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량을 나타내는 킬로그램(㎏)과 전류 기호 암페어(A), 온도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mol)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측정 단위는 모든 과학기술의 기초다. 이 기본단위는 세계가 공통으로 규정·활용하는데, 130년 만에 새롭게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세계 측정의 날’인 지난 5월 20일부터 바뀐 기본단위를 적용하고 있다. ‘불변’할 줄 알았던 기본단위가 왜 새로 정의됐는지 5문 5답으로 알아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도움말 이윤진 교사(경기 나루고등학교)
Q1 기본단위란 무엇인가요?
A 쉽게 말하면 우리가 수·과학 시간에 배운 단위들이에요. 길이의 단위는 미터(m), 질량의 단위는 킬로그램(kg), 시간의 단위는 초(s), 전류의 단위는 암페어(A), 온도의 단위는 켈빈(K), 물질량의 단위는 몰(mol), 광도의 단위는 칸델라(cd) 등 이 7개의 단위들을 기본단위라고 하죠. 세상엔 다양한 크기, 무게, 속도 등이 존재해요. 이를 확인하거나 또 활용하려면 통일된 기준으로 숫자화할 필요가 있죠. 예를 들어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를 ‘멀다’ 혹은 ‘자전거로 일주일 걸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여지가 있어요. 반면 ‘390km’라고 하면 명확하죠. 이런 이유로 ‘단위’가 필요한데, 다양한 단위 중에서도 ‘1000m=1km’ ‘1m/s=1초당 1m 움직인다’ 등 대체 불가한 비교 기준이 되거나 다른 단위의 기반이 되는 특별한 단위 7개를 따로 모아 부를 때 기본단위라고 해요.
Q2 기본단위의 정의는 누가 정한 건가요?
A 필요한 사람들이요. 하하. 역사가 꽤 긴데, 일단 ‘세계 측정의 날’부터 시작해볼까요? 사회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나라 간 교류도 활발해졌어요. 각국이 교역하다 보니 어떤 나라 사람이 물건을 사고팔아도 변함없는 공통의 ‘1개의 길이, 1개의 무게’를 찾게 됐어요. 우선 가장 많이 쓰이고 눈으로 확인 가능한 길이부터 통일하자는 뜻이 모아졌고, 1791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지구 자오선 길이의 4천만 분의 1’을 1m로 하자고 정했죠. 이를 ‘미터법’이라고 하는데, 쓰기 쉽고 체계도 합리적이라며 우수성을 인정받아 1875년에는 미국과 유럽의 17개 선진국이 모여서 국제적인 미터 협약을 체결하게 돼요. 이날이 세계 측정의 날이 됐고, 이후 1964년 미터법이 전 세계적으로 전면 실시돼요. 미터 협약에 따라 다른 단위도 표준화하자는 의견이 거세졌고, 이를 위한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지며 7개의 기본단위와 이들을 조합한 여러 유도단위들이 규정됐어요. 우리나라는 1959년 미터 협약에 가입하며, 국제적인 기준의 단위를 쓰게 됐고요.
국제적인 단위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를 들어볼게요. 1999년 NASA의 무인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 도착한 직후 폭발해버렸는데, 그 원인이 뭐였을까요? 바로 단위에 대한 착각 때문이었어요. 탐사선을 만든 회사는 야드(1야드는 0.914m) 단위를 사용했는데, 조종한 팀은 이걸 미터법으로 여겨 훨씬 낮은 궤도에 진입시켰거든요. 그 바람에 탐사선은 대기와의 마찰열로 폭발했어요.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 수조 원의 투자금이 ‘단위’에 대한 착각으로 몇 초 만에 사라진 셈이에요.
Q3 단위의 정의가 왜 바뀌는 건가요?
A ‘인공물’, 즉 사람이 만든 물질을 기준으로 만들었거든요. 인공물은 시간이나 공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질량의 단위(kg)는 1889년 백금과 이리듐 합금을 국제 킬로그램 원기(原器, 질량을 재는 기준 질량)로 정해 1㎏의 국제 기준으로 삼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 원기 무게가 최대 10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 가벼워진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게 된 거죠. 탄소의 질량을 기준으로 정의한 mol도 kg 원기 질량의 변화로 인해 함께 바뀔 수밖에 없어요. 이렇듯 특정 물질에 기반한 정의는 불안정한 셈이죠. 또한 애매한 표현을 쓴 정의도 혼란을 야기하는데, 전류의 단위인 암페어(A)의 정의에는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이라는 표현이 포함됐어요. 기준이 모호하니, 정확한 측량도 어렵고요.
Q4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 건가요?
A 기본단위의 기준을 ‘변하지 않는 상수’로 바꾼 거예요.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미터(m)예요. 미터는 1875년 미터 협약이 체결되며 국제 미터원기라는 물체를 만들어 기준으로 삼았었지만 현재는 불변의 상수인 빛의 속력(c)을 이용해 정의하고 있죠. 이번 기본단위 재정의에는 플랑크 상수(h, 양자역학의 현상 크기), 기본 전하(e, 전하를 띤 모든 입자의 전하량), 볼츠만 상수(k, 이상기체를 압력·부피·온도의 함수로 다룰 때 사용하는 보편상수), 아보가드로 상수(NA,1 mol의 기초 단위체 속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수)라는 고정된 값의 기본 상수를 기반으로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의 4가지 기본단위를 새롭게 규정했대요. 어렵다고요? 그냥, ‘아~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수가 기준이 됐구나’ 하고 이해하면 돼요.
Q5 달라진 기본단위가 우리 일상도 바꿀까요?
A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과학자들도 ‘거대한 변화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a huge change, but no change)’라고 말해요. 몸무게를 다시 재야 하는 변화는 없거든요. 반면, 정확성을 요구하는 학술·기술 분야에서의 영향력은 꽤 클 거예요. 지금, 그리고 미래의 첨단 기술은 더 세밀해질 테고, 그럼 극한의 영역에서도 미세 오차를 허용치 않는 ‘ 정확한 측정’은 필수가 될 거예요. 미세혈관을 지나 암세포를 없앨 의료용 나노 로봇만 하더라도, 마이크로 단위로 크기나 무게를 바꿔 개선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지만 성공률은 크게 차이 나니까요. 이번에 새롭게 정의된 4개 단위를 두고 ‘과학계의 골칫거리를 해결했다’고 하는 이유예요. 첨단 기술은 미래의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니, 큰 변화를 일으킨다고 할 수도 있고요.
“현재 중·고등학교의 성취 수준에서는 깊이 있게 단위 정의를 학습하지는 않아요. SI단위계에서 전류의 단위는 암페어(A)이고, 길이의 단위는 미터(m)라는 정도로 가볍게 학습하기 때문에 기본단위 정의 변화로 인해 교육 내용이나 과정에 변화나 영향이 있지는 않습니다.
단위 정의가 바뀌었다는 것도 많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기준, 표준(Norm)이 되는 것들은 많은 시간이 흐르면 미세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상수를 사용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없애고자 한 의도로만 이해하면 충분해요.”
이윤진 교사(경기 나루고)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