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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호

그럼에도 학교 ⑳ | 학부모님, 손잡아볼까요?

<가리는 손> 문학 수업 이야기

글 이재호 교사
강원 양양고등학교

수업을 잘하는 교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교사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교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이들을 많이 좋아한다고 수줍게 고백할 수는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듯 학교도 많이 변해왔습니다. 긍정적 변화는 무엇인지, 아쉽게도 사라져가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교육을 이야기할 때 입시에 밀려 잊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학교가 사랑을 배우는 곳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학부모님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럼에도 학교’를 연재하고 있는 강원 양양고 이재호입니다. 그동안 적어온 학교 이야기들이 학부모님께 직접 와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이번에는 학부모님께 수업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보냅니다.

요즘 아이들의 문학 시간, 궁금하시지요. 작년 <문학> 과목에서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가리는 손> 전문을 읽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업의 모든 구상 과정과 활동지를 나눠주신 백운고 김애연, 박주은, 송재영, 김민성 선생님 덕분에 엄두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는 이렇게 대가 없이 수업을 나누는 문화가 있답니다.) 우선 <가리는 손>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내 자녀가 누군가의 사망 사건에 연루됐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동남아시아 국적의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 재이를 홀로 키우며 영양사로 일합니다. 재이는 교회 성가대에서 독창을 할 정도로 노래를 잘했으나, 또래 아이가 쓴 모욕적인 쪽지를 읽은 뒤 더는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 밖에도 작품 내내 재이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차별을 겪고 있음을 짐작할 만한 일이 많이 나옵니다.

어느 날 ‘나’는 재이와 함께 경찰서에 가게 됩니다. 경찰서에서 돌려 본 CCTV에는 청소년 한 무리가 폐지 줍던 노인을 폭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화면 속 재이는 놀란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지켜만 보다가 자리를 뜹니다. 잠시 후 두고 온 인형을 챙기면서도 노인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결국 노인은 사망합니다. 왜 신고하지 않았냐는 조사관의 물음에 재이는 학원을 빼먹어서 혼날까 봐 그랬다고 답변합니다. 그날 학원 수업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나’는 재이가 왜 거짓말을 했을지 고민합니다.



「‘나’는 재이의 생일 기념 식사 도중, 노인의 장례식에 가보자고 말합니다. 돌아가신 이에게 절을 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손, 밥 먹는 손을 가리는 것이라고도 알려줍니다. 생각해보겠다고 답한 재이에게 청소년들이 노인에게 했던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틀딱’이라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가 입을 손으로 가리는 재이. 나는 틀딱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문득 CCTV 속, 손에 가려져 있던 재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손에 가려진 재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웃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_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가리는 손>, 김애란 작가



이 소설은 다양한 차별이 겹겹이 등장하고 차별받은 이가 또 다른 차별을 자행하는 등 함께 생각할 거리가 많아 수업에서 활용하기 적합했습니다. 전문을 읽고 아이들과 진행한 수업의 흐름은 [소설이 필요한 이유 생각해보기-인물 탐구하기-핵심 질문 만들어 책 대화하기-성취 기준을 바탕으로 내용 정리하기]였습니다. 먼저, 소설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글을 정리해보았는데요, 이때 문제가 생깁니다. 실은 제가 사랑하는 딸이 태어나 2주간 출산휴가를 다녀왔거든요. 작년 교생실습을 하셨던 선생님이 수락해주셔서 잠시 수업을 맡아주셨습니다. 소설 전문을 읽고 ‘소설이 필요한 이유’까지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산휴가 중간에 선생님과 통화를 했더니 “선생님, 수업 망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몇몇 아이들이 불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왜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2학년 아이들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1학년 때 이러저러한 사건 사고가 이어져, 당시만 해도 공공연하게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학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지금은 전혀 아니랍니다!) 아이들과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는데 학기초부터 수업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그간 들어온 소문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우리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던 그 순간

씩씩거리며 휴가 후 첫 수업을 준비하던 밤, 김애연 선생님이 공유해주신 활동지 ‘소설이 필요한 이유’에 적힌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폭력이란 함부로 단정하고 판단하는 태도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덜 폭력적이 된다. 나쁜 판단은 편하고 쉽다. ‘어떤 사람이 나쁘다’에 동조하긴 쉽다.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건 상당히 귀찮고 힘이 든다. 소설 읽기는 비폭력적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게 만드는 훈련이다.



활동지에 적혀 있는 폭력의 정의, 함부로 단정하고 판단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100여 명에 가까운 2학년 아이들을 아주 가뿐하게 ‘말썽꾸러기’로 요약했습니다. 어느 학년에나 말썽 좀 부리는 아이들은 있습니다. 그들과 막상 수업에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배워보면 빛나는 얼굴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많이 경험해왔습니다.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출산휴가에서 돌아와 제 부끄러운 마음에 대해 아이들에게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타인을 함부로 단정하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임을 밝히고, 너희를 함부로 단정하고 판단하지 않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대신 교과서로 요약된 것이 아니라 소설 전문을 읽으며 배움에 중심을 둔 수업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다시 수업으로 돌아와, 본격 인물 탐구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나(재이 엄마)’와 ‘재이’ 두 인물만 모둠별로 분석했습니다. 교과서 밖 소설이어서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들은 다양한 생각을 펼쳤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승비가 재이 엄마를 감싸주었던 장면입니다. 엄마는 재이에게 왜 노인을 돕지 않았냐며 엉덩이를 한 대 때리지도 않고 화도 안 냅니다. 그런 면에서 부모로서 잘못된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승비는 엄마의 입장에 서서 ‘자기 아이를 끝까지 믿고 싶었던 마음’일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지요.

사이코패스. 아이들은 재이에 대한 인물 분석을 할 때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모둠에서는 재이가 사이코패스인지 소시오패스인지를 분석해보기까지 했습니다. 대부분 거짓말을 하고 노인을 방치한 재이를 비판할 때, ‘재이는 그저 더 성장해야 할 아이 같다’는 혜주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혜주의 말처럼 재이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승훈이는 덧붙여, 노인의 죽음 앞에 놀랐을 재이에게 심리상담 및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이 따뜻하고 정확한 공감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인물 분석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너희도 선생님들이 넌 이런 애잖아, 하고 단정지어 생각할 때 제일 싫지 않니?” 재이를 사이코패스라고 단정짓던 아이들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습니다. 특히 재이가 웃음 짓던 ‘틀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격하게 비판하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너희도 중학생 때 틀딱이라는 말을 듣고 웃은 적은 없니?” 교실의 많은 아이들이 멋쩍은 웃음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뜰딱’의 의미를 아시나요?

학부모님, ‘틀딱’의 의미를 아시나요? ‘틀니를 딱딱거리며 말한다’는 뜻의 노인 혐오 표현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은 이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했던 듯합니다. 재이가 저 단어를 듣고 웃었을 거라 짐작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악마화’하던 재이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차별을 경험한 재이가 노인차별적 표현에 웃었던 것처럼, 2학년 아이들도 말썽꾸러기라며 나름의 차별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재이의 단편적 모습만을 비판했던 것이지요. 이 아이들도 잠시 재이였던 것입니다.

수업 마무리 활동에서 비로소 이 수업을 진행했던 이유를 밝혔습니다. 문학의 본질, 그중에서도 인식적 기능과 윤리적 기능을 배우기 위해 소설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문학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것은 문학의 ‘인식적 기능’,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은 문학의 ‘윤리적 기능’에 해당합니다. 아이들은 <가리는 손>을 통해 차별받는 삶의 모습을 경험하며 한 사람의 생을 함부로 요약하거나 단정하는 것의 폭력성을 체감하고 ‘인식’했습니다. 윤리적 기능은 ‘앞으로’에 방점이 찍힙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수업 마무리에서 아이들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단정짓지 않겠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배움이 삶으로 체화되는 것은 더 오래 걸리겠지요. 다만,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늘 마음속에 재이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찰할 것이라 믿습니다. 여담으로 아이들에게 ‘10년 뒤에 만나면 재이가 동창이었던 걸로 착각할 수 있다’고 말하니 깔깔 웃습니다.

수업을 마치고도 오랜 여운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교사인 저 스스로도 내면에 무의식적인 차별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 타인을 쉽게 단정하거나 요약할 수 있다고 깨닫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가장 큰 배움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드리는 솔직한 이유,
혐오의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학부모님께 이 편지를 보내게 된 솔직한 이유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많은 선생님이 배움에 중점을 둔 수업을 시도했다가 불안해하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님의 민원에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수업의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소 열심히 수업을 듣던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엎드려 있는 겁니다. 얼굴을 가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중에 물었더니 방학 때부터 내신 준비를 하느라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다 해뒀는데 문학 교과서로 진도를 안 나가서 좌절했다는 겁니다. 소설 전문을 읽고 한 사람을 요약 없이 단정짓지 않도록 깊이 이해해보려 했다며 다독였지만 여전히 마음은 열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입에만 신경 쓰는 불평쟁이.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아이를 요약하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고통스러웠지만 계속 고민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 아이가 되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아이고, 저도 고등학생 때 토론 수업이라도 할라 치면 ‘시험은 어떻게 보나’ 하며 얼마나 불안해했던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아이의 그 마음은 불안이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수업 끝나기 전, 시험을 위해서 필요한 지식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서술형 평가의 경우에는 시험 전에 연습 문제도 풀어보자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이미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수업에 성실히 임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다가와서는 죄송하다고 불안해서 그랬다고 솔직히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의 불안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님을 요약해서 단정짓지 않으려 합니다. 요즘 학부모님이야말로 그저 불만 가득한 악성 민원인으로 요약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면 또 얼굴이 붉어집니다. 고등학교를 ‘대입 준비 기관’으로 요약하고 단정짓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학부모님, 아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시도하는 교사들을 지지해주십시오. 수업을 바꾸려면 교사만 움직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뿐하게 요약하고 악마화하며 혐오하는 세상입니다. 학교는 그런 세상을 바꿔줄 아이들이 자라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 배우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이를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불안일까요. 학부모님과 손을 맞잡지 않는 한 수업은, 평가는, 학교는 바뀌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손잡고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 꼭 학교여야만 할까,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학교 혁신과 수업 개선은 대입의 장벽 앞에 자주 가로막히곤 합니다.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면서 지방 소도시 학교는 존폐 여부를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수업이 잘 안 될까 봐, 아이들이 괴로울까 봐, 우리 동네가 사라질까 봐… 걱정도 고민도 많지만, 강원 양양고 이재호 교사는 ‘그럼에도 학교’라 말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학교’를 지켜야 하는 이유, 이 칼럼을 통해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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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호 교사 (강원 양양고등학교)
  • COLUMN (2024년 05월 15일 1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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