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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1022호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 교사들과 함께하는 2021 교단일기

과학고에서의 사회 수업


글 강병희 교사
경기북과학고등학교
<점이 선이 된다> 살면서 찍는 다양한 점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마다 모양과 색이 다른 점들을 연결해나가는 그 과정을 함께하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 “국어, 사회가 싫어 과학고에 왔어요”

고등학교에서 사회 수업이 주요 과목이기는 힘들지만, 과학고 학생들에게 사회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고에서 과학고로 옮기면서 앞서 계셨던 선생님은 내게 ‘사회 수업이 아이들의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스스로 사회 수업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 곧 배움의 동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2학기 중반을 내딛고 있는 지금, 나는 과학고 아이들과 ‘사회’ 수업을 하고 있다.

1학기에는 <정치와 법> 수업을 함께했다.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정치, 법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들에 궁금증을 갖고 질문도 많이 했으며,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사회 참여 활동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제안서도 작성하고, ‘혐오 발언 규제’ ‘제대군인 가산점제 재도입’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과 같은 논쟁들을 선택해 찬반토론도 했다. 양형위원회의 국민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모의재판도 해봤다.

<정치와 법>은 1학기에만 주당 수업 시수가 3시간으로 편성되어 있다. 집중 이수로 일반고에서 주당 3시간씩, 2학기에 걸쳐 하던 활동들을 압축해 진행한 셈이다. 숨가쁘지만, 함께하고 싶은 내용들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든다. 비록 아이들이 너무 잘한다고 생각해 지필평가 난도를 높여 출제하는 바람에 처절한 성적표를 서로 받아들고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이때 아이들은 내게 자신들이 과학고에 온 이유가 수학, 과학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국어, 사회가 싫어서였다고도 고백했다.


# 우리에게 노동의 의미는?

2학기에는 <경제> 수업을 함께하고 있다. 고3 과학고 학생들에게 2학기 집중 이수 사회 수업이라니. 사회탐구 과목으로 수능을 보려는 학생도 없는 교실에서 그래프를 그리며 경제 문제를 풀어주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삶의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

경제 활동의 주체인 가계는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자이지만, 생산 요소 시장의 공급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소비를 위해 노동이라는 경제 활동을 하게 된다. 또 우리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데 다른 누군가의 노동이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먼저 아이들에게 노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를 그려보라고 했다. 오래 생각하지 말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그 이미지를 그려보라고. 한 번도 탄광을 경험하지 못했던 아이가 광부의 모습을 그린다. 아이들의 그림 속에 주로 등장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공사 현장의 인부다. 이쯤 되면 노동자라는 이미지의 재생산 과정이 궁금해진다. 오! 이 수업을 한 지 6년쯤 되었는데, 현대 사회의 노동자를 그리기 시작한 아이들이 나타났다.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 (혹시 나인가?)

그러고는 다양한 직업인들을 노동자와 노동자가 아닌 사람으로 분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치열한 논의를 하며 분류를 해나갔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나눠야 하는 것 아닌가?’ ‘소아과 병원 원장은 노동자인가?’ ‘임금을 받는 자가 아니잖아.’ ‘교수는 일단 노동자가 아니야.’ ‘월급을 많이 받는지 여부로 구분해야 하나?’ ‘일을 하고 돈을 벌면 노동자인가?’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면 노동자지.’

왜 그렇게 분류했는지 모둠마다 나름의 기준을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의미, 노동과 관련된 통계 자료, 노동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을 배웠다. 이어서 노동자와 연결된 우리 삶을 몇 가지 영상으로 돌아봤다.


# 노동자와 만나다

이 수업의 마지막은 ‘노동자와 만나기’다. 우리 주변의 노동자를 찾아 스스로 만든 7가지 질문을 통해 그분의, 나에게 있어서의 노동의 의미를 찾는 활동이다. 수행평가에 점수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마다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노동자와 면담을 해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학원에서 코딩을 배워 현재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사촌 형을 면담한 아이의 노동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토록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 이후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인간의 노동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고민이 된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를 면담하고 싶어 자주 글을 올리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4명의 노동자를 면담한 아이도 있었다. 노동조합원인 노동자가 이야기하는 노동조합의 필요성, 노동 인권을 보장하는 법이 존재함에도 그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들으며 교과서에서도, 내가 제시한 학습지에서도 다 말하지 못한 노동의 사각지대가 날것으로 드러난다.

아버지를 면담하려 했던 아이는 아버지로부터 자신보다는 다른 노동자를 만나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에 택배기사와 만났다. 정해진 근무 시간이 없어 식사도 어렵고 물량이 많은 명절에는 특히 힘들지만, 늦은 시간에 배송했는데도 물건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산타가 된 기분이 든다는 택배기사의 경험을 통해 노동의 보람을 느낀다. 노동자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우해달라는 그분의 목소리가 매일 문 앞에 놓이는 택배 상자에 묻어나는 것 같다. 아이는 면담 이후 자신의 택배를 배송한 기사가 무인택배함 번호를 잘못 알려줘 화를 내려다가, 그분을 떠올리며 바쁜 상황에서 일어난 실수로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인근 초등학교 급식조리실무사로 일하고 계신 어머니를 면담한 아이는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노동의 소중함’,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맛있는 밥을 제공하는 ‘노동의 보람’을 이야기한다. 무기계약직 기회를 얻어 ‘노동의 안정성’을 얻게 된 어머니가 면담 도중 아이에게 ‘훌륭하게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 분 한 분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동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내게 노동의 의미, 노동의 기쁨은 바로 이 순간, 순간들이 아닐까? 아이들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만나며 서로에게 배움을 주는 그 시간 말이다.

불현듯 <내일교육>에 실렸던 강원 양양고 이재호 선생님의 <실용국어> 수업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활용한 그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노동에 대해 더 깊어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
맞다,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과 논의해볼까? 그렇게 나는 내일의 노동을 다시 준비한다.






‘2021 교단일기’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학교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사와 학생이 함께 행복하려면 학교는 어떠한 곳이어야 하는지 성찰하는 전국의 선생님들이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을 꾸렸습니다. ‘좋은 학교’를 꿈꾸는 선생님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봅니다. 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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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병희 교사 경기북과학고등학교
  • COLUMN 교단일기 (2021년 11월 10일 10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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