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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호

내일신문·내일교육 공동 기획 | 교육학 이론으로 다시 보는 교육 이슈 ⑨

조선 시대 학교의 수업 방식

글 이상무 교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후에는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
한남대 교육학과 조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조교수를 역임하고,
2023년 9월부터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시대 교육 제도 및 과거 제도를 주로 공부하며, 최근에는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 교육사로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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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중에서는 디지털 대전환을 맞이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웬 조선 시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보면 한가한 이야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조선 시대 향교의 등교 방식

많은 사람들은 학교에 간다고 하면, 평일에는 매일 등교를 기본으로 생각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3월부터 7월 중순까지, 8월 중순부터 12월 말이나 1월 초까지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등교 방식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매일 학교에 통학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어야 가능한 방식이다. 여기에는 교통수단의 발달도 큰 기여를 했다.

조선 시대에 향교는 오늘날의 시·군 단위인 부·목·군·현마다 하나씩 설치됐다. 지역 내에서 대성전(大成殿)이라고 하는 공자의 사당을 갖춘 유일한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위상은 확고했다.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이 향교에 다닌다고 한다면 해당 지역에 있는 향교로 가야 했다. 예컨대, 지금의 서울 노량진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과천현(縣)에 속한다. 노량진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은 과천향교로 와야 한다. 현재 노량진역에서 과천 시내까지 도보로 약 3시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 등교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했다면 시간 낭비일 것이다. 그래서 향교에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라는 기숙사가 있었다. 문제는 이 기숙사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향교의 정원은 행정구역의 크기에 따라 30~90명이었다. 상당수는 정원이 30명인데, 향교의 동재와 서재를 직접 봤다면 거기에서 30명이 한꺼번에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동재와 서재를 활용했을까? 바로 분번거학(分番居學)이라고 하는 방식이다.

분번거학은 번(番)을 나누어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공부한다는 뜻이다. 당시 조선 시대의 규정들을 살펴보면 향교 한 곳의 정원을 5개의 번으로 나누어 하나의 번이 열흘씩 공부하게 되어 있다. 정원이 30명인 향교라면 6명이 하나의 번이 되어 공부하다가, 열흘이 지나면 다음 번이, 다시 열흘이 지나면 그다음 번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즉, 향교는 오늘날처럼 매일매일 등교하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 향교의 수업 방식

이렇게 하면 여러 사람이 등교할 수 있기는 하나, 다른 4개의 번이 향교에서 공부하는 40일가량 집에만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공백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바로 제삿날을 이용했다. 향교는 음력으로 1일과 15일에 대성전에 있는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날은 향교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대성전에서 제사를 지낸 후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에 모여 함께 공부한다. 누군가는 향교에서 제사만 지냈다고 주장하지만, 향교에서 제사 지내는 날은 결국 함께 모여 공부하는 날이 된다. 정리하자면 자기 번이 되면 열흘 동안 향교에서 기숙하면서 공부하다가, 자기 번이 아닐 때는 집에서 공부하고 제사 지내는 날 모든 학생이 학교에 모여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5개의 번이 도는 동안 13일 정도만 등교하는 것이다.

향교의 수업 방식은 이전에 선생님과 공부할 때 읽어오기로 한 부분을 읽어오고 그 부분을 잘 공부했는지 확인받는 것이었다. 전체 학생들이 같은 글을 읽고 와서 함께 공부할 때도 있지만, 일상적인 수업 장면에서는 주로 자기가 읽어온 것을 확인받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별로 진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자기가 공부한 바를 가지고 선생님과 수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도는 학생별로 다르게 되고, 개별화된 수업이 진행된다. 또한 학생이 미리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필요하면 토론도 하는데, 이 모습에서 동영상으로 미리 영상을 보는 장면이 없었을 뿐 오늘날의 거꾸로 수업과도 유사한 점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업 방식은 근대 공교육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 보편화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방식으로 수업한 지 길어야 1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수업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대안을 도출할 때, 마치 아주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실들을 추적하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미래 교실 수업의 방향이나 대안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유사한 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무학년제, 개별화된 수업 이런 것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나름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하나의 검증된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떤 정책을 구상하면서 우리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가 다른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는데, 그 제도나 정책이 우리의 교육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겠지만, 외국 것을 따라 하면서도 정작 우리 교육의 역사적 궤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어쩌면 이 때문에 우리가 미래 사회를 대비할 때, 누군가는 쓸모없어 보이는 우리 교육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110호부터 학교 안팎에서 고민이 큰 중요한 교육 이슈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학자 12명의 릴레이 칼럼이 이어집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수를 시작으로 강지영(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강태훈(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김동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김준엽(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박소영(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 박주형(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 이상무(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한종(춘천교대 교육학과 교수) 임효진(서울교대 초등교육과 교수) 조현명(이화여대 연구교수) 황지원(서울시립대 교육대학원 교수) 등 1990년대에 교육학과에 재학하면서 함께 공부한 3세대 대표 교육학자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해법을 만나보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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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무 교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 COLUMN (2023년 12월 13일 1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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