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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호

2024 공신들의 NEW 진로쾌담 | 세 번째 주제_파란만장 대입 도전

불안과 간절함이 이끈 문창과 정시 합격

글 김보민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bomuna0404@naver.com


돌이켜보면 한 우물만 팠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예창작학과만 지망했고 남들이 교과서를 펼칠 때 홀로 소설책을 찾아 읽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글을 배우고 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과제도 적당히 피해가며 해피한 (사실은 회피하는)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어른이지만, 완전 어른도 아닌 그런 ‘비(非)성년’의 위치에 선 채, 거창한 삶의 조언이라기보다는 솔직 담백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실기전형 올인, 무리수와 승부수 사이

문창과 입시는 대부분 실기전형이다. 하루에 치르는 실기 시험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준비 기간을 단번에 결정하는 셈이다. 특히 예체능 입시는 변수가 심하다. 발표가 날 때까지 누구도 합불 여부를 정확히 예상할 수 없다. 펜을 놓고 만족하면서 고사장을 나왔어도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포기하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에게 뜻밖의 합격 소식이 날아오기도 한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당일 시제도 중요하다. 그간 연습한 시제와 잘 맞아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슬프게도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준비해온 글에 시제를 끼워 맞춘 글은 티가 나니 어설프더라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을 보여주는 게 훨씬 낫다.

내가 문창과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건 고2 때였다. 실기 시험과 흡사한 현장과 특기자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구 백일장에 참가했다.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백일장은 주로 서울에서 열렸기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첫차를 타는 일도 많았다. 무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백일장에서 상도 하나 못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또래 친구가 학교에 남아 시험이나 수행평가를 준비할 때 홀로 백일장에 참가하면 기분이 묘했다. 뒤처지거나 내몰린 것 같은 기분. 그 불안은 언젠가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3이 되면서 담임 선생님과 면담할 일이 많아졌다. 1:1로 마주해 그간의 성적과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희망하는 대학이 상향·적정·하향 지원인지 정리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엔 국문과에 간 선배는 많아도 문창과에 진학한 사람은 없었다. 합불 여부가 대부분 실기 점수로 결정되기 때문에 상향과 적정, 하향 지원의 기준을 나누기도 애매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저 실기전형에 모든 힘을 쏟아야 했다. 실기는 당일에 주어진 시제와 그간의 노력과 운으로 결정된다. 당시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에서는 국문과나 신방과, 한국어과 등 유사한 학과도 지원하길 권했지만 난 꼭 문창과여야만 했다. 그래서 수시는 모두 실기전형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시험이 다가올수록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3간 남짓 자고 실기고사를 치를 때도 있었다. 실기고사일을 떠올리면 숨 막히도록 조용한 고사장에서 고개를 박은 채 자신의 글을 훑어보던 많은 학생이 떠오른다. 과연 이 반에서 합격자가 몇 명이나 나올까 걱정하다가도 나도 합격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입시는 중독이었고 희망 고문이었다.




연이은 수시 낙방, 극적인 정시 합격

‘수시 광탈’은 내겐 없을 줄 알았다. 한 번에 대학에 붙을 줄 알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도 받을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백일장 상은 놓친 적이 없었고 학교 대표로 도 대회에 나간 적도 많았다. 그러나 입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실감했다.

게다가 나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마감 시간을 못 맞춘다는 점이다. 발상부터 쓰기까지 오래 걸리는 나는 시제를 받고 즉석에서 이야기를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 글을 다 쓰지 못한 적도 많았고 얼토당토않게 선생님이었던 화자를 과학자로 바꾸는 실수도 했다. 짧은 시간에 쓴 글로 합격을 판별하는 입시 제도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불안이 앞설 때면 문창과 실기 후기를 찾아보며 위안을 받았다. 입시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감정의 낙차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수능이 끝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을 두고 혼자 빠져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한겨울 새벽녘에 꽁꽁 언 캠퍼스를 거닐거나 나를 실어 나른 아버지의 새 차 주행 거리가 쌓여갈 때 책임감과 압박감도 함께 쌓였다. (왕복 8시간이 넘는 거리를 당일치기로 직접 태워준 아버지, 감사합니다.) 계속 불합격 통보만 받았기에 합격자 발표도 쉽게 확인하지 못했다. 재수를 대비해 미리 계획표를 짜두기도 했다. 그만큼 문창과에 가고 싶었다.

결국 가장 마지막에 발표한 대학에 합격했다. 실눈으로 확인한 합격에 절로 눈물이 났다. 거실에 있던 아버지와 얼싸안으며 합격의 기쁨을 만끽했던 장면도 생생하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걸어가야 하는 아이러니가 과거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매 순간 불안을 느끼며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던 내게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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