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이냐 수능이냐.’ 어느 공부가 더 중요한지는 오래전부터 계속된 수험생의 고민이다. 수시 혹은 정시 한쪽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부 경우가 아니라면, 내신과 수능 모두 중요하다. 다만 최근 주요 대학의 수능 위주 정시 확대와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있는 학생부 교과 전형의 선발 인원 증가를 고려하면 이전과는 다른 내신과 수능 학습의 안배가 필요하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좋지만 내신이 낮은 학생, 반대로 내신 등급은 좋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한 학생들에겐 각각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내신과 모의고사의 성적 격차를 극복하는 방법을 짚어본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도움말 김상근 교사(서울 덕원여자고등학교)·박상훈 교사(서울 중산고등학교)·왕수애 교사(경기 평내고등학교)
정제원 교사(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허준일 교사(대구 경신고등학교)
학교 내신과 모의고사·수능 , 시험 유형 달라
‘내신, 버려도 될까요?’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 차이가 너무 커요’ ‘내신 포기, 수능 올인’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많다. 학교 내신과 수능 모의고사의 성적 격차는 왜 나는 걸까? 두 시험이 어떻게 다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서울 숭의여고 정제원 교사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운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응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능 시험이라면, 대부분의 학교 내신 시험은 일정 기간에 배운 내용으로 시험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출제한 문제를 맞히는 유형이다. 가장 이상적인 공부법은 내신을 준비하면서 그 개념과 내용을 구조화해 체화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기엔 학생들의 시간이 부족하다. 좁은 범위의 내신 시험에는 강하지만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취약한 학생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의고사는 수능에 대비하기 위한 시험으로 고3 수험생은 물론 고1, 2 학생도 정기적으로 치른다. 출제 유형을 비교하면 모의고사와 수능은 서술형 없이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반면(수능 수학 영역 22~30번 문항만 단답형), 학교 내신 지필평가에는 서술형 문항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대구 경신고 허준일 교사는 “일반적으로 내신 성적의 산출 구조는 지필+서술형 평가+수행평가인데, 학교마다 환산 비율이 다를 수 있다. 수시 전형 중심의 학교라면 학생 참여형·탐구 중심형 수업이나 수행평가의 비중이 큰 데 반해, 정시 중심의 학교라면 상대적으로 지필평가의 변별에 무게를 둘 것이다. 정시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학교 내신 시험에 소홀한 학생도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내신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교과 개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내신 시험이 수능을 준비하는 중간 점검의 기회가 되도록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는 내신에 강할까, 모의고사에 강할까
내신 성적은 좋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안 좋은 학생도 있고, 내신 성적보다 모의고사 점수가 더 높은 학생도 있다. 학교 유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대체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많은 학교의 경우 모의고사 성적은 잘 나오지만 상대적으로 내신은 좋지 않을 수 있다.
모의고사 유형의 시험은 단기간의 학습으로 점수를 올리기 쉽지 않은 반면, 내신은 단기간의 전략적인 공부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끼리 전체를 봐야 구도가 잘 잡힌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코끼리의 다리나 코만 보고도 그 부분의 세밀화를 그리는 게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정 교사는 “흔히 꼼꼼하고 성실한 학생은 내신에 강하고, 머리가 좋고 사고력이 있는 학생은 수능 모의고사에 강하다는 얘기들도 하지만 단정지어 일반화할 순 없다. 큰 틀에서 본인의 학업을 설계하지 않고 단기간의 내신 공부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학원 과제에 급급한 지엽적인 학업 성취에 머물 수밖에 없다. 최근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시기에 맞춰 본인의 학업을 넓게 설계하고 고1 시기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신과 수능 다 잡아야 대입 선택지 많아져
어떤 전형으로 대학에 지원할지 결정할 때 흔히 내신 성적과 학생부, 모의고사 성적 등 세 가지를 가늠자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모의고사 성적이 내신에 비해 월등히 좋은 학생이라면 정시뿐 아니라 수시 논술 전형을 비롯해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높게 설정된 전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반대로 내신 성적이 더 우수한 학생이라면 정시보다는 수시에 비중을 두되 최저 기준 여부도 함께 체크해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주요 대학의 정시 확대와 최저 기준이 있는 학생부 교과 추천 전형의 선발 인원 증가 등으로 수능의 중요도가 자주 언급되면서 학교 내신 시험에 소홀해진 학생이 적지 않다.
허 교사는 “수능에 올인한다는 이유로 내신을 포기해선 안 된다. 내신 관리가 잘돼 있다면 고3 수시 원서를 쓸 때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지원하거나, 학생부 교과 전형에 도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능 최저 학력 기준 충족 가능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아무리 내신이 좋아도 최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주요 대학의 교과 전형에 합격할 수 없다. 상위권 주요 대학 중심으로 정시가 확대된 만큼, 정시 대비는 기본이다. 정시에서는 재학생 인원이 절대적으로 적은데, 대부분의 재학생이 수시 모집에 지원해 합격하고 빠져나간다. 정시에서는 수능 준비가 잘된 재학생이 드물다는 얘기다. 정시 합격은 N수생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수능 대비를 철저한 한 재학생에게 정시는 더 넓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간·기말고사 전 내신 공부 집중하고, 그 외 시간은 수능 학습 병행 전략으로
고1 시기에 모의고사 성적이 좋다고 해서 수능 정시 전형으로 지원하겠다고 결정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다. 1학년 모의고사에는 수능 범위가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고3의 모의고사나 수능에는 준비된 재수생들이 대거 진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학생의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기 평내고 왕수애 교사는 “1학년 때는 모의고사를 통해 수능 문제 유형을 접하고, 이후 2, 3학년에 어떻게 공부할지 감을 잡는 정도의 의미 부여가 바람직하다. 내신 챙기랴 학교 활동하랴 모의고사 준비까지 버거운 2학년이라면 과목별로 수능 문제 유형에 맞춰 보완해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일례로 국어의 경우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문학·비문학 등 크게 세 갈래이고, 문학은 다시 시와 소설로 나뉘어 고전시가, 고전문학, 현대시, 현대소설 등으로 분류된다. 비문학도 예술 철학 기술 등 분야별로 구분된다. 이렇게 유형을 파악한 뒤 모의고사를 치르면서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집중적으로 보완하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부해야 할 양이 많으므로 기간을 구분해 시간 배분을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본인의 학습 성향에 맞춰 중간, 기말고사 몇 주 전부터는 내신 준비에만 몰두하고, 시험 기간이 아닐 땐 수능 공부에 집중하는 식이다. 고3 수험생활을 앞둔 고2라면 입시 체제에 맞는 공부 방법을 계획해야 한다. 1~3월은 본인이 하고 싶은 수능 공부를 하는 게 좋지만, 4월에는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탐구 과목까지 포함해 1학기 중간고사 내신 공부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말고사 때도 같은 방법으로 시간을 안배한다. 단 시험 기간에 효율적으로 내신을 공부하려면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건 물론 틈틈이 복습을 해둬야 한다.
수학
증명 과정 꼼꼼히 암기해야 하는 내신,
수학적 개념의 구조화 필요한 모의고사
수학은 국어나 영어 등 다른 과목에 비해 내신과 모의고사의 성적 격차가 크지 않은 과목이다. 최근 ‘수능형’으로 내신 시험을 출제하는 학교가 늘긴 했지만 서술형 문항 출제 여부에 따라 유형의 차이가 크다.
서울 중산고 박상훈 교사는 “예를 들어 증명 문제가 나온다면 수능은 증명 과정 중 일부만 알아도 맞힐 수 있는 박스 채우기식이지만, 내신은 증명 과정 전체를 빠짐없이 다 써야 하는 시험으로 출제된다. 문제 풀이 시간도 수능은 30문항을 100분, 내신은 서술형을 포함한 20~25개 문항을 50분 안에 풀어야 한다. 1등급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모의고사에서 오지선다의 객관식 문항을 다 해결하고 어려운 문제 7문항 정도를 남겼을 때 남은 시간이 50분 남짓 된다. 반면 내신 시험은 어려운 문제 4개를 아직 못 풀었는데 남은 시간은 20분 정도다. 학생들이 느끼는 시간의 압박은 상대적으로 내신 시험에서 훨씬 크다. 수능을 치를 때 시간 안배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최상위권 학생은 내신 시험에서도 시간을 재가며 문제 풀이 연습을 할 것을 권한다”고 전했다.
일례로 수학 내신 시험은 증명 과정 전체를 다 외워야 하고, 답안을 적을 때도 꼭 들어가야 할 단서를 하나라도 빠트리거나 등호 표기를 실수하면 감점을 받을 수 있다. 교과서에서 문제가 나오므로 같은 수학 실력을 지녔더라도 교과서를 두세 번 이상 풀어본 학생, 즉 성실한 학생이 내신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박 교사는 “수능 문제는 출제 범위가 넓고 한 문항 안에 여러 개념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개념만 완벽히 이해하면 구조화된 문항까지 풀 수 있다. 반면 내신 서술형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문제 풀이 훈련이 따라줘야 한다. 수능과 내신의 수학 공부 방법이 아예 다르진 않지만, 상위권을 목표로 한다면 문제 풀이나 시간 안배 연습 등은 분명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영어
영작 서술형 문항 관건인 영어 내신,
낯선 지문 대비하는 모의고사 학습법 효과
영어 과목도 내신과 수능의 문제 유형이 다르다. 이에 맞춰 학습법도 달라져야 한다. 시험 유형의 가장 큰 차이는 수능에 비해 내신 시험이 문법 문제 출제 비중이 현격히 많고 매우 세세한 부분으로 문제가 구성된다는 점이다.
서울 덕원여고 박상근 교사는 “내신 시험은 영작 서술형 문항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모의고사를 대비할 땐 거시적인 관점에서 영어 지문을 공부하지만 내신은 이미 학습한 범위에서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준비해야 한다. 내신 시험 범위를 모두 암기할 수는 없으므로 주요 문장을 뽑아내 암기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반면 모의고사에서는 처음 보는 지문을 접하게 되는 만큼, 해석과 문제 풀이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내신 시험의 서술형 문제는 단답식부터 문장 완성하기, 조건에 맞게 문장이나 구문 만들기, 틀린 문법 찾아서 고치기, 이유 설명하기 등 학교에 따라 유형이 다양하다. 고득점을 얻으려면 방대한 양의 지문을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핵심 요소들을 파악하는 훈련이 평소에 잘돼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암기 학습도 불가피하다. 예를 들면 빈칸에 들어갈 단어 몇 개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유형인데, 이런 문항은 본 지문을 외우지 않으면 풀 수 없다. 반면 모의고사는 범위가 따로 없기 때문에 평소에 꾸준히 어휘, 구문, 독해력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해두어야 한다.
김 교사는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이긴 하지만 90점 이상의 1등급은 7% 전후이므로 결코 만만치 않다. 수시 최저 기준 충족을 위한 측면에서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과목이다. 고1, 2 학생이라면 평소 하루 1시간 정도는 영어 문제 풀이에 할애할 것을 권한다. 수학과 탐구 과목 등의 학습량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수험생활에 들어가기 전 어느 정도 수능 영어 학습을 완결지어놓는 것이 이상적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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