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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1042호

소(笑)·심(心)한 일상 톡톡

선거는 어려워!

취재·사진 윤소영 리포터 yoonsy@naeil.com


애증의 반장 선거



“나 이제 다시는 반장 선거 안 나갈 거야.”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아들이 화를 내며 들어왔어요. 전날 밤늦도록 거실에서 발표 연습을 하더니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인지. 뚱하니 심통만 부리는 아들을 살살 꼬드겨 말을 시켜봤습니다.

“후보가 10명이나 나온 거 있지? 다들 친한 친구도 많고 발표도 잘하고… 난 겨우 3표 받았어. 창피하게. ㅠㅠ”

시무룩한 표정으로 쫑알쫑알 털어놓는 얘기를 들어보니 보드판에 공약을 깔끔하게 정리해 발표한 친구, 실내화를 벗어 치켜들고 ‘이것이 다 닳도록 뛰겠다’ 공언한 친구, 매점에서 모두의 간식을 책임지겠다는 친구, 고민 상자를 만들어 학급 문제를 다 해결해주겠다는 친구, 라면 수프를 들고 와서 학급의 감칠맛이 되겠다는 친구, 금요일마다 미니 체육대회를 열겠다는 친구까지. 자기는 미처 생각지 못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공약과 발표에 기가 팍 눌렸더라고요.

초등학교 내내 학급 임원을 도맡았던 ‘인싸’ 아들이 새 동네로 이사 와 낯선 중학교의 새로운 문화에서는 인정받지 못해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괜찮아~ 이번엔 조금 부족했었나 보네.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그래도 뭐든 한 번 도전해본 사람만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아무것도 안 해. 다 필요 없다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아들은 진심으로 반장이 되고 싶었나 봐요. 그 속상함이 이해되지만 이왕지사 패배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툭툭 털고 단단하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그리하여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결핍과 실패에도 절대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부모님의 2차전, 학부모임원 선거



신학기라 아이들 학교마다 ‘e알리미’가 쉴 틈 없이 울리네요. 그 소리에 어떤 다른 앱보다 가장 먼저 확인해보게 돼요. 단단히 붙들고 있는 신학기 동아줄 같은 학교와의 연결망이거든요. 개학을 하고도 계속되는 코로나19로 등교-비등교 수업이 오락가락하니 더 신경이 쓰이네요. 중학교 신입생에게는 새 교복 마련, 방과 후 학습 신청, 동아리 선발, 스쿨뱅킹 연결, 자유학년제 활동 선택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요.

그 많은 메시지 중에서 유독 무게가 느껴지는 내용은 학부모총회에서 실시하는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 선출이었어요. 하루 전,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아이에게 무게 잡고 ‘실패해도 도전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훈계(?)했거든요. 엄마인 저도 모범을 보여야 하나 흔들렸으나 이내 묻어두었습니다.

그 후 ‘e알리미’에서 확인한 후보는 놀랍게도 무려 12명! 화려한 이력의 입후보 소견과 저마다 자기가 적임자라는 발표 영상 링크가 함께 따라왔어요. 그중 2명을 고르기가 어려워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데 잠시 눈길을 주던 아이가 중얼거리네요.

“꼭 우리 반 애들처럼 그 엄마, 아빠들도 말을 참 잘하시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부모 임원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소수의 학급 임원 학부모가 지원해 투표 없이 당선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다들 바쁜 직업인이지만 아이를 위해 학교일에 참여하려는 뜨거운 교육열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에 나선 그 모습!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반장 선거에 나왔는지 알겠더라고요. 교육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야 하고 감동하다 뒷목이 쭈삣 섰습니다. 내년엔 아들과 함께 저도 나가야 할까요? ;;;




매일 비슷해한 일상 속 특별한 날이 있죠.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는 코너입니다. 재밌거나 의미 있어 공유하고 싶은 사연 혹은 마음 터놓고 나누고 싶은 고민까지 이메일(lena@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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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U TALK_ 소(笑)‧심(心)한 일상 톡톡 (2022년 04월 20일 10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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