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우편함에 낯선 이름의 편지 한 통이 꽂혀 있었습니다. 발신자는 바로 병무청. 무슨 일인가 싶어 다급하게 봉투를 뜯어보니, ‘병역준비역 편입 안내문’이었습니다.
글 이지혜 리포터 wisdom@naeil.com
고3 대비한다고요? 입대도 준비하세요!
빠르게 훑어보고,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또다시 읽어봤습니다.
‘대한민국 남성은 연 나이(출생연도 기준) 18세가 되는 해 1월 1일, 자동으로 병역준비역에 편입됩니다. 귀하께서는 2008년생으로 병역법 제8조의 규정에 따라 18세가 되는 해인 2026년 1월 1일부터 병역준비역에 편입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헌법과 병역법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합니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남성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이다 보니 마음이 복잡합니다. 젖먹이 아기 때 얼굴이 남아 있는 아이가 군모를 쓰고 얇은 군복을 입은 채 눈보라 속에서 훈련을 받는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아이가 군대 훈련을 잘 견딜까, 통제가 심한 군대 문화는 어떨까, AI 로봇과 드론이 전쟁에서 활약한다는데 언제까지 아이들이 군대를 가야 하나, 고위층 자제들은 잘도 면제를 받던데…. 뉴스에서 본 군대 내 사건 사고가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불안감이 커지다 사회 문제를 훑으며 열이 올라오던 차, 문득 달력을 보고 왈칵 성질이 났습니다. 고3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 굳이 아이와 부모에게 ‘군대’를 떠올리게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병무청이라는 세 글자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괜히 그 세 글자만 더 또렷하고 크게 보였죠.
#첫_병무청_편지 #나도_받았다!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우편물을 건네주니 “오, 나라에서 나를 부르네”하며 담담한 모습을 보입니다. 고3 올라가는 애들한테 군대 가라는 날벼락이 너무하다며 저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가자, 아들은 살짝 놀라더니 차분하게 한마디 합니다. “에이~ 엄마, 다 가는 군대 나도 가야지!” 그러곤 휴대폰을 꺼내 병무청 첫 편지의 인증숏을 남기더군요. 몇몇 친구도 편지를 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는지, 은근히 기념일처럼 여기더라고요. 대입이라는 인생 최대의 관문을 앞둔 예비 고3. 그 어깨 위에 ‘군 복무’라는 숙제가 얹히는 순간, 엄마는 그저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 상황에서 남편의 반응은 비교적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복무 기간도 짧고 휴대폰 사용도 가능하다며 자신의 옛 군대 고생담을 풀어놓더라고요. 요즘 군대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는 말만 몇 번을 하는지, 듣다 못해 “그렇게 좋으면 내 아들 대신 당신이 재입대하면 어때”라는 말로 받아쳤지요. 첫 손주에 대한 애정이 큰 친정아버지께도 이 소식을 전하자, 자연스럽게 본인의 군 복무를 떠올리며 과거 이야기를 이어가셔서 서둘러 화제를 바꿨어요. 이른바 ‘남의 군대는 짧고 편해 보인다’라는 인식이, 우리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반면 주변 엄마들의 반응은 저와 비슷했습니다. ‘벌써 군대 가라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날 괜히 아들이 짠해서 저녁을 잔칫상처럼 차려줬다’ 같은 이야기를 나눴죠. 심지어 아이 사춘기 때는 빨리 군대나 갔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친구도 이날만큼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수능 끝나고 안내문 보내주면 안 되냐’며 볼멘소리를 하더라고요. 특히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 상황 속에서 ‘한국 파병’이라는 단어라도 스치듯 나오면, 아직 한참 남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도 공통적이죠.
아이들은 점점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군대 역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고요. 그래서일까요. 오늘은 괜히 아이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됩니다. 언젠가 제 몫의 시간을 향해 홀로 걸어갈 아이들, 지금 함께 보내는 이 순간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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