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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호

별별 Talk Talk

극한직업

취재·사진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모전자전(母傳子傳)

아이 학교에서 입시 설명회를 열었어요. 저녁 6시 30분까지 모이라는 안내를 받고 출동했죠. 하필이면 설명회 당일 아침부터 처리할 일이 줄줄이 사탕으로 생겨 학교에 도착할 즈음 되자 피로감이 ‘훅!’ 몰려오더라고요.

‘가서 졸면 이보다 창피한 일은 없다!’ 하며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 자양강장제 한 병을 사서 입에 털어 넣었어요. 여전히 위세가 꺾이지 않는 코로나 덕분에(?) 학년별 두 반씩 나눠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설명회라 진정 조심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약 기운에 조금 힘이 나긴 했지만 혹시 몰라 중간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웬걸요, 거리를 두며 앉다 보니 가림막 효과는 1도 없이 휑~ 거기다 헉! 설명회 진행자로 아이 담임 쌤이 들어오시지 뭡니까~ ‘정신 차려! 여기서 졸면 ‘모전자전’ 소리 듣는 거야!’ 얼마 전 담임 쌤께 “어머니, 혹시 OO가 몇 시에 취침을 하나요? 학교에서 많이 좁니다”라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설명회 시작.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1시간은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죠. ‘고1 설명회도 이렇게 긴데, 애 고3 되면 난 죽었다’ 하며…. 그 뒤 약효가 점차 사라지더니 천하장사도 못 들어 올린다는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 1회 헤드 뱅잉과 동시에 담임 쌤과의 아이 콘택트. ‘망했다’는 좌절은 잠시, 같은 동작 3회 반복.

2시간 30분 만에 설명회가 마무리됐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귀가했는데 저녁 10시 넘어 야자 끝나고 돌아온 아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리칩니다. “엄마 졸았지!? 아 진짜! 내가 엄마 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쌤이 저녁에 교실에 오셔서 엄마 되게 피곤하신가 보다 하며 웃으셨단 말야!” “….”





갈 길 잃은 ‘노후’

“OO랑 XX 다 교정했어! 나도 검사받을래!” “잉? 걔들 치아가 이상했었나? 멀쩡해 보였는데. 넌 괜찮으니까 패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중1 딸은 주변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에 ‘철길’을 깔자 본인도 왠지 그 흐름에 편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힝~ 하고 토라진 딸에게 점심을 차려줬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갑자기 아이가 음식을 씹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더라고요. ‘여태 눈치채지 못했는데, 저것이 일부러 저러나?’

“OO 엄마, 난데~ OO 교정 어디서 했어?” 결국 예약을 잡았습니다. 확실히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딸도 저도 마음이 편할 거 같았거든요. “지금이라도 오셔서 다행입니다. 자, 여기 치아 상태를 보시죠.”

의사 쌤이 자료 화면을 켜자마자 제 입에선 자동으로 “이게 뭐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황한 의사 쌤과 엄마를 째려보는 딸. 의사 쌤 왈 “부정교합도 있고, 앞니 돌출로 입이 튀어나왔으나 다행히(진정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코가 커서 지금껏 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블라블라~” 결국 발치까지 해야 하고, 거액을 요하는 대정비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노후 자금은 이렇게 또 한 번 목적을 잃은 채 ‘투자금’이 됐습니다. 딸래미를 선사시대 인간으로 낳아놨으니 AS도 제 몫이겠지요. 흑흑 ㅠㅠ”





내가… 졌다

아들은 ‘정리’라는 개념 자체를 탑재하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습니다. 지난 몇 년간 모자가 언성을 높인 사유는 예외 없이 모두 방 정리였거든요. 중학교 때까지는 제가 화를 내면 치우는 척이라도 하더니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아주~ 담력 있는 사나이가 돼 제 성질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용감무쌍하고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얼마 전에는 “정리하지 않는 네 방을 청소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어요. 그러곤 며칠째 아들 방은 진정 열어보지도 않고 청소를 했죠. 그러다 오늘 ‘그래도 베갯잇은 세탁해줘야겠지’ 하며 오랜만에 방문을 연 순간, (내 거친 생각꽈~ 불안한 눈빛꽈~) 핵폭탄이 지나간 듯한 위용을 뽐내는 방 풍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좋은 구경시켜줘 고맙다고, 덕분에 수명이 10년은 줄은 거 같다고, 나중에 ‘엄마는 꼭 냇가에 묻어달라’(청개구리 맘 빙의)고 단단히 일러뒀습니다. 앞으로 한 달간은 그 ‘비밀의 방’을 열지 않을 참입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는 코너 입니다. 재밌거나 의미 있어 공유하고 싶은 사연이 있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 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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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별 Talk Talk (2021년 07월 14일 10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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