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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호

학교는 지금! 제주 대정고

교과서를 넘어 지역 유산과 마주한 영화 <4월의 동백>

제주 대정고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 학생들은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지역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던 중 <4월의 동백>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교과서 공부를 뛰어넘어 지역 사회의 가치 있는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대면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더없이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4·3 당시 아픔이 컸던 대정 지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했지요.” 학생들의 영화 제작을 지원한 대정고 우옥희 교장의 말입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몸소 영화로 제작해보면서 학생들은 어떤 점을 느끼고 배웠을까요?

취재 김지영 리포터 janekim@naeil.com 사진·자료 우옥희 교장(제주 대정고등학교)




▶▶교육은 양동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일

처음 4·3 관련 영화를 제작해보자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해도 되요? 저희가 할 수 있어요?”라며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친척에게 들었거나 교과서에서 읽어 4·3 사건을 지역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로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말에는 자신들이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거죠. 하지만 영화 제작이 진행될수록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며 지도 교사를 놀라게 했습니다. 영화에 참여했던 학생 중 두 명은 역사 교사와 사학자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광화문광장 홍보 모습.

▶▶가장 어려웠던 시나리오 작업

영화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관점을 달리하여 토론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작을 맡았던 이종찬 학생은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선생님께 고증을 부탁드렸는데 ‘이 사건은 아직 정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로 입증된 것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찍어보자’고 하셔서 다시 쓰는 과정도 거쳤어요. 자료를 검색하고 출처를 확인하고 논문도 조사하면서 다 같이 시나리오를 썼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이 작업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시나리오가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교사는 큰 틀을 잡아주었고 학생들은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4·3을 이해해나갔습니다. 이후 배역이나 장소 섭외, 소품 준비와 촬영, 편집·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학생들이 주도했습니다. 기존 방송실 장비로는 영화를 만들기 부족해 장비 대여, 소품 준비 과정에서 별도의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영화 촬영에서 홍보까지! 전 과정이 생생한 배움터

겨울방학을 포함해 3개월간 영화를 제작한 학생들은 제주 4·3 70주년에 맞추어 학교에서 열린 영화시사회에 4·3 관계자, 지역 주민, 학부모, 동문 등을 초대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도교육청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제주문예회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했고 많은 학교의 요청으로 필름을 제공했으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도 상영했습니다.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학생들과 함께한 우 교장은 “영화를 왜 종합예술이라고 하는지 알겠더라”며 제작부터 홍보까지 학생들 스스로 협의를 거치며 통합적으로 일을 진행해나간 과정을 칭찬했습니다.


<4월의 동백>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중산간 마을에서 살던 평범한 인물과 가족, 이웃이 주인공이다. 초토화 작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숨어 지내다가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검속으로 인해 사상과 이념에 상관없던 시민들이 희생된 사건을 재현해봄으로써 당시의 아픔을 그려냈다.




MINI INTERVIEW


영화 제작이 결정된 후, 자료를 검색하고 유적지를 답사하고 논문을 확인해 사건 발생 경위와 상황을 자세히 조사했다. 참여 학생들이 함께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영화 제작을 통해 제주 4·3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은 물론, 지역 사회의 문제를 방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제주 4·3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촬영하는 동안 뛰거나 동굴에서 고춧가루 연기를 피우는 장면이 물리적으로 제일 힘들었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더 힘들었을 테니 이 정도는 이겨내야 하다는 생각으로 극복했다. 제주 4·3 때처럼 눈이 왔다면 눈발자국 때문에 발각됐다는 사실 그대로를 구현할 수 있었을 텐데 흙으로 대체한 것이 아쉬웠고 연기를 할수록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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