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 요건이다. 그중 사람이 머무는 공간인 주거의 본질을 찾는 일은 태경씨가 평생 연구하고 싶은 분야다. 단순한 공간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 환경과 그것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그의 꿈을 들어봤다.
취재 이도연 리포터 ldy@naeil.com
사진 이의종
권태경 |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경기 평택고)
‘금융맨’ 꿈꾸다 코로나 이후 주거 환경에 관심
태경씨는 어릴 적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아 뉴스를 즐겨 봤다. 관심 분야는 경영·경제였고 그중에서도 증권·투자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맨’이 꿈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코로나19가 확산됐고 여러 부동산 정책과 요동치는 집값으로 고통받는 사회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부동산 문제는 연속해서 사회와 경제를 흔들었다. 태경씨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증가했고 부동산 버블, 재택근무 증가 등이 부동산 시장을 변화시켰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를 찾다 보니 흥미가 커졌죠.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에도 의문이 들면서 안정적 주거 환경을 만드는 분야에 관심이 커졌어요.”
부동산을 다루는 학과가 많지 않아 선택지가 좁았던 게 오히려 목표 대학과 학과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꿈을 일찍 정했기에 고등학교 3년간 모든 과목을 통해 진로 역량을 쌓았다. 영어 지문에 ‘apartment’가 보이면 주제를 확장해 한국의 아파트 선호 평수의 변화를 탐구했다. 문학 시간에 배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철거식 재개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외 사례를 찾아 비교·개선 방안까지 도출했다.
과학 과목에서는 파동과 에너지 관계를 층간 소음과 연결했고, <정치와 법>에서는 헌법소원을 배우며 재건축 부담금 부과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판례를 분석했다. <심화국어>에서 혐오 표현을 배울 땐 지역 갈등 문제를 탐구하며 영호남의 지역 갈등과 도시 구조에 대해 분석했다. 주거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탐구 활동이었다.
강점인 사회 과목 최대한 많이 선택
태경씨는 비평준화 지역에서 고교에 진학했다. 모교인 경기 평택고는 중상위권 학생이 모인 만큼 학업 분위기는 좋았지만 내신 관리는 쉽지 않았다. 태경씨는 모의고사 성적을 토대로 수시와 정시의 공부 비중을 8:2로 잡았다. 다행히 학교 수업의 주교재는 <EBS 수능 특강>이었고 시험 역시 수능과 유사한 유형이라 한 교재로 공부하면서 모의고사 성적도 관리할 수 있었다. 자신 있는 사회 과목은 가능한 한 많이 선택했다.
“<한국지리> <경제> <세계지리> <사회·문화>를 선택했는데 저희 학교에서는 사회 과목을 한 학기 동안 이수해야 했어요. 과목당 단위 수가 높아 부담스러웠지만 사회 과목은 저의 강점이라 재미있게 공부했고 결과도 좋았어요.”
태경씨의 학생부에 녹아 있는 독서 활동도 인상 깊다. 학생부 반영 항목이 대폭 축소됐지만 독서는 탐구 활동에 충분히 녹여낼 수 있어서 틈나는 대로 관심 분야와 관련한 도서를 많이 찾아 읽었다. 부동산 분야에 관심이 있는 후배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망설임 없이 ‘한국 제1호 도시학자’ 손정목 교수가 쓴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를 추천했다. 우리나라가 전후 복구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도시 발달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라고.
태경씨는 3년 개근상을 받았다. 인정 조퇴·결석이 한 번도 없었다. 비결을 묻자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는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공부할 때는 건강 관리가 기본이라고 생각했고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개근상도 받았다. 대신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아쉬운 점으로 고1 내신 성적을 꼽았다. 자신을 믿고 자기 주도식 공부법을 택했지만 약점인 수학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입시를 준비하는 후배에게 “취약한 과목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공부 방법을 고민해보길 바란다”라는 당부를 남겼다.
중앙대 융합형·탐구형 지원, 학생부 완벽 숙지로 면접 대비
태경씨는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지원한 고려대 경영학과에 1차 합격했지만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발목을 잡았다. 건국대 부동산학과·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지원했다. 중앙대는 동일 학과에 융합형과 탐구형으로 지원했다.
“생각보다 주거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학과가 많지 않았어요.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도시와 부동산을 함께 다루는 학과라 꼭 가고 싶었어요. 학생부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서류만 100% 반영하는 융합형에 지원했고, 면접도 철저히 대비할 자신이 있어서 탐구형으로도 지원했어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 면접관의 입장에서 예상 질문을 뽑았고, 답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학생부를 읽고 또 읽었다. 세부 특기 사항이나 주제 탐구 활동은 기본이고 각 과목 수행평가까지 물 샐 틈 없이 정리했다.
“면접 대비에 중요하지 않은 과목은 없어요. 스스로 경중을 판단하지 말고 학생부는 한 글자라도 소홀하지 말고 숙지해야 해요. 실제로 직접 뽑은 예상 질문을 벗어난 질문은 없었어요.”
태경씨는 대학 1학년 전공 과목 중 ‘도시학개론’ 수업이 무척 흥미로웠다. 주거의 본질은 ‘머물고 쉬는 곳’이며 생활 공간을 확장하면 도시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완전 철거식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유기도 하다.
“사업성과 주거 환경 개선 효과를 생각하면 철거 후 재개발하는 게 가장 좋지만 철거 기간 동안 거주민이 다른 거주 공간을 찾아야 하는 등 감수해야 하는 무형적 손실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유럽처럼 주거 공간의 수명을 늘리고 우리나라에 맞는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싶어요. 살면서 편한 공간, 주거의 본질을 찾아가는 깊은 연구를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저도 일제강점기에 통찰력으로 부동산 개발을 주도한 정세권 같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웃음)”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영어> 사람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 큰 집으로 옮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지문에 의문을 품고 탐구를 시작함. 최근 10년간 국내 주택 시장에서 대형 주택의 선호도가 하락하는 현상을 집중 분석·발표함 <한국사> ‘독립 영웅 회고록 쓰기’ 활동에서 서울의 부동산과 도시사에 관심을 갖고 정세권을 ‘부동산계의 콜럼버스’로 표현하며 자신의 영웅으로 선정함
/2학년/
<독서> 독서 목적에 비추어 적절하고 가치 있는 글을 선택할 줄 알며, 사실적 읽기 차원을 넘어 도시 불평등 등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려는 적극적인 시도와 우수한 통찰력이 돋보임 <수학Ⅰ> 수열의 합을 이용하여 투자 가치를 구하는 공식을 표현하고 계산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친구들의 이해를 도움. 대한민국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함
/3학년/
<심화영어Ⅰ> 과학의 시선으로 주거 공간을 해부한 <아파트 속 과학>을 읽고 주택 가격에 가려진 주거 공간의 본질을 탐구함. 책을 읽고 ‘주거의 순수한 본질을 일깨우는 성경 같다’고 간결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임
//의미 있었던 선택 과목//
▒ <한국지리>_ 지리는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며 경제·사회·정치를 배울 수 있다. 특히 <한국지리>는 우리나라의 지형과 도시 구조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 <정치와 법>_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와 법을 이해하는 일은 앞으로 전공 공부를 할 때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부동산과 연관지어 ‘근저당권 설정과 구분 소유권’에 대해 탐구했다.
▒ <사회문제탐구>_ 관심 주제에 대한 프로젝트를 통해 역량을 중점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서 선택했다. 갈수록 감소하는 학령인구를 근거로 질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공간을 제안했고, 노후되고 열악한 학교 시설의 개선책을 제시했다.
//교사의 눈으로 본 수시 합격생//
온화한 리더십을 갖춘 학생
태경이와 3년간 영어 수업을 함께했고, 동아리 지도 교사이기도 했어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동아리 탐구 활동을 이끈 학생입니다. 계획부터 탐구, 결과 도출까지 적극적으로 주도했죠. 호기심을 탐구 활동으로 훌륭하게 풀어갔어요.
영어 지문에 부동산 관련 내용이 나오면 외국 도서나 보고서까지 찾아보는 열정이 인상 깊었죠. 자기 관리가 매우 철저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어서 많은 선생님이 기억하고 응원합니다._ 경기 평택고 이준열 교사(영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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