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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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1072호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 교사들과 함께하는 2022 교단일기

사교육 밀집지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사교육 밀집지에서 창의융합과제연구 수업이란

대구의 사교육 밀집지인 수성구, 정시를 버리기 힘든 학교 환경 속에서 ‘창의융합과제연구’ 수업을 시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획하는 단계는 물론, 수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3년째 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방향성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처음 수업을 기획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학생 15명 정도가 같은 영화를 보고, 각자 포인트를 찾아 관련 도서를 읽은 뒤 논문을 탐색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결과물을 산출하고 발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영화 감상 – 영화의 구성 요소에 대한 학습 – 과제 설정 – 주제 탐구’의 로드맵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영화 <괴물>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기회를 통해 학술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줌. 인물의 감정이 나타나는 순간을 생물학적 원리로 해석해내는 것을 주제로, 조원들과 협력해 논문 자료를 정리하여 발표함. ~ 특정 상황에서의 호르몬과 신경의 작용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이를 영화 속 인물의 감정과 그 변화를 스토리에 맞춰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탁월한 융합 탐구 능력을 보여줌.


작년 수업의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기록 중 일부다. 학생의 역량이 비교적 우수해 교사로서 코칭할 부분이 많지는 않았으나, 보고서 쓰기 기초부터 발표 피드백과 자료 정리까지 전체 맥락을 잡고 설명하는 것만 해도 ‘수린이’인 내게는 너무나 벅차고 힘든 작업이었다. 수강 학생들에게 잘못 전달한 게 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걸 보면, 고작 학생부 교과목 세특 500자 이외에는 보람이 크지 않다는 걸 보면 무언가 잘못한 게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정시 작업이란

“참고점 배치는 어떤 원리로 나오는 것인가?” “도대체 어느 배치표를 봐야 하는가?” “선생님 상담과 반대로 했는데 최초 합격했어요.” ….

공정성에 대한 생각은 묻어두고, 너무 복잡해서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대입 정시. 대구진학지도협의회에서 정시 학과별 표준점수 참고점 작업을 몇 년째 하고 있는 내게도 정시는 어렵다. 갈수록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정시를 보며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탓에 눈 딱 감고 ‘그만해야지’ 생각하고 있지만, 올해도 2023 대입 정시 참고점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

학교나 시교육청에서 정시 상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게 맞을까, 이렇게 하면 합격할까’라는 끝없는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은 채(혹은 못한 채)로 학생들과 정시 상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찝찝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교차지원까지 더해지면서 갈수록 복잡해지는 대입 정시 환경을 탓하며 합리화해보지만, 엄습하는 불안감을 막을 길이 없다.


합격자 수에만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수시 1단계 합격자, 수시 최종 합격자, 정시 최종 합격자….

얼마 전 ○○대 의예과 MMI 모의면접을 진행하면서 학생에게 어떤 의학자가 될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가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되겠다’는 학생의 답에 핀잔을 줬다. 그렇게 답하면 떨어진다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교사인지 돌아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합격자 수만 기억하는 교사, 그것이 내 모습은 아니었나.

스스로 ‘교육자’라고 자신 있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은 교육이나 수업이 아닌 합격자 수만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될 만큼 어떻게 하면 합격할지, 합격 비결은 무엇일지에 매몰되는 것이 곧 일상이었다. 창의융합과제연구 수업도, 정시 배치 작업과 상담도 결국 합격자 수를 위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되는 나날이다.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 덕분에 다시 ‘고민하는 선생’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어떤 걸 원하는가.

여기에 대한 의미 찾기는 교단을 떠날 때까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에서 만난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이 가슴을 쳤다. 다시 출발선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임을 알면서도 피하기만 한 자신을 반성했고, 하나씩 되짚어보았다.

스스로와 주변에 대한, 학생에 대한 고민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직장인’처럼 살아왔던 내게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은 ‘좋은 교사로 거듭나기’ 위한 알깨기 모임이 되고 있다. 그 안에서 전국의 다양한 선생님들과의 격의 없는 소통은 나를, 학교에서의 나를 타자화, 객관화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교사가 된 후 가장 잘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학교 안에서의 고민을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환경과 조건 속에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 나날들이다. 일정한 깨달음이 다시 한 번 나에게 손짓할 때까지 조금은 더 의미 있게 살아야지 다짐해본다.







‘2022 교단일기’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학교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사와 학생이 함께 행복하려면 학교는 어떠한 곳이어야 하는지 성찰하는 전국의 선생님들이 ‘좋은 학교 만들기 모임’을 꾸렸습니다. ‘좋은 학교’를 꿈꾸는 선생님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봅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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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교육
  • 허준일 교사 (대구 경신고등학교)
  • COLUMN 교단일기 (2022년 12월 14일 10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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