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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1032호

별별 Talk Talk

의도치 않은 ‘도서관 시트콤’

취재·사진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정(情)이란 무엇인가

점심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있는 제 등 뒤로 중1 작은아이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엄마~ 나 도서관에 가서 책 좀 빌려올게!”
“어? 지금 갈 거야? OO야, 엄마도 책 반납할 거 있는데 가는 김에 부탁 좀~”

둘의 대화 소리에 고1 큰아이도 방문을 빼꼼 열고 한마디 보텝니다.
“야, 잘됐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만 빌려다주라. <정의란 무엇인가> 들어봤지? 하버드 교수가 썼다는 책. 진심 읽기 귀찮은데 방학 숙제로 감상문 써서 제출하라네. 아우!”

“빌려오면 나 뭐 해줄 건데?”
“얘는 거저 해주는 법이 없어. 참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모범 시민이라니까. 그래~ 맘 넓은 내가 봐준다. 빌려오면 너 좋아하는 다트 게임하자. 오케이? 단, 졌다고 울면 안 된다!”
“아싸~ 형아 최고! 얼른 다녀올 테니까 딱 준비하고 있어.”

잠시 뒤….
“다녀왔습니다! 형 어딨어? 여기 책 왔다! 짜자잔~ 근데 지은이가 하버드 교수라며 왜 우리나라 이름이야? 하긴, 똘똘한 한국인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
“뭐? 한국인? (책 확인 후) 헉! 이건 뭥미? 엄마, 엄마! 얘 빌려온 책 좀 봐! 야, 너 진짜 대박!”





음? 읽고 싶은 책이 진짜 그거…야?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그리도 노력했건만!
꼬꼬마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줬던 제 눈물겨운 노력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중2 아이는 책과 거리 두기를 1년이 넘도록 굳세게 실천 중입니다. 뭐가 잘못됐을까.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걸까.

해답을 찾고자 독서지도서도 읽어보고 유튜브 강의도 찾아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 ‘ 필독서와 권장 도서를 읽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자녀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골라 읽게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 이거야! 가자, 도서관으로!
“자, 딸! 끌리는 걸로 맘껏 골라봐!”
“정말이지? 아무거나 골라도 뭐라 하지 않을 거지?”
“그으럼~ 걱정 마. 어서 골라봐. 그리고 우리 기왕 나온 김에 맛있는 것도 먹자.”
딸아이는 ‘찐’으로 끌리는 책을 찾았다며 참으로 기뻐했습니다.

그 놀라운 도서 선정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저는 밥은 무슨 맛이었는지, 집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네요.





재능기부를 통해 배운 따뜻한 세상

이 겨울이 지나면 고3이 되는 아들은 지난 2년간 집 옆 도서관에서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매주 1시간의 수업, 어찌 보면 짧디 짧은 60분이지만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그보다 배의 시간을 들여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선별하고 그에 따른 질문을 만들고 함께 부를 동요를 고르는 등, 꼼꼼히 준비하는 아들의 모습은 참 예뻤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면이 아닌 원격으로 진행해야 하니 아이들의 집중력을 붙들어놓으려면 더더욱 재미있게 꾸려야 한다면서 말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해야 할 때가 돼 지난주 아들과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가득 품은 채 (사전에 예고한 대로)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아무도 울지 말기! 웃으며 굿바이하기! 쌤 대학생 되면 우리 다시 만나자~”

화면을 가득 채운 아이들과 손 흔들며 인사하는 아이가 어찌나 대견하던지요. 그렇게 잘 마무리됐나 보다 하고 잊고 있었는데 오늘 도서관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XX 어머니, XX가 지도한 학생 중에 OO라는 친구와 어머니가 그간 너무 감사했다며 선물을 도서관에 두고 가셨어요. 시간 있을 때 잠시 들려주시겠어요?”

한걸음에 달려간 도서관, 그리고 두 손 가득 사랑을 담고 돌아와 아들에게 건네줬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는 코너 입니다. 재밌거나 의미 있어 공유하고 싶은 사연이 있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 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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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별 Talk Talk (2022년 01월 26일 10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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