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훈씨는 고교 입학 전에 희망 전공을 찾았다. 3년간의 지망 학과가 동일하고, 실제 수시에서도 집중 지원했다. 지훈씨가 이렇게 직진한 전공은 ‘정치외교학과’다. 어린 시절 18세기 총기 ‘머스킷’에 반해 밀리터리 덕후(밀덕)가 된 후 전쟁사에 흥미를 느꼈다. 중3 때 오스트리아 대사관 직원과의 만남을 계기로 정치외교학을 알게 됐다.역사를 좋아하면서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자신에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고교 입학 후 막연히 생각했던 정치외교학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했다. 지망 전공은 변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전공을 탐색했다는 지훈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의종
서지훈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입학 예정(경기 동안고)
까다로운 과목에 올인? 흥미+효율 다 잡아
일찍 진로를 정한 덕분에 고교에서의 학습·활동 방향도 어렵지 않게 설정할 수 있었다. 전공의 성격을 고려해 선택 과목은 사회와 영어 과목 위주로 골랐다. 그중 고2 때 사탐 과목은 비교적 선택자가 적고 난도가 높은 <세계사> <정치와 법> <윤리와 사상>을 선택했다.
“역사와 정치에 대한 흥미로 <세계사> <정치와 법>을 선택했고, 철학에 대한 흥미로 <윤리와 사상>을 골랐죠. 고3 때 수능 준비에 집중해야 해 가장 듣고 싶은 과목은 고2 때 이수하자 싶었어요. 고1 <통합사회>에서 만점을 받아 사회 과목에 대한 자신감도 컸고요.”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공’한 것도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공부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서 학업 부담이 덜했다. 실제 공부해보니 전쟁사를 파고들며 쌓아둔 배경지식 덕분에 공부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과목을 선택할 때 선입견 없이 내용을 꼼꼼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과목 모두 암기량이 많다고 인식하는데 사실 기본 개념만 잘 갖춰두면 오히려 공부 시간이 크게 줄어요. 역사-제도-철학은 함께 배우면 서로 흐름이 이어져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거든요. 이처럼 암기량이나 난도에만 집중하면 다른 과목과의 시너지나 내가 가진 배경지식을 생각하지 못해 실제보다 어렵게 느껴 회피하게 돼요. 저도 지엽적이라는 막연한 편견에 지리 과목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사회 과목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제가 빠져 있던 전쟁사는 물론, 국내외 정치외교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과목임을 알고 후회했어요. 별다른 흥미가 없었던 수학은 알고 보니 철학과 연결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도가 높아 매력을 느꼈고요. 특히 제 관심 분야의 데이터를 다양한 탐구 활동에 접목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알수록 새로운 정치외교학 시야 넓혀준 탐구 활동
가장 인상 깊은 과목으로는 <정치와 법>을 꼽았다. 청소년 입장에선 더 추상적으로 느끼는 정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헌법, 권력 분립, 대통령 거부권, 국제형사재판소 등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정치 체계와 법에 대한 흥미는 다른 과목과 연결됐다.
고2 <윤리와 사상>에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행복의 조건을 묻다>를 읽고 진행한 토론에서 정치 참여를 두고 정치가 불만과 갈등을 양산해도 독재보다 참여 기회가 있는 것이 개인의 행복 보장에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개진해 서평에 담았다. <세계사>의 주제 탐구 활동에선 대륙법의 기원인 ‘로마법’을 주목했다. 당시 시대상과 철학과 연결하고 로마제국 수립에 미친 영향까지 정리하고, 대륙법과 영미법을 비교하며 세계사를 바꾼 법을 돌아봤다. 고3 <확률과 통계>에선 서로 다른 당 후보자의 공약집이 일치하는 이유를 중위 투표자 모형으로 분석해보고, <사회·문화>에선 기업의 탈관료화와 관료제적 문화를 답습하는 정부를 비교해 민주적 정부 운영 방안을 모색했다. 평상시 즐겼던 독서는 이런 학습과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하려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관심 분야를 좁혀야 한다는 조언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어요. 전 거꾸로 고1 때 러-우 전쟁, 미중 패권 경쟁 등 힘과 관련한 주제에 집중하다 고2부터는 정치 체제나 법, 그와 관련된 사상적 배경을 다루면서 범위를 넓혔고, 고3 때는 갈등에 대처하는 정부나 공동체의 역할,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 등 더 근본적인 질문과 관련한 주제를 탐구했어요. 이전에 읽었던 책이나 참고 자료를 더하니 좀 투박해도 제 고민을 깊이 다뤄볼 수 있었고요. 정치외교 문제는 배경이 복잡해요. 영토 분쟁부터 기술 경쟁, 기후위기까지 다양하죠. 역사·철학부터 수학·기후학·공학 등도 필요하고요. 선택 과목을 듣고 탐구 활동을 하면서 정치외교의 깊고 넓은 세계를 알게 됐어요. 후배들도 전공·진로를 너무 좁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전공·진로를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패는 경험, 포기 말고 도전하길
1등급대의 내신 성적과 충실했던 학교생활을 무기로 지훈씨는 수시 원서 5장은 학생부종합전형, 1장은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연세대·고려대 정치외교학과(학교추천·계열적합), 성균관대 글로벌리더학부, 연세대 HASS에 합격했다. 현재 가장 원했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고교에서 배울수록 시야가 넓어졌던 만큼, 대학에서도 특정 직업이나 진로를 목표로 삼기보다 학과 공부에 충실하며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고 싶다고. 입학 전까지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대입 준비 과정과 비법을 담은 유튜브를 제작해볼 계획이라고 알렸다.
“사실 수능을 공부하면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 컸어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내겐 수능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죠. 이런 순간을 누구나 한 번씩 겪어요. 그럴 때 좌절하고 포기하는 대신, ‘재능 없는 분야를 알았다’ ‘다른 재능을 찾아보자’라고 스스로를 독려하는 게 중요해요. 내신 시험을 한두 번 망쳤을 때, 염두에 둔 전공·진로가 맞지 않을 때, 탐구 활동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듣고 싶은 과목을 못 들었을 때 등도 마찬가지예요. 생각 외의 결과에 좌절하거나, 좌절을 겪고 싶지 않아 제자리에 머문다면 결국 후회만 남아요. 실패가 아니라 경험으로 털고, 성실하게 노력해나간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고요. 후배들이 좀 더 자신을 믿고 도전하며 입시를 치러나가길 응원합니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국어> <프랑스 대혁명 1>을 읽고 혁명의 이면에 있는 인민 대학살과 같은 어두운 역사적 사실을 한국 정치에서의 혐오, 흑색선전, 폭력 문제와 관련 지어 서평을 작성 <수학> ‘북한의 화성-15형 궤도 분석과 ICBM 보유가 국제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발표 <한국사> ‘닉슨 독트린과 데탕트’를 주제로 발표하며 현실과 냉혹한 국제 정치의 양상을 파악 <학교자율과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주제로 조사·토론
/2학년/
<수학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폴란드의 물가 상승률을 미분 개념을 이용해 시각화하고 분석 <영어Ⅱ> 프랑스 정부와 영국 정부의 소비자 권리에 대한 시각차를 설명하는 지문을 읽고 바람직한 정부의 규제의 조건을 논한 에세이 작성 <학교자율과정> ‘신흥강대국과 패권국의 정치역학적 변화가 패권 전쟁으로 이어지는 원인 탐구’를 주제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예정된 전쟁>을 참고해 국제 관계의 패권 갈등을 탐구
/3학년/
<한문Ⅰ> 맹자의 항산·항심 관련 문장을 통해 경제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를 다투는 국가 정책을 분석하고 <유토피아> <국부론> 등 서양 사상과도 비교 <사회문제탐구> 고위 공직자 자녀의 입시 비리를 아노미 이론과 <엘리트 세습>에 바탕해 분석
/의미 있었던 선택 과목/
▒ <정치와 법>_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정치와 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사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권력 전쟁 국익과 같은 ‘힘’의 본질과 이를 제어하는 사회 시스템의 역할을 돌아보게 됐다. 윤리나 지리 과목과 함께 공부하면 좋은 과목이다.
▒ <영어독해와 작문>_ 정치외교학을 지망하는 만큼 외국어 공부도 신경 썼다. 특히 영어는 세계 공용어인 만큼, 읽기 말하기 쓰기 듣기 역량을 고루 높이려 노력했는데, 원서를 깊이 읽을 수 있어 유의미했던 과목이다.
▒ <세계문제와 미래사회>_ 모교에 개설된 공동 교육과정이었다. 특정 분야,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다른 과목과 달리 다양한 주제를 넓게 다뤄 정치외교학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주요 창의적 체험 활동/
▒ 자율 활동(3학년)_ 창의적 독서 활동에서 <국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읽고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을 분석, 정치인의 윤리의식을 탐구
▒ 동아리 활동(1학년)_ 동아리 내 분과 인 ‘정치’ 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토의, 국제 사회의 대러 제재 방식을 고찰하고 미·중 패권 갈등을 진단, 소책자 제작 및 냉전 주제 전략 보드게임을 제작해 부스 행사 진행
▒ 진로 활동(2학년)_ ‘우아미 프로그램’에서 정치팀장을 맡아 ‘지정학의 정의와 가치 및 하트랜드/림랜드 이론 탐색’을 주제로 지정학 이론에 대해 모둠원과 탐구·영상 제작, 정치·군사·역사 분야 외에 지리학·기후학·인류학으로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