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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호

치열했던 중간고사

숨 죽이며 눈치보던 웃픈 후일담

첫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고1 학생들은 고교 입학 후 첫 시험이라, 고2는 앞으로의 자신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라, 고3은 고3이 된 후 첫 시험이라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컸을 거예요. 결과를 떠나 긴장과 초조 속에 보냈을 우리 학생들, 그런 자녀를 보며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함께했을 부모님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중간고사 기간 다이나믹했던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이제 일 년의 첫 시험이 끝난 만큼 비난이나 채찍보다는 위로와 격려 가득한 시간으로, 힘찬 내일을 맞길 바랍니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 시험 기간, 아빠들도 괴로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게 낙이었어요. 야구, 골프, 로드 FC 등 스포츠를 비롯해 외화나 드라마 등 볼 게 많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난 뒤부터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음으로 본다는 거예요. 자막 설정이 되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내가 아이 공부한다고 주말에도 등산 다녀오거나 친구들 좀 만나고 오라더니, 노동절인 5월 1일에는 나갔다가 평상시와 같이 퇴근 시간 때쯤 들어와 달라고 얘기를 하네요. 시험 기간에 텔레비전 시청은 안 되고, 아이에게 “시험 잘 봤니?”
“몇 점 받았니?” 등 시험과 관련된 얘기는 하지 말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네요.
저 역시 눈치껏 노동절에 아이 방해 안되게 등산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강제 외출을 당하니 기분이 영~ 안 좋았어요. 회사에서 얘기 들어보니 이런 아빠들 많더라고요. 시험 기간, 아이도 힘들겠지만 눈치 보는 아빠도 너무 힘드네요.


# 중간고사에 개봉한 어벤저스, 미워요
마블을 좋아하는 아들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뒤숭숭해 했어요.
개봉하는 날 봐야 하는데 시험 기간이라 못 본다며 엄청 안타까워했죠.
시험 끝나고 보러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결국 그 며칠을 못 참고 시험 중간에 어벤저스를 보고 왔더라고요. 시험이 월요일까지라 며칠만 참자는 제 얘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금요일에 영화 보고 와서는 주말에 공부할 시간이 많아서 괜찮다는 거예요. 오히려 보고 싶은데 못 봐서 자꾸 생각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며 얼마나 당당한지 몰라요.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토요일, 일요일 공부를 좀 신경써서 하더라고요. 그런데 월요일 시험을 보고 난 뒤 전화해서는 금요일에 영화를 보길 정말 잘했답니다.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어벤저스 안 보고 공부한 아이나 자기나 비슷하다나요.
고2 아들, ‘리스펙’입니다!


# 많이 힘들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
고3 중간고사. 아이들만큼이나 아이의 긴장된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도 힘들었어요. 아이에게 부담될까 내색하지 못했던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느 날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에 있는데 눈물이 와락 쏟아지네요.
지켜보는 부모도 이리 힘든데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 이 상황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언젠가부터 등교하는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처음엔 당황하던 아이도 이제는 저를 꼭 안아주네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힘듦을 알아주는 것 같아 위안이 된답니다.


# 모든 승부수를 수능에!
고3 딸, 일찌감치 종합 전형을 내려놓았어요. 논술과 수능에 집중하기로 했는데 일부 대학을 보니 논술 전형에 학생부 성적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내신을 조금이라도 올려보자고 얘기했더니 딸은 “이까짓 내신 시험으로 자신의 역량을 평가할 수 없다. 지금은 내신 올리기보다는 수능에 모든 승부수를 걸어야 할 때다”라며 궤변을 늘어놓네요.
내신도 수능 과목 위주로 공부하겠다며, 더 이상의 참견을 거부해요. 평상시에는 독서실도 잘 가더니만 이번 시험에는 굳이 집에서 공부하더라고요. 자기 방도 아니고 거실과 주방을 점령하고서요.
식탁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식탁에 앉기도 하고 거실 한가운데 누울 수 있는 의자에 앉기도 하면서요. 남편과 전 시험기간 내내 딸아이 덕분에 방에 들어가 있었답니다.


# 학원 올스톱, 기말엔 네 힘으로~
시험이 끝나고 아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어요. 학생 마당의 영역별 자료실에 들어가 보니 국어·수학·영어·과학 등 중간고사 대비 각종 자료가 올라와 있더라고요. 영어는 부교재 해석을 통째로, 수학은 난도별 문제와 해답을, 과학은 시험 범위 내 참고 자료를, 국어는 학생들 발표 수업 자료를 올려 시험에 참고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는 이 자료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아요. 시험 기간에도 교과서 필기를 꼼꼼하게 보라고, 시험 출제자는 학원샘이 아니라 학교샘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학원 교재로만 공부하더라고요.
학원 의존도가 심각한 거죠.
이번 시험 결과를 보면서 아이와 학원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학원 숙제하느라 스트레스 받고, 숙제가 밀려 학원 선생님께 매번 혼나지 말고 기말고사는 자율학습을 하면서 혼자 공부해보면 어떠냐고
얘기했어요. 뜻밖에 아이가 자기도 학원이 버거웠다며 혼자 해보겠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많은 갈등이 예상되지만 일단 지켜볼 생각입니다.


# 고1 중간고사, 전부 아니에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교재를 훑어보는데 공부한 흔적이 없는 책이 꽤 많더라고요. 배신감이 밀려왔어요. 하도 답답해 고3 자녀를 둔 지인을 만나 하소연을 했죠. 아이가 공부하는 걸 보니 수시는 꿈도 꾸면 안 될 것 같다며 불성실한 아들 흉을 한참 봤어요. 제 말을 묵묵히 듣던 선배 맘이 말하네요.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해. 그렇지만 고1 중간고사 결과로 대학이 결정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그리고 학생부에 기록되는 성적은 중간고사 성적이 아니야. 수행평가와 기말고사 성적이 합해져야 온전한 성적표가 돼.
중간고사 점수, 등수보다 아이의 과목 선호도, 공부 방법, 앞으로 보완할 점 등을 체크하는 게 더 중요해. 지금 필요한 건 아이를 비난하는 것보다 부모의 신뢰를 보여주는 거야. 엄마가 이렇게 조급해 하면 어떡해. 3년, 길게 내다봐야지. 힘내”
맞더라고요. 긴 싸움의 시작, 천천히 속도를 올려보려고요.


# 서로 안타까운 아들과 남편의 카톡
고교 입학 후 첫 시험, 아이가 중학교 때와 달리 열심히 하더라고요. 시험 때가 되니 스트레스로 몸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결과와 관계없이 아이의 노력을 인정해주자고 시험 기간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남편과 다짐했지요.
시험 마지막날 남편이 아들과의 카톡 내용을 캡처해 보내주었는데 서로의 마음이 전해져 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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