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고3부터 등교를 시작했지만, 수업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당일 인천·대구 지역에서는 고교생 확진자가 나와 등교한 학생들은 바로 귀가했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온라인 수업이 재개됐다. 게다가 최초 수도권 지역 감염 확산에 등교 기준이 더 명확해졌다. 정상적인 학사 일정이 어려워 학교의 고민이 적지 않다. 이에 ‘9월 학기제’ 도입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찬반 대립도 치열하다. 9월 학기제가 무엇인지, 어째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지 짚어봤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도움말 박남기 교수(광주교육대학교)
다시 찾아온 ‘9월 학기제’ 도입 주장
9월 학기제란 쉽게 말해 우리나라는 3월에 시작하는 새 학년을 9월에 시작하는 제도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세계의 70%는 9월 학기제를 시행 중이다. OECD 국가 중에선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4월 초), 호주(2월 말) 등 3개국만 9월 학기제가 아니다.
이 논의는 오래됐다. 1997년 문민정부 때 초·중등 교육의 국제화·세계화 대비를 이유로 수면 위로 부상했고, 2007년 학년제 개편의 필요성이 언급되며 9월 학기제가 학제 개편안에 검토 과제로 포함됐으며, 2014년에도 교육 국제화 방안 측면에서 9월 학기제가 제안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등교 개학이 거듭 연기되자 9월 학기제 도입 제안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경남도 김경수 도지사와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 등이 도입을 제안하거나 촉구하고 나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교사 학생 학부모 등 다양한 계층에서 제안한 9월 학기제 청원이 27일 현재 21건에 달하며, 3월 등장한 첫 청원은 1만5천여 명이 동의한 상태다.
코로나19 혼란 잠재울 구원투수?
찬반 의견도 다시 팽팽히 맞선다.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우리의 학사 일정이 국제 표준에 맞춰져 국제 교류가 원활해진다는 점을 우선 내세운다. 유학생 유치가 수월해지고 우리 교육의 국제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
학사 운영 면에서도 겨울방학을 줄여 2학기 기말고사 이후 생기는 학업 공백을 줄이고, 야외 활동이 가능한 여름방학을 늘려 학생들의 다양한 체험 활동을 장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학업 공백을 메우고 입시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기대가 높다. 충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자기 주도 학습이 연습되지 않은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제때 듣지 않거나 제대로 학습하지 않다 보니 학업 누수가 상당하다. 중·고교 학습은 누적이 돼야 다음 학기·학년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크다. 지역·학교·교사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 차가 더 크게 벌어질 것 같다. 물류센터, 콜센터 등 전염병 감염에 취약한 환경의 노동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와 전국의 우수 학생들이 기숙사에 모여 관리받는 학교 간에 등교 일수가 차이날 가능성도 크다. 현재 상황으론 원래 1학기 기간 동안 교사는 온라인 수업의 질을 높이며 학생 학습 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학생들은 놓친 학습을 보완하도록 하는 데 주력하며, 새 학년을 9월에 시작하는 안을 검토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막대한 비용·성급한 논의 ‘문제’
반대하는 쪽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부터 문제 삼는다. 그간 유력하게 논의됐던 3월 입학 후 9월에 또 한 번의 초등학교 신입생을 추가로 뽑는 안을 시행하려면 1년에 6개월의 차이를 두고 2개 학년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학생들이 고3이 될 때까지 교실·교원을 차례로 확충해야 해 상당한 비용이 예상된다. 지난 5월 17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9월 학기제 도입에 따른 재정 소요’ 자료에서도 내년(2021학년) 9월 신입생 선발을 기준으로 9월 학기제를 도입하면 13년간 총 3조8천9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2014년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공개한 ‘9월 신학년제 실행 방안’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12년간 약 8~10조 원의 비용을 예측했다. 대학 입시, 기업의 고용 시기, 행정고시 등 정부의 각종 시험 시기 변화 등까지 포함된 계산이다. 번번이 도입이 무산된 것도 이 비용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올해 도입을 검토했던 일본도 28일 자민당이 비용을 고려했을 때 향후 2년간 도입은 어렵다는 결론을 냈고, 장기 과제로 남겼다.
긴 여름방학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5월 중하순 2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9월 방학까지 3개월 안팎의 긴 휴식기를 갖게 되는데, 가정의 경제력에 따라 학생의 경험·교육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입시 혹은 돌봄을 목적으로 사교육을 이용하는 횟수나 시간이 대폭 늘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19 종식 시기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9월 학기제 도입을 성급히 추진하는 것도 비판한다.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교육 시스템의 국제화로 우리가 볼 이익이 확실치 않다. 외국과 학기를 맞췄을 때, 한국으로 오는 외국 학생보다 외국으로 나가는 우리 인재가 더 많을 것으로 보여 유출되는 인재·비용이 커질 수 있다. 또 장기간의 여름방학을 채워줄 체험 프로그램을 구비해야 하는데, 가정의 소득 수준에 따른 학생의 학력 차이가 지금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 연간 회계 기준도 3월이며,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에 대한 기대가 큰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맞지 않고, 막대한 비용에 비해 기대 효과는 미지수다. 특히 지금은 비상 상황인데 장기간 검토하고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하는 9월 학기제 도입을 결정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장기적 논의 필요, 온라인 학습 사각지대 대책 시급
3월 말 9월 학기제 도입이 불거지자 청와대와 교육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5월 들어 일본에서 9월 학기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국내에서 집단 감염이 계속되자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을 비롯한 일부 진보 성향 교육감이 수능 연기 및 9월 학기제 검토 등의 공론화에 나선 상태다.
이에 대해 교육계 전반은 신중한 입장이다. 찬반이 갈리지만, 더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학사 일정과 교육과정 전반 조정이 전제돼 단기간 추진할 일이 아니며, 상당한 비용과 사회 전반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한 후 법령 정비와 충분한 시범 운영을 거쳐 단계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9월 학기제가 아니라 온라인 학습의 효과를 높이고, 문제점을 해소할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온·오프라인 병행 수업의 효과를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박 교수는 “온라인 학습을 불가피하게 대규모로 도입하면서 온라인 교육의 효과와 방치 학생 문제가 발견됐고 교실 수업의 가치가 재조명됐다. 수업이 공개되며 단기간에 교사들의 수업 역량이 제고됐고, 학생들은 필요한 부분을 반복 학습하거나 바로 필요한 보충 자료를 찾아보며 심화하는 등 온라인 교육의 장점이 부각됐다. 반면 상호 작용의 한계로 학습 정도·성향에 맞춘 수업이 쉽지 않았다. 특히 학습 장애 학생, 학습 흥미도가 낮은 학생, 저학년 등 교육 약자에게는 대면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인간 교사,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의 가치가 재조명된 셈이다. 장점을 융합하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교 인터넷 환경 개선, 학력 보완 및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정부의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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