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를 희망한 만큼 혜현씨의 학생부에는 청소년 문해력 문제, 교권 추락, 다문화 교육, 학생 인권, 대입 제도의 문제점 등 교육과 관련된 탐구 활동이 빼곡하다. 시의성에 맞게 사회 이슈를 주제로 삼았고 미래의 교육자로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모든 것의 시작은 ‘독서’였다.
취재 황혜민 기자 hyemin@naeil.com
사진 배지은
최혜현 |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입학 예정(서울 보성여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독서 수업
누구나 인생을 바꿀 한순간을 꼭 한 번은 만나게 된다. 혜현씨에게는 중2 독서 시간이 그랬다. 공부에 흥미도 없었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에게 질문 중심의 독서 수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승부욕을 자극하는 독서 퀴즈는 다른 과목에 대한 흥미까지 불을 붙였다. 하위권이던 성적은 중3이 되자 전교 4등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책을 읽고 생각할 만한 질문을 많이 던지셨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어졌고 자연스럽게 나도 국어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죠.”
입시에 대한 압박이 덜하고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너무 삭막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비롯해 모든 것이 입시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생활이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독서는 혜현씨가 숨 쉬는 통로였다.
“저는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문학 작품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갈등이 그려져 있잖아요. 독서는 제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여러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는지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어요. 친구랑 싸우고 답답할 때도 책을 읽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문학을 그저 암기 과목처럼 대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고전 문학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식 때문에 국어와 거리가 멀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혜현씨는 문학이 입시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었다. 국어교육과와 교육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국어교육과를 선택한 이유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이런 고민을 풀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제 찾고 해마다 탐구 활동 심화시켜
혜현씨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학생부종합전형을 염두에 뒀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학교생활에 적극 참여했다. 3년 내내 임원으로 활동했고 모둠 활동의 조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서 활동은 물론 학교 프로그램 참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공이나 교과 적합성도 중요하지만 희망 진로의 탐구력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무엇보다 탐구 활동을 해마다 심화시켰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2학년 때는 사교육의 문제점을 찾아보고, 3학년 때는 사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빈부 격차가 다시 교육 격차를 유발하는 사회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는 식이었어요. 각각의 탐구 활동을 따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하고 깊이 파고들었죠.”
혜현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 프로그램으로 1~2학년 때 참가한 ‘문학 답사’를 꼽았다.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와 <동백꽃>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춘천, 부두 노동자의 생생한 현실을 담아낸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탄생시킨 인천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서울 서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과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이었다.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을 형상화한 문학관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혜현씨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가장 공들인 과목으로 <사회과제연구>를 뽑았다. 대치동의 청소년 정신과에 예약이 꽉 찼다는 뉴스를 보고 또래의 정신 건강에 관심이 생겼다. 자료를 찾아보니 청소년의 우울증이 늘어나는 주요 원인은 입시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혜현씨도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었지만 우울증까지 생기지 않았던 이유에는 ‘소설 읽기’가 있었다. 1학기 내내 탐구했던 장기 프로젝트였고 자료도 많지 않아서 고생했지만 정말 뿌듯했다고.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통해 답답했던 마음이 해소되더라고요. 혹시 문학이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찾아보니 실제로 ‘문학 치료’가 있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어요. (웃음) 국어교육에 어떻게 접목시킬까 고민하다가 문학 교과서의 학습 목표를 연결해 설문 조사도 하고 친구들을 대상으로 수업도 했어요. 문학 작품에 스스로를 투영해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학습지도 만들었죠.”
무작정 계획 세우기보다 나에게 맞는 공부법 찾기
진로 독서 멘토링은 혜현씨가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창의적 체험 활동이다. 1학년 때는 2학년 선배에게 멘토링을 받고 2학년 때는 후배의 멘토가 됐다. 선후배가 <오만과 편견> <천년의 수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선택 과목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학교생활 전반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학 교수님을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스스로 탐구 주제를 정해 탐구했던 ‘인문 학회’ 활동도 기억에 남았다. 혜현씨는 <관동별곡>으로 수업 지도안을 썼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이었고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됐다.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성격과 거리가 멀었던 혜현씨는 계획을 세우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그때그때 끌리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대신 일주일에 해야 할 공부 분량을 정해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켰다.
“자율성과 쉬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공부의 효율이 오르더라고요. 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죠. (웃음) 그에 앞서 학교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까요. 이동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는 전날 밤에 암기했던 내용을 복기했어요. 백지에 암기 내용을 옮겨 적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는 거죠. 친구랑 퀴즈를 내면서 공부하는 것도 효과가 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교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세 번이나 읽은 <데미안>에서 에밀을 성숙한 인간의 길로 이끌었던 데미안 같은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로서의 교사만 생각하기 쉽지만 교사는 학생이 미래로 나아갈 때 동행하면서 길잡이가 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학창 시절에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인격 성장을 돕고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영어> 호주, 영국, 캐나다의 교육 제도에 대해 조사하여 발표함 <한국사> 우리 민족을 전국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3·1 운동의 의미를 초강력 접착제에 비유하여 발표함 <통합과학> 역학 시스템을 공부한 후 ‘시 속의 중력’이라는 주제로 심화 탐구함. 시 <사랑의 물리학> <눈물의 중력> <시월>에서 중력의 의미가 어떻게 쓰였는지 분석함
/2학년/
<수학Ⅰ> 청소년 문해력 저하 문제를 분석하고 원인을 탐색하는 접근법이 인상적임. 문해력 부족 원인을 설문 조사를 활용해 조사함. 영상 매체 시청률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제시함 <수학Ⅱ> 사교육 비용 부담이 높아지는 원인에 대해 탐구함. 대학 서열화, 의대와 명문대 졸업장이 고소득 일자리로 이어지는 사회 구조가 사교육 수요를 증가시킨다고 지적함
/3학년/
<화법과 작문> 2028 대학 입시 제도 개편을 주제로 문제점에 대한 비평문을 작성함 <생활과 윤리>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을 읽고 태아의 지위에 대한 입장을 담은 독서록을 작성함 <영어독해와 작문> 파울로 프레이리가 제시한 ‘비판적 교육학’에서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개념을 제시함
/의미 있었던 선택 과목/
▒ <심화국어>_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배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학에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는 법을 훈련했기에 기억에 남는다.
▒ <고전읽기>_ 많은 학생이 피하고 어려워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보통 문학 시간에 배우는 고전은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암기 위주였지만 이 수업에서는 순수 고전 문학을 감상하며 문학 본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국문과나 국어교육과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과목이다.
▒ <정치와 법>_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부 방법이 정말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과목이다. 선생님이 개념 이해를 중요하게 여기셨는데 그걸 무시하고 문제 풀이만 열심히 했더니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3학년 마지막 시험에서는 개념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문제는 시험 2~3일 전에만 푸는 방식으로 공부해 만점을 받았다.
/주요 창의적 체험 활동/
▒ 자율 활동(1학년)_ 융합 탐구 발표회에서 팀원의 역할을 정리해 알려주고 팀원의 진로에 따라 각자가 돋보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냄. 친구들의 마음을 울리는 정견 발표로 1학기 부회장에 당선됨
▒ 진로 활동(2학년)_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은 후 사유 재산의 소유가 어떻게 인간의 불평등을 야기했는지 탐구함. 또한 루소의 사상이 지니는 교육 시사점을 고민하고 토론함
▒ 동아리 활동(3학년)_ <청소년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를 읽으면서 국어 교육에 관심을 드러냄. 진로 스피치를 통해 <평균의 종말>과 <핀란드 교육혁명>을 읽고 질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저자와 자신의 생각을 비교함. 표준화된 교육 체계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교육관을 연계하여 소개한 점이 인상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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