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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호

별별 Talk Talk

그래, 너라도 행복하다면

취재·사진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전 과목 만점 받은 줄


일주일간의 중간고사가 끝난 고1 아들은 단 하루 만에 반건조 오징어가 횟감 오징어로 탈바꿈한 듯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러곤 딱 시험 기간만큼 열정을 다해 노시더군요. 하루이틀까진 웃으며 ‘그래, 그동안 힘들었을 테니 (결과는 모르겠다만, 아니 결과가 나오기 전에) 맘껏 즐기렴’ 했으나, 삼일 사일…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자 한마디 했습니다.

“오늘도 나가니!? 누가 보면 전 과목 만점받은 줄 알겠어. 노는 건 안 배워도 프로야 프로!”

“친구들이랑 약속했어. 오늘까지만 놀게~” 속으로 ‘어쭈? 그래도 나가네?’ 싶었지만 오늘까지라니 한 번만 더 넓은 아량으로 봐주자. 통 크게(!) 결심했으나….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아들은 엄마가 일어나기도 전에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분노 게이지가 최대로 상승하면 오히려 사람이 차분해 지는 법. (포기 단계인지 사실 좀 헛갈렸음.)

몇 시간 뒤 ‘띵동’ 메시지 알림음이 울리며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엄마, 아들 모자 좀 골라줘~ 어느 게 예뻐?” 고슴도치 엄마는 씩씩거리면서도 골라줍니다. “양이 낫네.”




뭐? 집에 온다고!?


10월 마지막 주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면 등교가 시작됐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주르륵~ 이 시간을 경건하게 맞기로 한 우리 중1 학부모 동지들은 지난주부터 작전 수립에 들어갔습니다.

“장소는 우리 집을 내줄게. 응, 식사도 내가 시키지 뭐~ OO맘은 샴페인을 사오고 XX맘은 케이크 어때? 그럼그럼~ 같은 동네 살면서도 원격 수업 때문에 1년 넘게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는데 이런 기쁜 날을 그냥 보낼 순 없지!”

주문한 음식이 도착해 정성스레 상을 차리자 들리는 반가운 초인종 소리! 꺅~ 셋이 부둥켜안고 그동안 잘 지냈냐고,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비록 일찍 끝나긴 하지만) 우린 살았다고 기쁨을 나누며 식탁에 앉아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습니다. 그러곤 실로 오랜만에 ‘나를 위해 차린 밥’을 사랑하는 동지들과 즐기려 수저를 들었죠.

따르릉~ (내 폰), 띠로리~ (OO맘 폰), 띠리링~ (XX맘 폰). 왜 셋의 폰이 동시에 울리는 거지? 뭘까 이 불길한 느낌은….

“엄마! 방금 학교에 확진자 나왔다고 우리 다 집에 가고 검사받으래! 그리고 2주간 다시 학교 오지 말래! 아싸~” 안녕 내 자유야~ 이번 생이 끝나기 전 다시 만나자 동지들아~



그림그리기가 제일 무서운 모녀

“나 내일 학교 안 갈래.”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중2 아이의 폭탄선언에 저녁밥을 먹다 체하는 줄 알았습니다. (침착해야 해. 차분히 이유를 묻자.) “왜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내일 미술 그림 그리기 수행평가야.” “그리면 되잖아.” “상상화 그리기라고! 보고 그리는 것도 못하는데 어떻게 상상까지 해서 그려~”

할 말이 없는 게, 저도 그림 그리기를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이나 말이죠.

“상상이면 더 나을 수도 있어. 아무거나 그리면 되니까. 혹시 그리고 싶은 주제 있어?” “음… 나 강아지 좋아하니까 강아지가 내 친구가 된 거 그리고 싶어.” “좋네! 그걸로 해~” “강아지를 그릴 줄 모르는걸. 거기다 같이 놀고 있는 것까지 어떻게 그려~? 아, 몰라 학교 안 가!”

(소오름~ 안 돼!) 물러날 곳은 없다. 엄마가 시범을 보이자! “같이 수영장 간 거 그려봐. 엄마가 한 번 보여줄께.” 결과는?

제가 그린 강아지는 아이 반 친구들 전원이 폰에 저장을 했다네요. 처음엔 아이가 혼자 보기 아깝다고 친구 한두 명한테 보냈는데 이게 소문이 나서 우울할 때마다 보고 싶다고 너도나도 전송을 부탁했다나요? 그림 덕분에 일단 딸내미 학교 보내기는 성공했습니다. 저도 유명해졌고요.





학교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는 코너 입니다. 재밌거나 의미 있어 공유하고 싶은 사연이 있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 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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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별 Talk Talk (2021년 11월 03일 10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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