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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5호

COLUMN | 특별기고_ 정유훈 교사(제구 대정고등학교)

온라인 수업이 드러낸 과제, 학생 개별화 없는 ‘미래 교육’은 공허하다

온라인 수업이 드러낸 과제,
학생 개별화 없는 ‘미래 교육’은 공허하다



글 정유훈 교사 | (제주 대정고등학교)

주변 좋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사로서의 효능감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아 여전히 학교와 교실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벽에 부딪칠 때가 많지만, 교사가 교육 현장의 실천적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 맞춤형 교육, ‘과목 선택’만으로 충분한가?

등교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평소 친분 있던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지역의 각 교육 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지역 내 한 교육시민단체 주관으로 마련된 자리에 교장, 교감, 장학사, 초등교사, 중등교사, 초등 학부모, 중등 학부모, 마을 활동가, 학교 재학생, 학교 밖 청소년 등이 원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대안교육기관에서 학습하고 있던 18살의 학교 밖 청소년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어릴 때부터 정규 학교가 아닌 부모들의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대안교육기관에서 공부해온 학생이었다. 대안교육기관도 학교 형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 학생의 생활에도 코로나19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학생의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습을 이어가는 방식에는 정작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에 걸쳐 큰 변화가 없었다.

“검정고시 공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제가 학습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공부해요. 올해 초 겨울까지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했어요. ‘페미니즘’과 관련한 여러 책을 읽다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본질을 알기 위해 인류학과 유전학 분야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어느 날 갑자기 ‘공부’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 비슷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는 ‘공부의 의미’에 대해 학습하고 있어요.”

이 사례는 어디까지나 그 자리에서 만났던 한 친구의 얘기일 뿐이다. 모든 학교 밖 청소년이 이처럼 학습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정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 중에서도 더 깊은 수준의 고민과 과제를 안고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이어나가는 사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이든, 정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든 관계없이 우리가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 같은 학습 역량을 갖춘 학생이라는 점에는 아마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이 학습하고 싶은 과제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화두가 된 ‘학생 맞춤형 교육’이란 교육과정상의 과목 선택권을 넘어 학습 내용에서 학생들의 수준, 특성, 흥미, 진로에 맞게 스스로 학습 과제를 선택할 수 있는 ‘개별화 수업’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육과정상의 과목 선택권이 중심이 됐다.

자신의 진로에 맞춰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곧 ‘학생 맞춤형 교육’이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학생마다 진로 선택에 이르는 ‘과정’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학생이 선택한 진로가 이미 있다고 전제한 후 그에 따른 과목 선택을 강조했다.

정작 많은 학생들은 진로를 선택하지 못한 채, 혹은 진로를 선택했다고 착각한 채, 과목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수준, 흥미, 특성을 고려해 스스로 학습 과제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상황에서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환경의 변화는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접근해왔던 개별화 수업이라는 문제를 구체적인 고민 지점으로 끌어올렸다.


모니터 속에서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시도하다

다음은 온라인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29일, 2학년 <경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작성했던 ‘수업 성찰 일기’의 내용이다.

<경제> 첫 단원 내용이기 때문에 초반에 앞으로 경제 개념들을 가르치기 위한 기초 활동지 개념으로 과제를 실시했다. 평소 주변에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조사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과제로 해,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수업을 디자인했다. 학생들이 물품을 조사하면서 한 번씩은 주변 사람을 떠올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경제학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을 전제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그런 차가운 학문은 아니었으면 한다. 경제학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은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에서 시작된다. <경제> 수업을 들어가면서 관계 맺음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고민했다. 학생들이 조사하는 합리적 선택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이로울 수 있도록 고민하게끔 디자인했다. 아이들의 활동 과제에서 예산선을 설정해 변화에 따라 포기하는 가치를 만들어낸 것은 나중에 이 활동지를 그대로 활용해 기회비용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이어서 선물의 가치를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비용-편익 분석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등교 개학 이후에 이 수업을 연계한 후속 활동을 하면서 온라인 수업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수업을 이렇게 디자인했던 이유는 온라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시도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등교 수업 이후 학생 활동을 바탕으로 비용-편익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원래 기대하고 계획했던 비용-편익 분석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학습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수업의 내용과 배움은 결여되고, 오직 학생의 활동만 남아버린 수업이 되었다.

우리 삶에서 합리적 선택의 사례와 내용,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아이들의 삶에서 이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다른데도 온라인상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활동만으로 합리적 선택의 경험을 제한하고 통제시킨 것이 문제였다.

나의 온라인 수업은 교실의 외벽을 그대로 아이들의 모니터 안으로 갖고 오는 것에 불과했다. 교실 수업에서 아이들이 교실의 벽을 넘을 수 없듯이 온라인 수업에서 아이들은 모니터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어쩌면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집 문을 나와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골라보는 경험이 합리적 선택의 과정을 더욱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 모른다. 혹은 물품을 구매하는 행위만이 아닌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선택의 문제를 풀어내는 고민을 하는 것이 더 삶과 연결된 배움이었을 수 있다.

처음으로 교실 밖을 넘어 진행되었던 수업 경험과 그에 대한 성찰은 그동안 교실 속에서 학생 참여형 수업을 디자인하며 느꼈던 성찰의 지점을 넘어 교사의 역할과 학생의 배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교실 수업 이후, 결과적으로 나의 시도는…

학생들이 등교한 이후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3학년 <정치와 법> 수업을 준비하며 다시 수업 성찰 일기를 썼다.

아이들의 관심에 따라 주제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총 6가지 정책을 준비해 제시했다. 분야별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법, 인권, 제도)’ ‘누리과정(복지, 교육, 행정)’ ‘청년수당(경제, 경영)’ ‘아동수당(지방자치, 보육, 복지)’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제정(지역, 법, 행정, 지방자치)’ ‘제주해군기지 추진 과정(지역, 지리, 사회운동)’과 관련한 논문 중에서 정책 추진의 배경, 과정 등이 있는 부분들을 원문 그대로 발췌했고, 아이들은 한 가지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학습하는 정치 과정은 단순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실제 현실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정치 과정에는 다양한 갈등 상황이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 주체들이 토론과 협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아이들이 배웠으면 한다. 우리의 삶과 연결된 많은 정책들이 일차방정식이 아닌 매우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과정임을 이해하고, 많은 변수들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통해 아이들이 참여의 주체로 성장했으면 한다.

수업을 마무리한 후 지난 과정을 반추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은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학습 과제 선정이었다. 정책 과정의 사례를 선정할 때 나름 <정치와 법>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을 떠올리면서 주제를 정했지만, 아이들의 개별 특성과 학습 성향, 흥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동안 이런 수업을 디자인할 때 텍스트 선정은 모둠별 주제로 접근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개별 성향을 고려하기보다는 교사의 판단에 근거해 수업 단원에 비춰볼 때 필요한 주제들을 학습 과제로 선정했었다. 그러나 모둠 학습이 아닌 개별 학습으로 디자인하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을 기준으로 가장 적합한 주제들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했다. 모든 학생이 각자 개별적인 관심 주제를 선정할 수 있으나, 협력적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한 경험을 수업 안에서 담고 싶은 마음과 현실적으로 배움이 느린 학생들을 위한 고려도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해 선정한 6가지 학습 주제는 사실상 학생들의 희망 진로와 학과를 고려한 것이 되었다. 교사로서 얼마나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부끄러웠다. 학생들을 이해하는 수준이 희망 대학과 학과, 학생부 작성을 위한 희망 진로에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입학을 위한 수단이 중심이었다.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 스터디 등의 노력이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진단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고, 그런 기회도 별달리 주어졌던 기억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교사 전문성 향상과 함께 평가 시스템 개선 절실

온라인 수업부터 교실 수업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고민을 수업에 담아내면서 미래 교육의 원동력이라고 느꼈던 점은 결국 교사의 수업 효능감이다. 주변의 많은 학교의 상황처럼 온라인 수업을 거치고 학생들의 등교 이후 실시되었던 3학년 <정치와 법>의 1차 지필평가 결과는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커지면서 표준편차가 증가하는 결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1차 지필평가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내신 9등급 산출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변별의 목적으로 지필평가가 치러졌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변별의 결과는 사실 교사의 수업 효능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앞으로 나의 수업과 그에 따른 효능감은 학생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전문성을 얼마나 키울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 개별화 수업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면 그 형태가 온라인 수업이든 교실 수업이든 미래 교육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학생의 특성에 따른 개별화 수업을 고민하면서 현재 우리의 평가 시스템 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더 절실해졌다. 미래 교육을 말하면서 여전히 평가 시스템은 동일한 시험지를 통한 줄 세우기에 그친다면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특성에 맞는 개별적 학습 주제를 선택해 학습하기란 불가능하다.

미래 교육의 학습자 상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학생이라면 현재 교육과정과 평가 시스템 속에서의 학교는 당연히 존재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미래 교육을 얘기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이런 열악한 교육 제도 속에서도 학교는 다양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모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내일교육>은 지난 963호에서 ‘온라인 수업이 만든 위기, 성취도 양극화_ 중위권이 사라졌다’는 기사로 코로나19에 따른 학습 공백을 짚어봤습니다. “공교육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면서 학교 교육의 공백이 초래하는 불평등의 악화 양상을 보여준 한 지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였는데요. 제주 대정고 정유훈 교사의 기고를 통해 코로나19가 드러낸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학교 현장의 고민을 담아봅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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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08월 19일 9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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