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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호

교과서로 세상 읽기 7 | 생화학

공기를 곡식으로, 열매를 독으로 바꾼다?! 인류의 축복이자 재앙, 21세기 연금술 ‘생화학’

교과서로 세상 읽기 17
생화학

공기를 곡식으로, 열매를 독으로 바꾼다?!
인류의 축복이자 재앙 21세기 연금술 ‘생화학’

코로나19로 인한 각국의 셧다운 선언은 식량 사재기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재난의 발생은 생명의 위협과 동일어로 인식되며 인간의 먹을거리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를 일으켜왔다. 1798년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인구통계학자인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을 발표했다. 내용인즉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기근과 빈곤, 전쟁, 질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다. 실제로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은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났으나 인구는 그보다 더 빨리 증가해 사회는 여전히 빈곤한 이들로 넘쳐났다. 맬서스는 인구 조정을 위해 즉시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한 복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맬서스가 말한 인류 멸망의 시기를 지나 그가 <인구론>을 발표할 당시 10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를 80억 명 가까이 불렸다. 이 기적을 가능케 한 마법 지팡이 ‘생화학’을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뉴스는 넘치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더 어려워졌죠.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언제고 도움이 될 뉴스들을 ‘콕’ 집어서, 교과서 개념과 연결해 쉽게 읽어주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중·고등학생의 눈높이로 풀어보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내일교육(lena@naeil.com)으로 언제든 제보해주세요. _편집자



[ TV 뉴스와 신문기사로 본 세상 ]
※뉴스 출처_MBC

“부산 시민단체가 부산항 8부두 미군기지의 생화학 실험 의혹과 관련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을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주한미군은 보툴리눔, 리신등 독소를 부산항 8부두 기지에 반입했다. 주한미군의 불법적인 독소 반입 등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와 정보 공개를 촉구하는 뜻에서 8부두 미군기지 근처 주민 등 1차 고발인 170명의 이름으로 고발장을 제출한다”고 했다.

- 한겨레 ‘부산 시민단체, 생화학 실험 의혹 주한미군 사령관 고발키로’
(2020. 3. 23) 기사 중




[ 교과서로 뉴스 이해하기 ]
인구 증가와 식량 부족을 한 방에 해결한 ‘하버’
밥 없이 살 수 있는 사람 손 번쩍! 빵이랑 고기만 먹으면 된다고? 빵은 하늘에서 떨어지니? 밀을 수확해야 빵이 나오지. 고기는? 돼지랑 소도 먹어야 할 거 아냐. 고로 농사가 기반이 돼야 너희들이 고기도 먹을 수 있는 거야.
식물의 성장에는 다양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질소’야. 따라서 인류가 대규모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훨씬 많은 질소가 필요하게 됐지. 과거 조상들은 농사를 한 번 지으면 땅의 기력이 약해졌다며 회복될 때까지 휴지기를 갖곤 했어. 땅의 기력이 약해졌다는 건 ‘질소가 부족하다’는 뜻과 같단다. 화학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우리 현명한 조상들은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를 논밭에 뿌려 질소를 보충했고 화전을 일궈 나무를 태워서 질소화합물을 생성해 땅을 튼실하게 만들었지.
배설물에 포함된 암모니아(NH₃) 화학식을 봐봐. 질소(N)가 보이지? 사실 질소는 지구대기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원소지만 농업에 바로 사용할 수가 없어. 공기 속 질소는 원자 2개가 합쳐진 형태(N₂)로 존재하는데 얘들이 한 몸인 양 떨어지지 않아 질소를 얻을 수가 없었거든.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난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는 천재도 나타난다는 거야.
1906년 독일의 무명 화학자였던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수소와 결합해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했고 질소 비료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해 인류를 식량 부족에서 구원해냈어. 고등학교 <화학Ⅰ>의 첫 단원 ‘화학의 유용성’에 그가 가장 먼저 등장한 이유, 이제 알겠지?



[ 다시 읽는 생화학 ]
1 세기의 두 천재 아인슈타인과 하버, 식량난 해결 업적으로만 따지면 하버가 이길 뻔.
2 독가스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방독면. 인간들 덕에 말도 고생했다.

생화학, 전쟁의 옷을 입고 공포가 되다
인류와 화학은 사실 늘 함께였어. 자연에 있는 것, 자연에서 얻은 것, 필요에 따라 합성한 것 모두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진 화학 물질이기 때문에 화학이 존재하지 않는 삶은 불가능하단다. 그중 ‘생화학’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구성 성분과 이들 물질의 화학 반응, 생리작용 등을 화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생물학과 화학이 융합된 학문을 뜻해. 미생물과 식물, 해양생물과 동물 등 다양한 생명체를 인류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앞서 말한 인류를 구한 영웅 하버에 대해 더 알아보자. 19세기 독일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어 유대인이었던 하버는 원하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어. 하버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독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었지. 질소를 분해한 것도 독일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세하길 바란 마음으로 이뤄낸 결실이었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하버는 무기 개발에 뛰어들게 돼. 결국 자신의 장기인 생화학을 활용해 염소(CI)를 이용한 독가스를 개발해내지. 하버의 염소 독가스는 사람의 점막을 공격해 노출되는 순간 눈이 멀고 숨을 쉬면 코 속의 점막을 녹이며 폐로 들어가면 장기를 녹이는 끔찍한 무기였어. 이 무시무시한 생화학무기는 1915년 2차 이프르 전투(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동북부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연합군 병사들에게 대규모로 살포됐고 1만5천여 명의 희생자를 냈어. 유대인 하버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조국 독일로부터 훈장을 받았지만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망명길에 오르게 돼. 이후 하버의 독가스 연구를 이어받은 독일의 과학자들은 치클론B를 완성했고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사용됐단다.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이루어진 셈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731부대, 베트남의 고엽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생화학무기의 위력을 절감한 열강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실험에 뛰어들었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를 사용할 경우 자칫하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고 각국은 암묵적으로 동의했어. 결국 생화학무기는 공식적으로 사용이 금지됐지.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일본은 중국 하얼빈을 점령해 생화학무기 개발 임무를 부여한 731부대를 주둔시켰어. 1936년부터 1945년까지 그들은 해마다 600여 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그들을 ‘마루타(통나무)’로 칭하며 실험을 했고 최소 3천여 명, 최대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를 각종 세균 실험과 약물 실험 도구로 삼았어. 이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생화학무기 연구 결과를 모두 미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책임자 전원이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면책됐단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전쟁’, 미국이 유일하게 패한 전쟁으로도 명성이 높지. 당시 베트남을 침공한 미군을 가장 괴롭힌 건 베트남의 정글이었어. 정글에 숨은 적들과 싸우자니 너무 힘겨웠지. 정글을 모두 태워버리면 좋으련만 워낙 덥고 습한 나라라 나무들이 안 타는 거야.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고엽제란다. 초목을 말려 죽이는 강력한 제초제야. 당시 베트남에 9천100만ℓ의 고엽제를 뿌려댔다니 인간을 비롯해 동식물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겠니. 생화학무기가 남용되는 전쟁, 결코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되겠지.




[ 한걸음 더 생각하기 ]

전쟁 후 생화학무기 공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두 번의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까지 치르는 동안 전쟁에 쓰이던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던 공장들은 전쟁 종료 후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자 업종을 바꾸게 돼. 살충제나 제초제, 과일을 오랜 기간 보존하는 약품 등을 개발하는 일을 시작한 거지.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베트남전쟁 당시 생화학무기인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미군에 공급한 기업 ‘몬산토’야.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 고엽제 후유증인 암과 각종 유전병이 나타나자 1971년 몬산토의 에이전트 오렌지는 사용이 전면 금지돼. 그러자 몬산토는 친환경 제초제를 개발했다며 ‘라운드업’을 세상에 내놓았어. 전 세계적으로 라운드업 사용량이 급증하자 바로 역효과가 나타났어. 내성을 지닌 잡초가 생겨났고, 토양 오염과 더불어 기형과 질병을 유발, 약품이 인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증거들이 속속 등장한 거야.
프랑스 언론인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마리모니크 로뱅은 몬산토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아 <에코사이드: 생태학살자>라는 책을 펴냈고 몬산토를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 그래서 몬산토가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냐고? 전혀~더 열심히 제초제와 살충제에 GMO(유전자변형 농산물)까지 상품화하고 있다나 뭐라나. 그들이 만드는 제품의 주 고객은 누구? 당연히 대규모 농장 소유주들이지.
달콤한 과일의 대표주자 바나나가 대표적인 오염 작물이라는 사실 알고 있니? ‘돌, 델몬트, 치키타’, 우리에게 친숙한 이 3대 브랜드가 전 세계 바나나 업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지. 그들이 소유한 바나나 농장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경비행기로 살충제를 뿌려댈 정도지. 보통 5일에 한번 꼴로 1년간 60일이나 살포를 한다고 해. 이 살충제는 사라지지 않고 공기 중에 떠다니며 바나나잎과 열매, 땅에 묻어 그곳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인체에 침투하고 피부병과 암, 생식 능력 상실 등의 고통을 주고 있어.
그런데도 왜 일을 하냐고? 그만두는 순간 자신과 가족이 모두 굶게 되니까. 달콤한 바나나에는 환경 파괴와 노동자들의 눈물이 배어 있어. 우리도 그 화학 물질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셈이고.

생화학과 휴머니즘의 만남
전 세계는 1975년 ‘생물무기금지협약’을 발효해 생화학무기 제조를 금지, 제한하고 있어. 하지만 생화학무기는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소량만으로도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지니기에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는 별칭으로 불린단다. 게다가 증거인멸이 용이하고 사찰도 어려워 어떤 나라가 몰래 이를 만들고 있는지 알아내기가 힘들지. 팬데믹이 선언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지금도 각국이 책임을 전가하며 위험천만한 ‘코로나19 생화학무기설’ 발언을 하는 배경이지.
기술은 휴머니즘을 만났을 때 아름답게 꽃피어. 생화학도 마찬가지고. 생화학이 없었다면 여전히 인류는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을지도 몰라. 예방접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수많은 이들이 병마로 죽어갔을 거고 세균을 씻어내는 비누도 세탁 시간을 줄여 준 세제도 나오지 못했을 테지.
생화학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야가 의·약학이라는 사실, 알고 있니? 덕분에 생체 내에서 작용하는 효소의 활성 분석으로 다양한 임상진단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단다. 그래~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도 모두 생화학이라는 분야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분들이 이루어낸 결과다 이 말씀이야.
이렇듯 축복과 재앙의 두 얼굴을 가진 생화학. 기술을 아름답게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건 우리 인류의 영원한 숙제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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