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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호

교과서 파먹기 11 | <국어> 한글 _ 주권국가로서의 의지 담은

세종대왕의 문자 창제 프로젝트 ‘한글’

세종대왕이 ‘어엿븐(가엾은, 불쌍한)’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어 널리 알린 지 올해로 575년이 됐다. 한글이 있어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글로 마음껏 적을 수 있다. 현재 남북한을 비롯해 국외 거주 동포를 합쳐 약 8천만 명이 한글을 사용하고 있으며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제정,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노력한 단체나 개인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다. 한글은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위해 만든 유일무이한 문자다. 이 같은 사실이 명명백백 기록으로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거짓이라 주장하는 ‘어엿븐’ 이들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토대로 한글의 탄생 배경부터 과학과 철학을 아우른 기본 원리까지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한글교양>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대왕 세종, 문자를 만들기로 결심하다

혹시 한자를 외우고 쓰는 게 너무 재미있는 사람 손 번쩍! 없군. 그럼 영어가 우리말보다 쉬운 사람 발 번쩍! 역시 없군.

한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학교에 간다’는 늘 사용하던(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만 5만 자, 실생활에 사용되는 글자만 5천 자라는) 한자 ‘我去學校’로 표기됐겠지. 혹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어가 섞였을 수도 있겠고 (오우, 상상하기도 싫다.) 아니면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베트남 등 여러 동남아 국가처럼 서양의 알파벳을 차용해 ‘Naneun hakgyoe ganda’로 표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참 써놓고 보니 여러모로 난감하군.

세종이 한글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적을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적어야만 했어. 문제는 양반은 한자를 배우고 공부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었지만, 농사도 지어야 하고 먹고사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반 백성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는 거지.

그렇다 보니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어. 서민뿐 아니라 정부 관리도 한문 읽기가 어려웠던 건 마찬가지였나 봐. 죄인을 다스리는 관리조차 한자로 적힌 문서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그릇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러던 어느 날, 경상남도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 거야. 대신들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냈지만 세종은 이런 끔찍한 일들을 막을 방법은 ‘벌’이 아닌 ‘교육’이라 생각했고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백성들을 사람답게! 효행의 풍습을 알게 하리라 결심했지.


1443년, 한글을 창제하다

‘설마 세종 혼자 한글을 만들었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응~ 맞아. 당시 양반 사대부들은 공동 창제자가 될 수 없었어. 왜냐고?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로 출발한 조선의 집권세력인 그들에게 한자 외의 문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거든. 이를 천하의 세종이 예상 못했을 리가 없지.

세종은 10년 이상 남몰래 고민하며 공부하고 연구했어. 그 결과 드디어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이루어진 한글을 만들어 1443년 12월에 공표했지. 하지만 창제 사실을 바로 백성들에게 알리진 않았어. 새로 만들어진 문자, 한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서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야. 이에 세종의 뜻을 이해하고 동조한 집현전 학자인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강희안, 이선로 등과 함께 한글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을 집필했지. ‘그것 봐~ 집현전 학자들이랑 같이한 거잖아!’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어때? 위에 열거한 학자 중 단 한 사람도 개인적으로 한글을 쓰지 않았어. 공동 창제자라면 솔선수범해 먼저 좀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또한 세종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 해례본 서문에 창제 동기와 목표를 기술하며 직접 ‘내가 만들었다!’라고 밝혔고, 정인지 또한 ‘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친히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해, 간략하게 예와 뜻을 보여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고 기록을 남겼지. 이외에 <조선왕조실록>과 신숙주가 작성한 <홍무정운역훈>에도 한글이 세종의 단독 작품임을 명시하고 있고. 더 많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반대 세력을 설득하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지 석 달도 안 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어. 몇몇 집현전 학사들이 반대 상소문을 올렸거든. 특히 집현전의 실질 업무를 총괄하는 (오늘날로 치면 차관급) 부제학 최만리는 ‘어찌 야비하고 상스러운 글자를 창제 하시나이까’라며 용감하게(?) 세종에게 맞섰지.

그렇다고 최만리가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뛰어난 문자인지 몰랐던 건 아냐. 한나절만 배워도 쓸 수 있고 열흘 정도만 익히면 모든 말을 글로 나타낼 수 있음에 감탄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최만리와 신하들은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는 건 중국을 받드는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오랑캐나 하는 일이며, 쉬운 한글이 널리 퍼지면 양반들이 한자를 멀리할 수 있고,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건 그들을 다루는 관리들이 공정하지 못한 거지 한자 탓이 아니라고 반박했지.

이에 세종은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이 중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의 문화 가운데서도 좋은 것은 따르되 우리 것을 지키고 가꿔나가야 함을 강조했어. 또한 백성들이 일상에서 억울함이나 불편함이 없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쉬운 문자가 있어야 함을 주장했고. 뜻을 굽히지 않고 2년 9개월간의 검증 기간을 거친 뒤 드디어 1446년 9월 상순에 한글을 백성들에게 투척했지. (당시 음력으로 기록된 날짜를 양력으로 바꿔서 10월 9일이 한글날로 정해졌다는 말씀.) 이로써 한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 창제 동기, 창제 원리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자가 됐단다.


과학과 철학적 사고에 기초한 글자

현재 사용하는 한글은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모두 24자야. 하지만 15세기 훈민정음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모음 ‘•(아래아)’, 자음 ‘(여린히읗), (반시옷), (옛이응)’을 더해 28자였지. (얘들이 부활하면 외국어 발음을 더욱 정교하고 정확하게 구사·표기할 수 있다지.)

그럼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한 번 살펴볼까나?

한글은 발음의 작용과 원리를 살려 매우 간결하게 만들어졌어. 자음자 ㄱ, ㄴ, ㅁ, ㅅ, ㅇ 5자는 발음 기관 또는 발음하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모음자 •, ㅡ, l 3자는 하늘과 땅, 사람을 본떠 만들었지. 자음은 ‘닿소리’라고도 하는데 우리 입안에서 닿소리가 만들어지는 자리는 어금니, 혀, 입술, 이, 목구멍 모두 5곳이야.

이 다섯 발음 기관의 모양을 토대로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윗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의 모양, ㅅ은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지. 모음은 ‘홀소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목구멍에서 숨이 나올 때 어디에도 닿지 않고 혼자서 나는 소리란 뜻이야. •는 둥근 하늘, ㅣ는 서 있는 사람, ㅡ는 편편한 땅의 모습을 뜻해. 즉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속에서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는 철학적 사고를 담아낸 거야.

이렇듯 상형 기본자를 만든 뒤 자음자의 경우 획 더하기로 ‘ㄱ→ㅋ’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등과 같은 거센 소리 9자를 완성했고 이 밖에 글자의 짜임새가 다른 이체자 ‘, , ’를 추가해 기본 자음자는 17자가 됐지. 모음자는 기본 상형자를 한 번씩 합친 ‘ㅗ, ㅏ, ㅜ, ㅓ’에 •를 두 번씩 합친 ‘ㅛ, ㅑ, ㅠ, ㅕ’를 만들어 배열했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24개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문자와 달리 글자 자체가 발음 기호이기 때문에 발음할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적어낼 수도 있어.

또한 한 부호가 하나의 소리만을 대표하는 ‘1자 1음’의 문자 체계인 한글은 입력 즉시 기록되는 특징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시스템에 최적화된 문자로 각광받고 있지.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세종대왕님께 감사의 묵념을 드리고 넘어가자!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_ 존 맨(영국 역사가·언어학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자 로마자보다 한 차원 높은 자질문자다.”
_우메다 히로유키(도쿄외국어대 교수)
지금 우리가 숨 쉬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한글은 오랜 역사 동안 실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어. 세종이 한글을 반포함과 동시에 한자를 공부하고 익힌 양반들은 여성이나 천민들이 사용하는 문자라며 ‘암글’ 또는 ‘언문’이라 비하했지.

1504년 조선 10대 임금인 연산군은 한글 금지령을 내리고 한글로 쓰인 책들을 모두 불태우기도 했고. (누가 한글로 연산군에게 10원짜리 100원짜리 하며 욕했다나 뭐라나.) 1930년대에는 참으로 훌륭한(?) 이웃나라 일본이 조선을 강제 점령한 뒤 한글 말살 정책을 펼치며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한국어 사용을 금지했어. 한글로 된 신문과 잡지의 폐간은 물론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했지.

이렇듯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한글이 이어져 내려온 건 한글을 목숨처럼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 가운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9명의 영웅들을 간단히 소개할게(표).


한글 교양 더하기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야.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년대 초 주시경을 비롯한 한글 학자들이 쓰기 시작했어. 한글은 본래 ‘ (크다)글’로 표기, 즉 ‘큰 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1927년 ‘한글사’에서 잡지책 <한글>을 펴내면서 널리 쓰이게 됐어. 그럼 훈민정음으로 처음 만들어진 책을 알고 있니? 맞아! 조선왕조가 세워진 과정과 정당성을 노래한 책 <용비어천가>지. 최초의 한글 소설은? 오~ 쫌 하는데! 조선 중기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 그렇지!

한 나라의 문자와 언어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5천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우리만의 문자와 언어를 잃지 않고 독자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은 진정 축복받은 일이지. 또한 우리가 우리의 글자를 소중히 아끼고 보존해야 다음 후손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질 거라는 건 앞서 역사가 온몸으로~ 설명해줬고. 그러니 앞으로는 한글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설파하는 무리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치 말자고!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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