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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77호

COLUMN | 2020 우당탕탕 쌤 말싸미 ⑨

성장 돕는 교사 되기 1 더 불친절하자


글 백원석 교사(경기 시흥중학교)

근 교사, 특히 중학교 교사는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학교까지 옮겨 공간마저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낯섦 또한 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즐겨보려 합니다. 21년 차 교사의 교실, 교사만큼 달라짐을 요구받는 학교,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8시 39분.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교실 창문 너머로 이번 주 등교하는 2학년 아이들의 발소리와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이 소리를 들으며 유튜브에 접속한다. 어제 실시간 조회 시간에 소개된 노래를 찾아 재생하기 위해서다. 원래 조회 시간보다 15분 이른 8시 40분에 시작되는 우리 반 조회, 아이들이 다 들어오길 기다리면서 들을 노래는 한스밴드의 <오락실>이다.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 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IMF 외환위기 때 갑작스레 직장에서 쫓겨난 가장들(아빠들)의 애환을 너무 무겁지 않게 담아내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로부터 10년이 지나 태어난 우리 반 아이는 이 노래를 언제 어디서 들었을까?


학생 참여 코너, 지루한 조회를 바꾸다

우리 반의 원격 조회는 매일 25분씩 진행된다. 다른 반은 얼굴 확인과 학교에서 꼭 전달하라는 중요 사항을 말하고 나면 대략 5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다른 반과 비슷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돼 4월 중순부터 우리 반 아이들을 줌으로 만났다. 처음에는 그간 못한 전달 사항만으로도 10분의 조회 시간이 빠듯했다. 가끔 노파심에서 나온 잔소리가 섞이면 조회는 1교시가 다 되어 겨우 끝났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니 화면 속 아이들의 표정에서 지루함이 묻어났고, 접속을 늦게 하거나 아예 빠지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때 학급자치 임원에게 조회 시간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코너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학급회의를 통해서 탄생한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상(노래) 소개하기’ 코너였다. 매일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유튜브 주소를 채팅창에 올리면, 다른 아이들은 링크된 주소를 클릭해 들어가 노래를 듣고 짤막한 소감을 다시 채팅창에 올린다.

노래가 끝나면 소개한 아이가 선곡 이유를 얘기하고, 비공개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을 호스트인 내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읽어준다. 이 코너는 9월 중순경에 한 바퀴를 돌았다. 이번에도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투표에 붙였더니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 이 코너는 두 바퀴째 돌고 있다. 그중에 한 곡이 우리 반 특수교육 대상인 가을(가명)이가 소개한 한스밴드의 <오락실>이었던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담임이 좋은 교사일까?

교무실 내 옆자리 테이블에는 코팅기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워졌다가 식는다. 학생들에게 안내할 자료를 코팅하기 위해 교사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교실이나 복도에 오랜 기간 변색 없이 붙어 있길 바라는 마음에 교사들은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한다.

수명을 다한 코팅 자료는 재활용이 안 돼 바로 일반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다. 하지만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이유로 어느 학교든 교무실 한 편에 코팅기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열정적인 교사일수록 코팅기 사용이 잦다. 그렇다고 그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열정, 그것도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열정에 대한 얘기를 이번에 하고 싶었을 뿐이다.

태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의 손길을 받으며 자란 요즘 아이들도 사춘기를 겪으며 점점 독립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 다만 몸부림의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학교에는 초등학교 입학 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일거수일투족 담임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꽤 많다. 또 그런 교사가 ‘학급 운영’을 잘한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새학년이 시작되면 담임들은 무척 분주하다. 교실 앞뒤 게시판을 알록달록 모양을 낸 글씨와 멋진 그림을 넣어 화려하게 꾸미고, 학생 개인별로 격려의 말이나 격언 등을 넣어 만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시간표를 책상 앞모서리에 코팅해서 붙여놓는다. 또 매달 생일자를 파악해 한 명 한 명씩 포스트잇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주기도 한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담임은 30여 명 학생들의 또 다른 부모다. 그러니 정확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교과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코흘리개 어린 아이 대하듯 일일이 챙겨주려는 극성스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학급 내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아이들 스스로 대화와 타협, 이해와 설득을 통해 이를 극복할 여지를 빼앗아 버리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문제가 조금만 복잡해지면 담임이 나서 매듭짓고,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것이 훌륭한 학급 운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담임에게 곧바로 달려가거나 부모 찬스를 쓰려고 한다. 자신이 애쓰지 않아도 해결해주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문제 해결 능력이 점점 더 퇴화되는 것 같다. 이를 초등학교 때부터 ‘잘된 학급운영’이라는 명목하에 우리 교사들이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 반 조회 시간에 담임은 지시 전달자나 잔소리꾼에서 진행을 돕는 지원자 정도로 자연스럽게 역할이 바뀌었다. 그것이 나만의 ‘불친절한 학급 운영’ 방식이다.

그런데 이 말에 어떤 교사는 ‘지저분한 교실,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 학급’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불친절하자’는 말은 ‘학급 운영 = 담임의 몫’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자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담임이 다 해주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아이들이 학급에 설 수 있는 자리가 생기고, 그런 기회가 주어져야만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무서워 우리가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순한 아이들로만 키워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자. 하지만 ‘불친절해지자’는 데는 하나의 조건이 따라붙는다. ‘끊임없이 의심하라’다. 이는 차회에서 상세히 다루겠다.


중학교는 지난 몇 년간 공교육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곳입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죠. 21년째 학기중이면 매일 중학생들과 부대끼는 백원석 교사가 지금의 학교와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부모들에겐 그저 낯설고, 불안한 ‘달라진 중학교’. 교사의 눈을 따라 놓칠 뻔한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함께 지켜봤으면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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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11월 18일 9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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