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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72호

GLOBAL EDU

중2병 없는 스페인 비결은 여름방학



스페인 학교의 여름방학은 정말 길다. 3개월에 가깝다. 발렌시아에서는 부모들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동안 휴가를 보낸다. 아이들이 있으면 지중해의 더운 여름을 피해 장기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 사회적으로도 이 시기에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걱정한다. 동네에서 학생을 발견한 교사는 “여행 안 갔니? 놀아야 해!”라고 말한다. 더 많이 놀라고 권하는 사회다. 유행을 따르는 또래 문화는 있어도 중2병 같은 반항기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이토록 여유로운 사회 분위기 때문 아닐까 싶다.


방학=여행, 놀지 않으면 걱정하는 사회
스페인에서는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 6월 중순에 1년간의 학사 일정이 끝나면 곧 여름방학이니, 3개월을 노는 셈이다. 부모들도 같은 기간에 긴 휴가를 얻는다.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 때문에 직장인이나 개인 사업가나 최대 3개월간 일을 놓는다.
다시 말해 스페인의 여름방학은 아이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온 가족의 휴식기다. 이때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대부분 장기여행을 떠난다. 중·고생도 빠지지 않고 동참한다. 대개 인근 시골을 찾아 문화 체험을 하거나, 유럽 대륙의 장점을 살려 국경을 건너 이웃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몸으로 배우거나, 언어를 공부한다. 기간이 워낙 길어, 온 가족이 여행을 위해 1년간 적금을 붓는게 일반적이다.
매해 찾아오는 긴 여름방학이지만 이렇게 휴식을 취하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5년 전, 처음 스페인에서 아들의 여름방학을 맞았을 때의 일이다. 방학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던 날, 과일가게에서 아이의 담임교사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가 쫓아가 인사를 했는데 돌아온 말이 놀라웠다. “여행도 안가고 여기서 뭐하니? 방학인데 즐겨야지. 많은걸 보고 인생을 배워라”라고 했다. 놀지만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당부에 익숙했던 나는, 더 놀아야 한다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부족한 공부를 채우거나 미리 진도를 나가는 시기가 아니라 자신을 충전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스페인의 방학 문화를 처음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충분한 휴식이 스페인 청소년들이 사춘기를 큰 탈 없이 보내는 원동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곳 아이들의 사춘기는 외적으로 어른 흉내를 내는 데 그친다. 몸이 성숙해지면서 남자아이들은 좋아하는 축구선수의 머리 모양을 흉내내고 여자아이들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부모들의 허락하에 청소년 클럽에서 주말을 즐긴다. 유럽권 나라지만 가톨릭이 국교이고,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해 생각보다 성적인 성숙은 늦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많아 환경적으로 이성에 대한 관심도 늦된 편이다. 충분한 휴식과 가족과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호르몬의 변화로 불안정한 아이들에게 어느정도 안정감을 주니, 중2병이나 질풍도노의 시기로 발전하지 않는 것 같다.


공부보다 체력! 운동 클럽 인기 높아
물론 마냥 공부에 손놓고 있지는 않는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2나 예체능 전공 학생들은 방학 동안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개인 과외에 의존하고 한국처럼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등으로 학습을 보충하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원이라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학원이 전부다. 수학은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지 시장만 활성화돼 있다. 그만큼 소수만 이용한다는 얘기다 .
반면 운동 클럽은 매우 활발하게 운영된다.
체력을 학력만큼 중시하는 문화라 학교 체육 수업 시간도 많고, 방과 후 교실이나 지역 클럽에서 운동을 즐기는 게 일반적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체력도 상상 이상이다. 스페인에 이주한 초기, 아들은 첫 체육 시간에 교사에게 “한국은 체육을 덜 배우니? 체력을 많이 보충해야겠다”는 걱정을 들었다. 한국에서 ‘날아다닌다’는 평가를 듣던 아이였다. 물론 지금은 이곳의 운동 교육 인프라를 마음껏 누린 결과 현지인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체력을 자랑한다.


스페인에서 지낸 지 5년째지만, 길고 긴 여름방학은 아직 낯설다. 너무 태평하게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여유로운 저녁 시간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러한 고민은 사라진다.
올여름, 우리 가족은 긴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머물렀다. 지중해 못지않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한낮이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한밤중에도 학원가에 가득한 아이들을 보고선 마음이 아팠다. 휴식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아이들의 등을 떠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휴대용 선풍기로 땀을 식히는 한국의 아이들을 바라보다 운동장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스페인 아이들을 떠올리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갈수록 심각한 청소년 문제, 사춘기 아이와 부모의 갈등을 다룬 뉴스를 보고 있으면, 단순한 호르몬의 문제라기보다 저녁이 없는 아이들의 삶이 원인 아닐까 싶다.








1. 체력을 중시하는 스페인은 스포츠 활동이 활발하다. 학생들은 주말에 축구시합을 즐겨 한다.
2. 졸업식이 끝나면 기념 파티를 연다.
3. 1년에 한 번씩 가는 학교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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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8년 08월 22일 8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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