2020년 12월 23일 9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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