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버몬트주 대학의 총장, 어머니는 다트머스대 설립자의 증손녀였다.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 청년 호머 헐버트는 23세가 되던 해 운명처럼 ‘조선’과 만났다. 예견된 고생길이었다. 거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선행 배에 과감히 몸을 실었다. 1886년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할 때까지 헐버트는 독립운동가이자 외교관, 최초의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민권운동가 등 다양한 역할로 우리 역사 곳곳에서 빛나는 활약상을 보였다. 안중근 의사조차 ‘한국인이라면 단 하루도 그의 이름을 잊어선 안 된다’며 최상의 예를 갖춰 존경을 표했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대한미국인’ 헐버트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글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사진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누리집·대통령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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