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답이 넘쳐나는 시대다. 검색 한 번이면 굳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이자 사업가인 장동민은 오히려 생각할 기회가 줄어든 환경을 아쉽게 바라본다. 어릴 때 글을 몰라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던 경험, 그리고 ‘이게 맞나’ 한 번 더 의심했던 습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정답이 넘치는 시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방향을 그에게 들어봤다.
취재 박선영 리포터 hena20@naeil.com
사진 위드장동민
장동민은
2004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옹달샘’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더 지니어스> <피의 게임> 등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전략과 심리전을 선보이며 ‘두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사업과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방송과 강연을 통해 자신만의 선택 기준과 경험을 전하고 있다.
Q 최근 OTT 서바이벌 프로그램 <배팅 온 팩트>에서 우승을 차지하셨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생각과 습관은 어땠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결핍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나요. 믿기지 않겠지만, 한글을 10살 즈음 익혔어요. 어릴 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글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엔 읽기 시험 때 글을 못 읽으면 교실 뒤쪽으로 나가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했어요. 너무 싫었죠. 그래서 제가 글을 읽을 차례가 됐을 때, 책 속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말했어요. 북극곰 그림이 있으면 ‘아기 곰이 빙판에서 미끄러졌다’는 식으로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웃음) 그 경험이 큰 울림을 줬어요. 꼭 정답대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됐거든요. 뿐만 아니라 저는 의심이 많았어요.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이게 맞나’ ‘다른 방법은 없나’ 한 번 더 생각했죠.
두뇌를 활용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좋은 결과를 낸 이후로 제게 생각하는 법,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많이 물어보는데, 특별한 훈련법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보나 지식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과 궁금해하는 제 기질이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해요. 다만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생각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일부러라도 ‘이게 맞나?’ ‘다르게 볼 수는 없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지 않을까요?
Q <더 지니어스> <피의 게임> 등에서 보여준 두뇌 플레이는 지금도 화제예요. 어려운 문제를 볼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저는 문제를 먼저 안 봐요. 특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사람부터 봅니다. 이 플레이를 누가 하고 있는지, 지금 이 판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먼저 파악하죠. 두뇌 게임도 현실이랑 똑같아요.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친구 관계에서든 결국은 사람이 움직입니다. 많은 친구들이 ‘내가 어떻게 이길까’만 생각하는데, 그건 반쪽짜리 생각이에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예측해야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봅니다. 내 기준으로만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거든요. 어렸을 때도 비슷했어요. 선생님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으면, 반 애들을 조용히 시키고 분위기를 정리했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결국 머리가 좋은 사람, 성적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 사람이 우위에 선다고 생각합니다.
Q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많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싶다고 하면 심리학책부터 떠올리곤 합니다. 정작 자기 주변 사람은 잘 보지 않아요.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친구가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선생님이 왜 오늘 예민해 보이는지, 이런 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읽는 훈련은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엄마가 화를 냈다면 왜 화가 났을지를 먼저 생각해보세요. ‘또 잔소리한다’가 아니라, 내가 뭘 놓쳤는지, 엄마 입장에서는 뭐가 답답했을지 되짚어보는 거죠. 그리고 ‘그럼 내가 어떻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엄마의 마음이 풀릴까’를 고민하고 직접 행동도 해보는 거예요.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친구가 갑자기 말수가 줄었다면 ‘쟤 왜 저래?’ 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런 건지, 다른 일이 있는 건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해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 내 주변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분위기를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후 친구에서 선생님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까지 생각하는 범위를 넓히다 보면, 어느새 경험이 쌓여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을 거예요.
Q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사업 등 늘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도전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현실적으로 이걸 해서 실제로 먹고살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요. 수익이 날 수 있는지,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는지, 오래 갈 수 있는지 등 감정을 배제하고 구조부터 파악하죠. 어릴 때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자연스럽게 잡힌 저만의 기준이에요.
많은 분이 ‘좋아하는 일’이나 ‘성장’을 기준으로 시작하는데, 이건 시작의 동기는 될 수 있어도 끝까지 가게 만드는 힘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하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예상 못한 변수들이 계속 생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시작할 때부터 힘들어도 계속 할 수 있는지,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져봅니다. 중간에 멈추고 싶지 않으니까요,
Q 최근 일상의 불편에서 페트병 라벨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셨죠.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바꾸는 힘은 무엇일까요?
특별한 건 없어요. 다들 한 번쯤은 ‘나 이거 예전에 생각했었는데’ 하잖아요. 불편함을 느끼면 ‘왜 이게 이렇게 돼 있지?’라고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다음에 ‘그럼 바꿔보면 어떨까’ 고민하죠.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멈춰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부담스럽거든요. 저는 ‘이거 했다가 안 되면 어떡하지’ ‘괜히 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지나치고, 해보는 쪽을 선택했어요.
제 경험상 실행을 하면 무언가 반드시 남아요.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가 뭘 놓쳤는지 다 피드백이 따라옵니다. 근데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그러니 작게라도 한 번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려고 하면 대부분 못하거든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실행한 사람만이 결과를 가져갈수 있어요.
Q 다양한 사업을 하시면서 실패도 많이 겪으셨는데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고 봐요. 3점슛 성공률이 35%라면, 65번은 실패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65번의 실패가 무서워서 공을 안 던지면, 35번의 성공도 절대 이룰 수 없어요.
대신 저는 실패했을 때의 감정을 오래 끌고 가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가 아니라 ‘이번엔 뭐 때문에 안 됐지’를 먼저 살펴요. 타이밍이 문제였는지, 운영 방식이 문제였는지, 판단을 잘못한 건지 나눠서 보는 거죠. 그리고 사업은 무조건 오래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고 보지 않아요. 한때 잘되다가 흐름이 바뀌면 접어야 하는 일도 있거든요. 고속도로가 너무 막히면 국도로 빠져나올 줄도 알아야 하는 것처럼요. 그건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판단일 수도 있어요. 또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배운 게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실패를 다음 선택의 재료로 쓰느냐, 그냥 상처로 남기느냐의 차이는 큽니다.
Q 실패도 많이 했지만 ‘최악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하셨는데. 이런 사고방식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선택을 할 때 도움이 됐나요?
이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상은 좀 달라요. ‘곧 좋은 날이 올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먼저 인정하는 쪽에 가깝죠.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최악이다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 생각에 계속 머물면 불행하다는 생각만 커지거든요. 그럴 때 저는 ‘아니야, 내일이 더 힘들 수도 있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기준이 바뀝니다. 최악이었던 순간이 그래도 내가 붙잡고 버틸 만한 하루가 되는 거죠. ‘망하면 어떡하지’에 멈춰 있지 말고 ‘어차피 쉽지 않은데,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하면 오늘을 버리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면 문제를 해결할 때도 도움이 돼요. 힘든 상황을 없던 일처럼 포장하지 않으니까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거든요.
이런 생각은 주변에서 자신을 달리 보게 만들어요. 모두 다 힘든데 계속 힘들다고만 하면 같이 지치잖아요. 똑같이 힘들어도 ‘괜찮아, 해보자’라는 쪽으로 표현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긍정적이고 에너지 있는 사람으로 봐주더라고요.
Q 청소년에게 가장 큰 부담은 학습이죠.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 고민하는 학생이 많은데,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합니다.
일단 성적과 지적 능력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머리 좋은 사람’은 자기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그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을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그럴 때 당황해서 멈추는 사람이 있고, 상황에 맞게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가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학벌이 좋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학력이 높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요. 결국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판단하고 쓰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이 스스로 ‘나는 머리가 안 좋은 것 같다’라고 단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직 자기 방식이나 강점을 못 찾은 걸 수도 있거든요. 상황에 맞게 선택하고, 그걸 계속 하면서 경험이 쌓으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학부모나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요즘은 결과에 대한 부담을 일찍부터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한 번의 시험이나 평가로 스스로를 판단해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사람마다 잘하는 영역을 찾아가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건 ‘경험’이에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요.
예를 들어 달리기를 했을 때, 단순히 나와 맞지 않아서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승패에만 의미를 두기보다는 ‘아, 이건 나에게 맞지 않는구나’라며 받아들이고 다른 방향을 찾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경험이 쌓여야 자기 기준이 생깁니다. 학부모님들도 이 부분을 조금 달리 바라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뒤처질까 봐, 실패해서 상처받을까 봐 미리 길을 정해주고 선택지를 줄여주는 경우를 많이 봐요. 결과를 대신 관리해주고, 위험한 선택은 애초에 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식이죠. 그런데 그렇게 모든 과정을 정리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판단해볼 기회를 잃게 됩니다. 결국 ‘누가 정해준 길’은 갈 수 있어도, ‘내가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는 힘은 길러지지 않아요. 여러 선택을 해보고, 그 안에서 자기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 저는 그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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