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를 두고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올초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전국 각지 농가의 시름이 깊은 지금, 매회 공연마다 300t(톤)의 물을 쓰는 행사가 적절한가를 두고 대립한다. 코로나 사태로 잠시 멈추긴 했으나 여름에 특화된, 워터파크를 방불케 하며 매년 뜨거운 호응을 이끈 ‘흠뻑쇼’를 ‘몹쓸쇼’로 만든 주역은 기상이변 ‘라니냐’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라니냐는 올해 봄 사라질 것으로 관측됐지만 예상을 깨고 세력을 계속 확장하며 지구촌 곳곳을 가물게 하는 중이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리니냐 현상과 그 여파를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목마른 지구
이상기후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어. 미국 남서부지역과 인도, 파키스탄은 기온이 50℃가 훌쩍 넘는 날이 계속되고 있고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 곳곳에서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연일 이어지고 있지. 이라크에선 가뭄으로 인한 모래폭풍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칠레에선 200만 주민의 식수원 역할을 하던 거대한 호수가 사막이 돼버렸다지 뭐야.
폭염과 가뭄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인류의 먹을거리와 직결되기 때문이야. 가뜩이나 ‘세계의 빵공장’이라 불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싸우고 있어 밀가루 가격이 무섭게 올랐는데, 이번엔 이상기후로 밀가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판이거든. 러-우의 대체국 노릇을 하던 미국과 인도가 난리도 아니잖니~ 뜨거워서. 게다가 인도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하기까지 했어. 밀가루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수출하는 게 이득이지만 공급량이 국내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할 지경이라니 원.
이에 전문가들은 1~2개월 안에 세계 밀 비축분(생산량은 제외)이 바닥날 거라 전망하고 있어. WFP(유엔세계식량계획)은 ‘전 세계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를 내놓기까지 했지.
지구촌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이니만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냐. 지난겨울부터 시작돼 반년간 계속되고 있는 가뭄으로 전 국토가 ‘목말라… 물, 물이 필요해!’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거든. (기상청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강수량 기록을 갱신 중이래.) 감자와 고추는 지금 열매를 맺는 시기라 물이 많이 필요한데 타들어가고 있고, 그나마 심은 농작물들도 제때 물을 대지 못해 썩어가고 있지. 고구마 농사도 포기한 농가가 한 둘이 아니고. 이제 ‘식탁 위 나물 반찬 실종 사건’이 개봉 박두할 판이야.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더 큰 문제는 곧 들이닥칠 장마야. 논밭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있는 마당에 장마가 오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곧 가뭄만큼이나 치명적인 ‘물난리’가 들이닥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어.
현재 지구촌 곳곳에 폭염과 가뭄을 몰고 온 주역은 태평양 동쪽 바다의 수온이 내려가 생기는 기상이변 현상, ‘라니냐’라고 해. 라니냐는 우리나라에 극심한 가뭄을 몰고 오는 동시에 여름철 집중호우의 원인이기도 하지. 과거 서울 광화문 광장이 물에 잠기고, 강남에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했던 2010년과 2011년 역시 라니냐가 한몫을 했다나 뭐라나.
가뭄의 원인, 라니냐
라니냐는 <통합과학>에서 ‘엘니뇨’와 함께 세트로 등장해. 어쩐지 익숙하다 했지? 이름만 들어봐도 느낌이 팍 올 걸? (스페인어로) 라니냐는 ‘여자아이’, 엘니뇨는 ‘남자아이’를 뜻하거든. 실상 이 ‘두 아이’는 태평양 바닷물의 온도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상이변의 원인일 뿐 기상이변 그 자체는 아니란다. 지구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거지. 라니냐를 이해하기 위해선 엘니뇨를 먼저 알 필요가 있어.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들어가 찬물을 틀면 바닥으로 찬물이 전달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당장 욕조로 고고!) 그러다 물 전체가 서서히 차가워지지. 이 원리를 지구로 확대해보자. 북극 지방은 바닷물이 차갑잖아. (평균 영하 1~4℃래.) 그럼 이 물은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겠지. 차가워진 물은 바다 아래를 따라 흐르면서 물에 떠다니는 많은 영양분과 함께 위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 차가운 물이 가장 많이 올라오는 지역이 페루 앞바다야.
페루 앞바다는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어. 태양과 가까우니 당연히 따뜻하지. (표면 온도 약 32℃.) 이곳에 차가운 물이 올라오면? 바닷물이 식어. 그리고 찬물과 함께 올라온 영양분은 바다 생물의 풍부한 먹이가 되고. 페루 앞바다에 대규모의 어장이 형성된 이유야. 한데 이런 현상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나진 않아. 찬물이 때에 맞춰 바다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으면 적도 부근의 바다가 뜨거워져 물의 증발량이 많아지게 되고 육지도 덩달아 뜨거워져. 그럼 페루 부근에 큰비가 내리겠지. 한쪽에 홍수가 나면 반대쪽에선 큰 가뭄이 나타나는 건 당연지사! 요런 현상이 바로 엘니뇨란다. 배경지식을 알았으니, 그럼 이제 라니냐를 알아볼까?
라니냐 톺아보기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5개월 넘게 평년보다 0.5℃ 이상 낮은 경우를 가리켜. 엘니뇨 시작 전이나 끝난 후, 평균보다 강한 적도 무역풍이 지속될 때 발생하는 기후 변동 현상이야. 대체적으로 둘은 선후관계로 인식되지만 엘니뇨 다음에 반드시 라니냐가 오는 건 아냐. 엘니뇨가 있고 난 뒤에 예년 기온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라니냐로 이어지는 건 드물었다는 게 정설이지.
평상시에 적도 부근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서태평양이 높고, 동태평양·남아메리카 연안이 낮아. 이 같은 온도 차로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쪽으로 흐르는 ‘대류 현상’이 생기지. 또 태평양 상공의 대기는 서태평양 지역에서는 저기압, 동태평양 지역에서는 고기압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때문에 인도네시아 등의 서태평양 지역은 저기압 상태에서 강한 상승 기류가 발생해 평소에 비가 많이 오고, 페루 등의 동태평양 지역은 날씨가 맑고 건조하단다.
무역풍이 평년보다 강해지면 서태평양의 바닷물 온도는 상승하고 동태평양의 온도가 낮아지게 돼. 그럼 서태평양 부근의 바닷물이 증발해 상승 기류가 강화되며 장마 같은 지속적인 강수 현상이 나타나겠지. 반면 동태평양 부근에선 한랭 건조 현상이 발생하며 가뭄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뭐라고 한다고? 라니냐! (엘니뇨랑 찐 반대!) 지금 상황은, 라니냐의 영향으로 서태평양에 강한 고기압이 나타났고, 이 반작용으로 저기압이 강해졌고, 또 그 반작용으로 고기압과 저기압이 차례로 강화됐는데(헉헉!) 마침 우리나라가 고기압이 강화되는 위치에 놓여서 비구름이 줄고 가뭄이 온 거야. 온 지구가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겠지!?
라니냐는 엘니뇨보다 축적된 연구 자료가 훨씬 적어서 기상 예측이 매우 힘들다고 해. 피해 예상 지역을 잡아내기도 그만큼 어렵고. 문제는 최근 들어 라니냐의 위력이 더 강해지고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는 거야. 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바다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거든.
온난화와 식량 안보
원활한 식량 생산을 위해선 언제 비가 올지, 언제 추워질지 예측 가능해야 해. 하지만 라니냐가 잦아지면서(엘니뇨도) 이게 다 어그러지고 있어. 지구촌 곳곳에서 비가 내리지 않아야 할 시점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비가 와야 할 시점에 가뭄이 찾아오고 있잖니. 또 어느 때엔 뜬금없이 눈이 내려 곡물들이 다 얼어버리기도 하고. 이러니 곡물 생산량이 확 줄 수밖에.
각국의 곡물 생산량이 줄고 공급량이 부족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코로나와 러-우 사태로 우린 이미 경험해봤잖아.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은 쌀, 인도네시아는 팜유, 인도는 밀 수출을 금지했지. 이걸 ‘식량 보호주의적 정책’이라 해. IFPRI(국제식량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러-우 전쟁 이후 자국 중심의 식량 보호정책을 펼친 나라가 23개국이나 된대. 문제는 앞으로야. 기후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고 그만큼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훨씬 더 자주, 그리고 강하게 발생할 테니까. 우리나라는 전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야.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 우린… 말잇못.
싸이의 ‘흠뻑쇼’를 두고 ‘내돈내산이 왜 문제냐’ 할 수 있어. 하지만 영향력 있는 셀럽이 방송을 통해 한 언행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다름은 자명해.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심정과 곡물 값 상승에 힘겨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결코 박수받을 순 없는 일일 거야. 만인의 사랑으로 큰 가수잖니. 완전 꼰대라고? 흠, 과연 식탁 위가 휑~해져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곧 들이닥칠 장마가 메마른 땅에 단비만 뿌리고 물러가주길 두 손 모아 기도하자. 빵순이, 떡순이라면 더더욱!
어느 때보다 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를 걸러내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거죠. 과학 기술의 발전, 가치관의 변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도움이 될 이슈를 콕 집어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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