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1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서 선택 과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우선 학생이 자신의 흥미나 진로, 학업 수준에 맞는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한 제도의 취지에 맞게 보다 다양한 과목이 등장했다. 대입에서도 과목 이수 이력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와 동시에 학교 규모·지역에 따른 과목 개설 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환경적 요인이 학업 역량이나 대입 경쟁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에 교육 당국은 학생들이 거주지나 재학 중인 학교의 환경으로 인해 학습 기회를 제한받지 않도록 온라인학교 등을 확대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 대학·지역과 연계한 새로운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힘쓰고 있다. 대학의 전공 수업을 고교 교육과정에 맞춰 재구성하고, 잘 갖춰진 학습 인프라를 활용해 공부하는 과목을 개설·운영하는 '일반고-전문대학 연계 과목(과정)'이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실험·실습 인프라가 부족하고 개설된 심화 과목 수가 적은 일반고 학생에게 유익한 학습 기회이자, 자연스럽게 진로·진학 탐색의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배지은
내가 배울 과목 선택하는 고교학점제
지역·학교 간 과목 선택권 차이 커져 우려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이후 이전보다 더 '선택'이 강조되면서 선택 과목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이다. 특히 고교 유형이나 학생 수에 따라 개설되는 과목의 수나 유형이 차이 나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특목고에 비해 일반고는 실험·실습 인프라가 미흡해 관련 과목이 잘 개설되지 않고, 개설되더라도 제대로 수업이 이뤄지기 어렵다. 또 학생 수와 교원 수가 연동되다 보니 일부 지역은 기초 교과목 교원 확보조차 쉽지 않아 제2외국어나 교양 과목, 일반·진로·융합선택 과목 개설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열악한 학교가 다양한 과목을 제공하지 못하고, 이는 학생의 교육받을 기회를 제한해 입시 경쟁력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학교에 없는 과목도 배울 수 있다…
온라인학교 등 교육 기회 확대 중
교육 당국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소속 학교 밖에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공동 교육과정이 대표적이다. 서울처럼 학교가 많거나 좁은 범위에 여러 고교가 위치한 지역은 학교 간 교육과정 공유가 활발하다. 단위 학교마다 특화된 분야를 지정해 이와 관련한 수업을 인접 학교와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수요를 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달리 지역 내 고교가 적고 이동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도 단위로 온라인에서 단위 학교가 개설하기 어려운 소인수 과목, 특목고 또는 특성화고 과목 위주로 수업을 제공했다.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이후엔 이를 발전시킨 온라인학교가 전국 17개 시·도에서 문을 열었다. 방과 후나 주말, 방학을 활용해 운영하는 종전의 공동 교육과정과 달리 온라인학교는 소속 교원이 정규 수업 시간에 수업을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대학·공공기관 등 지역 사회에서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 밖 교육'도 확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도교육청이 지역 내 대학 등과 '학교 밖 교육기관' 협약을 맺고, 교과 수업이나 창의적 체험 활동을 개설해 학생이 해당 기관에서 수강하는 것이 골자다. 수업도 대학교수나 전문가가 진행한다.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우수한 인프라를 고교 교육에 활용하면서 수업의 다양성과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 1학기 학교 밖 교육을 통해 개설된 강좌는 556개, 수강생 수는 1만1천567명에 달한다(표 1). 지난해 1학기 331개 강좌에 7천920명이 수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새 46% 증가했다.
고급 실험부터 간호 실습·연기까지,
일반고-대학 연계 교육과정 눈길
교육 당국은 '학교 밖 교육' 중 하나로 대학과 손잡고 고교 대학 연계 학점 인정 과목(과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이론 중심의 교과 수업과 달리 실험·실습 과목 위주로 구성해 다양한 성향·진로의 학생들에게 새로운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직업·진로 탐색의 기회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8월 기준 4년제 일반대학 26개교 79개 강좌, 전문대학 7개교 19개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표 2). 특히 전문대학은 현재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인재 유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고교 단계에서부터 특성화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을 발굴·육성하며 대학을 알리고 미래 인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부 고교학점제지원과 김다니엘 교육연구관은 "직업교육 성격이 강한 전문 교과나 실험·실습 비중이 큰 특목고 과목은 일반고 자원만으로 소화하기 어렵다"라며 "대학의 자원을 활용해 고등학교의 다양한 과목 수요를 해소하면서 질 높은 수업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간 대학에서 제공했던 일회성 프로그램과 달리 대학 수업을 고교 교육과정에 맞춰 재구성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문대학은 대학마다 개설 가능한 특화 전공과 고교 교육과정상 개설 가능한 전문 교과의 특성과 내용을 교차 점검해, 일반고 학생이 소화할 만한 과목을 개발한다. 간호 분야라면 현재 특성화고 학생이 배울 수 있는 과목 중 하나인 <간호의 기초>와 대학 전공 수업 '간호학개론'을 재구성해 <간호일반>이라는 고시 외 과목을 제공하는 식이다. 학생이 이를 신청하면 해당 대학의 강의실에서 교수에게 수업을 받는다. 다른 과목과 같이 한 학기 동안 수업하며, 평가는 수업을 진행한 교수가 담당한다. 성적은 등급 없이 학점과 이수 사실,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만 학생부에 기재된다. 현재 유한대는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분석, 서정대는 반려동물과 휴먼케어, 세한대는 창의적 사고와 코딩, 한영대는 헬스테크놀로지와 간호 등을 운영 중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관심이 높고 전망이 밝은 바이오·AI와 같은 신산업 분야 과목을 발굴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더불어 학생 선호도가 높지만 사교육비 부담이 큰 예체능 계열 과목도 적극 개발·제공할 방침이다.
고교 졸업 학점과 대학 학점을 함께 취득하는 이중학점 인정 과목인 셈이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신나는공유학교'라는 플랫폼을 통해 2026년 기준 9개 교육지원청에서 10개의 이중학점 인정 과목을 운영 중이다. 지역교육지원청과 전문대학이 협력을 맺어 고교생 수준에 맞는 과목을 개발하고, 수업과 평가·학생부 기록과 관련한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벽깨기협력과 이정란 장학사는 "반도체나 인공지능, 바이오 같은 첨단 분야는 물론 스마트팜, 간호·재활, 만화 콘텐츠·영상 제작, 조리, 연기, 항공·식음료 서비스 등 다양한 수업을 전문대학과 함께 개발·제공 중"이라며 "일반 교과와 다른, 학생의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하고 진로 탐색 기회까지 제공하는 과목을 제공하면서 일반고에서 위탁 교육을 받는 학생이 감소하고 사교육비 지출도 낮아지는 한편, 지역 대학 인지도·선호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한대 평생교육원 김태호 원장은 "2026년을 기점으로 대학이 고교에 제공하던 교육의 무게 중심이 흥미 유발 및 단기 체험 중심에서 대학의 학문적 자원과 전문 인프라를 활용해 고교생의 학업 역량과 진로 역량을 높이는 수업으로 옮겨가는 중"이라며 "교수진이 직접 커리큘럼 기획·강의를 주도하고 대학의 최첨단 실험 실습 인프라를 개방해 우수한 지역인재를 양성하며, 이는 다시 지역 대학·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밝힌다.
위계 갖춘 2개 이상 교과목 제공 추진
고교-대학 이중학점 인정 과목도 개발
또 개별 교과 하나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기초-심화, 이론-실습 등 위계성을 갖춘 2개 이상의 과목을 계열화해 제공하는 직업 교육과정을 2학기부터 시범 운영한다. 깊이 있는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해당 수업을 제공한 전문대학에 진학할 경우 선이수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유한대의 경우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분석'을 개설했고, 이를 이수한 학생은 '고급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분석' 수업을 통해 심화 학습할 수 있다. 또 유학대 입학 시 2개 과목에서 획득한 4학점이 선이수 학점으로 반영된다.
교육부는 "고교-대학 연계 학점 인정 과목은 대학의 교육 자원을 활용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가 될 것"이라며 "지역 인재를 조기 발굴·육성하는 한편, 지역 내 대학 진학을 유도하고 정주 가능성을 높여 지역 소멸 위기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한다.
다만 고등교육 환경이 취약한 지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 지역 단위로 이뤄지고 있는 현재 수업이 시·도 단위나 전국 단위로 개방 시 학생 이동 등과 관련한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 성적이 산출되지 않고 진로 연계성이 높은 과목이 많아 대입 전략용 수업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학교 밖 교육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는 한편, 지역의 교육 역량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교수·학생이 말하는 고교-대학 연계 학점 인정 과목/
성공 아닌 성장 향하는 학생 변화 확인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의 변화를 체감했다. 특히 수업이 진행될수록 능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험 기구를 어색해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실험 조건을 설계하고 결과를 다각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를 진행하다 보니, 단편적인 실험 성공 여부에 매달리기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팀원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능동적인 연구자의 태도를 기른 셈이다. 또 대학 입장에서도 학교가 보유한 실무 맞춤형 교육과정의 우수성과 첨단 실습 환경을 고교 현장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동시에 바이오·제약 분야 인재를 발굴하고 지속적인 진로 멘토링 관계를 형성하며 미래 지원자 집단을 확보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_ 유한대 유한바이오제약전공 김대규 교수(학과장,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분석' 수업 진행)
직업 너머 바이오 분야로 진로 시야 넓혀
"중학교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고교 진학 후 임상병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좋은 기회로 지난 1학기 유한대의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분석 과목을 수강했는데, 다양한 이론을 배우고 직접 실험도 해보면서 평소 학교 수업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학의 수업 방식을 미리 경험하면서, 추후 유한대 진학 시 학점 인정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2학기에 고급 과정을 신청해 수강 중인데, 막연히 꿈꿨던 임상병리사라는 진로를 바이오·의약 분야와 연계해 구체화하고 있다."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