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하늘고를 지원한 이유요? TV 드라마에서 본 교정이 너무 예쁜 거예요.
저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하니 인천하늘고였어요.”
고려대 의과대학 김민서씨의 다소 엉뚱한 답변이었다. 민서씨는 고교 3년간 학교 행사는 뭐든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미적분> <기하> <화학Ⅱ> <생명과학Ⅱ> 이외에도 <윤리와 사상> <철학> <심리학> <심화수학> <고급수학> <실용경제> 등 배울 수 있는 과목은 계열과 관계없이 후회 없이 선택했다. 뜬금없이 양봉에 참여해 벌 생태 통로에 관심을 두고, 그린피스에 학교 대표로 참석하는 등 교내외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활동에 푹 빠져 있었던 민서씨의 고교 3년을 들여다본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진 이의종
김민서 | 고려대 의과대학(인천하늘고등학교)
행복을 전하는 의료인을 꿈꾸다
중학교 때 C언어를 배우며 외로운 이들에게 벗이 되어줄 반려로봇을 디자인하고 싶어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라는 얘기를 숱하게 듣고 자라면서 막연하게 사회적 약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로스쿨에 진학해 인권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힘이 없어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변호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수학, 과학 교과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자연 계열에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가 의료더라고요. C언어를 배우면서 반려로봇을 생각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반려로봇은 개발하고 상용화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잖아요. 반려로봇이 아닌 직접 환자를 대면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의료인으로서 그들에게 힘이 돼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단순히 돈을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에서 의료인을 꿈꾸진 않았다. 그건 고교 3년간 읽었던 책이나 선택했던 교과에서도 알 수 있다. 민서씨는 ‘죽음’ ‘행복’에 유독 관심이 많았고, 퇴행성 뇌 질환을 연구하는 의료인을 꿈꿨다.
“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행복을 느낄 때 우리 뇌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우울증을 앓거나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순 없을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의학의 최대 과제가 영생일까,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도 많았죠.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책을 읽고, <철학> 수업을 들으며 죽음의 정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건강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만큼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학업 부담 컸지만, 공부할 기회 날리고 싶지 않아
성적을 받기 수월한 과목, 공부하기 쉬운 과목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민서씨는 배우고 싶은 과목은 주저 없이 선택했다.
<윤리와 사상> <심리학> <철학> <실용경제> <지구과학Ⅰ> <화학Ⅰ·Ⅱ> <생명과학Ⅰ·Ⅱ> <기하> <미적분> <심화수학Ⅰ·Ⅱ> <고급수학Ⅱ> 등 다양한 과목을 선택했다. 특히 고2 때 학업 부담이 컸을 터. 실제 고1 때와 비교하면 성적이 크게 떨어졌지만,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후회는 없다.
“과목을 선택할 때 이 과목이 성적 관리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 시기에 관심이 있고, 배우고 싶은 과목 위주로 선택했죠. 학교가 이렇게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해서 공부할 기회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전문 교과를 비롯해 진로선택 과목은 시험 위주의 공부보다는 이론, 증명 그리고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던 제 욕구를 충족시켜줬어요.”
과학 교과에서 <물리학>은 선택하지 않았다. 김상욱 교수의 책이나 힉스 입자 발견 같은 최신 이슈는 흥미로운데 시험을 위한 물리학 공부는 끌리지 않았다.
“<미적분>은 어떤 개념이나 공식이 왜 나왔는지보다 이를 가지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심화수학> <고급수학>에서는 이런 개념이나 공식이 왜 나왔는지 증명하고 학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내가 모르는 걸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를 고교 3년간 제대로 느꼈던 것 같아요. 분명 힘들었을 텐데 그 과정이 힘들다기보다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인천하늘고는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공부할 시간을 그만큼 확보할 수 있었다. 민서씨는 학교에서 처음 접하는 과목은 몰랐던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선행이나 독학으로 공부가 어느 정도 됐던 과목은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선행을 거의 하지 않고 고교에 입학했어요. 고1 때 수학 과학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궁금한 건 대학 교재나 논문 등을 읽고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해결했죠. 학생부에는 기록돼 있지 않지만, <고급생명과학>은 대학의 <분자생물학> 내용이었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했죠.”
얻는 게 없는 경험은 없다!
양봉이 가져다준 변화
의학자가 꿈이라고 해서 모든 교과 활동을 의료에 집중하진 않았다. 단적인 예가 양봉이다. 벌을 키우는 양봉을 말하는 거냐고 묻자, 맞다며 웃는다.
“학교에서 양봉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한다기에 바로 달려갔죠. 어디서 그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기회잖아요. 기후변화로 인한 꿀벌의 집단 폐사 이슈가 있었는데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때 제가 했던 일은 매일 아침 벌통의 온습도를 관리하고 십만 마리의 벌을 관찰하는 거였어요. 집단 폐사를 막는 법을 고민하기도 했고요. 벌은 꽃의 자외선에 이끌린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꽃잎의 자외선 방출 원리와 휘발성 화합물을 이용해 친환경 꿀벌 생태 통로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민서씨는 스티로폼을 활용해 미로를 만들었고, 특정 길에 자외선 LED와 휘발성 화합물을 이용해 생태 통로를 만들었다. 여러 갈래의 길 중 생태 통로로 진입하는 벌의 수를 관찰했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외선을 방출하는 LED와 휘발성 화합물을 이용해 인공자외선을 방출하는 생태 통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LED의 위치를 어디로 해야 할지, 방출량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며 실험했죠. 결국 생태 통로로 벌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음을 증명했어요.”
‘벌의 생태 통로’ 실험 결과와 양봉 활동 내용을 토대로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에 참가했다. 지구를 살릴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고교 과학경진대회인 이 대회에서 수상하며 유럽 여행의 기회를 얻었다. 환경과 생태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양봉을 하며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의미 있었다.
“고교 3년간 전공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만,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고민을 이어가는 친구들이 많아요.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으려면 경험을 다양하게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이게 대입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면 좋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있고, 어느 순간 대입에 도움도 되더라고요. 힘든 고등학교 생활이지만 좋아하는 걸 찾아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영어> 영어 지문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이를 배경 지식을 쌓는 도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줌, 인공지능으로 사람의 일자리가 대체되는가에 대한 지문을 읽고 일자리 변화와 로봇 윤리에 대해 고민함 <수학> 염색업자와 양식업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법을 고민하면서 지니계수와 정적분에 대해 알게 됨
<2학년>
<독서> <스스로 치유하는 뇌>를 읽으며 ‘신경 가소성’에 대한 개념을 정리함,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행복을 ‘개개인이 순산순간 내리는 집합’이라고 정의함 <수학Ⅱ> 도함수의 연속성에 의문점을 갖고 조사함, 미분 가능하지만 도함수가 불연속인 함수와 다르부의 정리에 대해 탐구함 <철학>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삶을 무기한 연장하는 것과 행복, 인간의 존엄 등에 대해 적극 탐구함
<3학년>
<미적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그 문제를 활용한 다른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해결하는 모습과 함수의 조건을 바꾸어가며 적용했을 때 문제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고민하며 문제 해결의 사고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관찰함 <생명과학Ⅱ> 양봉의 목적과 양봉장 관리 및 봉산물을 탐구하며 꿀벌의 생태를 심화 탐구함
<선택 과목>
▒ <윤리와 사상> <철학>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다양한 철학가의 사상, 이론이 궁금해서 선택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사를 꿈꾸며 죽음의 정의, 사상가들의 생각 등을 엿볼 수 있었던 과목이다. 두 과목을 배우며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생을 잘 마감하게 하는 것 역시 의사의 역할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 <심화수학> 수학을 굉장히 좋아했고, 미적분을 대학 과정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배운다고 해서 선택했다. <미적분>에서는 증명하는 과정보다 공식 위주로 배우지만 <심화수학>은 증명 과정을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 <화학Ⅱ> <생명과학Ⅱ> 과학Ⅰ과목은 정해진 시간에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느냐에 초점을 둔다면 Ⅱ과목은 좀 더 깊이 있게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화학Ⅱ>는 화학 반응식을 배우면서 새로운 걸 알아가는 느낌을 받아 너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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