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학부모의 적은? 몇 가지 답이 떠오르겠지만 ‘게임’이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중독 등 유해성을 걱정하는 학부모들과 달리, 적지 않은 청소년이 단순히 취미를 넘어 미래 직업으로 염두에 둔다. 전망도 밝다. 즐기기만 했던 게임을 유망한 진로로 살펴봤다. 게임 뒤에 숨겨진 사람들과 일에 대한 이야기는 데브시스터즈의 강수지 아티스트, 김한지 게임 디자이너, 임동환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에게 들어봤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의종
도움말 전현미 교사(서울 세명컴퓨터고등학교 홍보부장)
자료 제공 데브시스터즈 참고 한국콘텐츠진흥원·사람인
멘토로 나선 <쿠키런:오븐브레이크>를 만드는 강수지 아티스트, 임동환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김한지 게임 디자이너(아래 사진 왼쪽부터).
희망 진로로 게임 분야를 택하는 청소년이 많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프로게이머와 PC방이라는 새로운 직업·문화를 만든 <스타크래프트>의 대유행 이후 게임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세계 게임 시장의 규모는 150조 원 안팎. 2008년 약 50조 원에서 10년 만에 세 배가 넘는 시장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산업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분석 업체 뉴주가 예상한 2020년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190조 원 이상이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 게임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국내 게임 산업은 <쿠키런> <배틀그라운드> 시리즈 등의 글로벌한 인기에 힘입어 세계 4위 규모를 자랑한다.
산업의 확장성도 게임을 유망 진로로 보게 한다. 이스포츠와 유튜브 스트리밍 등 ‘보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컴퓨터와 통신망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다 보니 첨단 기술 개발·적용이 가장 빠른 분야이기도 하다. 가상·증강현실을 활용한 게임이 이미 출시됐고,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활용한 게임 개발과 서비스도 활발하다.
예를 들어 <리니지> 시리즈로 유명한 엔씨소프트는 자체 개발한 모션 캡쳐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금융권과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군과 융합하려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와 달리 학부모도 게임을 유망한 SW 관련 진로의 하나로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낮다는 것. 학생들은 게임 제작에 관심을 보이지만 세분화·전문화된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대다수가 프로게이머 혹은 게임 스트리머를 선호한다. 기술 발전이 빠르고 유행에 민감한 게임 문화도 진로 탐색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서울 세명컴퓨터고 홍보부장 전현미 교사는 “게임 관련 분야는 매우 많고, 일하는 경로도 다양하다. 최근 관심이 높은 개발 분야의 경우 체험이 중요하다.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실제 ‘업’과 가까운 전공·직업 체험을 해보면 진로 탐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특성화·마이스터고의 전공 안내, 게임 회사 견학 및 관련 교육·대회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 유명 게임 회사들의 채용 전용 SNS나 홈페이지를 살펴봐도 좋다. 어떤 일을 하는지, 지금 쌓아야 할 역량은 무엇인지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
예를 들어 게임 개발의 경우 게임 콘셉트과 전체적인 방향을 총괄하는 기획(디자인), 게임에 필요한 캐릭터·배경·BGM 등의 요소를 담당하는 아트, 코딩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다루는 프로그래밍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진학 게임 관련 특성화·마이스터고,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은 아트·프로그래밍 실무 중심이다. 개발·아트 분야는 각각 컴퓨터·미술 관련 전공자가 많은 편. 기획 분야 재직자들은 전공이 다양하다. 취업을 전제로 2년간 진행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인재원 등의 공공기관 혹은 사설기관의 교육·프로그램이 늘어나는 추세다.
채용 업계 전반에 걸쳐 이직이 잦고, 경력 채용이 활발하다. 연봉은 업체 규모·직군·경력에 따라 차이가 큰 편. 채용 사이트 <사람인>에 공개된 주요 게임 기업의 신입 사원 공채 연봉은 3천만 원 초중반이다. 실제 소득은 성과급이나 복지 혜택이 추가돼 이보다 높은 편이다.
임동환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전자공학을 전공한 <쿠키런: 오븐브레이크> 클라이언트팀 파트장.
<건즈1&2(온라인)> <레이더즈(온라인)> <화이트데이(모바일)>을 개발한 경력 20년의 베테랑 프로그래머.
상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프로그래머
Q. 게임 개발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일반적으로 ‘기획-역할 분담-개발-테스트-배포’ 순으로 진행됩니다. 업데이트는 기획자들이 새로 선보일 콘텐츠·캐릭터, 추가 기능, 개선점 등 개발 목표를 정합니다. 그에 맞게 클라이언트와 서버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등이 모여 업무를 나누고, 개발을 마치면 검증을 거쳐 유저들에게 배포합니다.
Q. 게임 제작 업무는 강도가 매우 세다던데?
출시 시기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바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 수 있어요. 다행히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제도적 장치가 생겼고, 유연적인 업무 환경·다양한 복지 혜택 등을 제공하는 회사가 늘었어요. 무엇보다 학력이나 인맥보다 본인 노력에 따라서 성장 기회가 있어 매력적인 일이죠. 실력 있는 개발자는 항상 부족한데, 코로나19 이후 인재 수요는 더 늘 것 같아요.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단점이 될 때도 있지만요.(웃음)
Q. PC·모바일 게임의 프로그래밍이 다른가요?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요?
큰 차이는 없어요. 다만 모바일은 기기의 성능·구동 환경이 더 제한적이라 유저가 쉽게, 오래 즐길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예로 <쿠키런> 시리즈는 점프·슬라이드만으로 플레이하지만, 다양한 맵 디자인과 이벤트 등으로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개발해요.
게임 회사에서 채용하는 주니어 프로그래머에겐 기본적으로 사용 언어, 개발 환경에 대한 높은 이해도, 코딩에 필요한 알고리즘 활용력이 요구됩니다. 저는 게임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맵의 연동성 등 유저에게 보여지는 부분을 종합적으로 만드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을 하는데, 코딩은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2~3년은 노력해야 기본기를 갖출 수 있고, 계단식으로 실력이 올라가서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다만, 청소년기에 코딩 훈련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해요. 국어 사회 등의 교과는 물론, 인문학 지식을 틈틈이 쌓아두길 권합니다. 기술에 파급력을 더해주는 것이 상상력과 사고력이거든요. 실제 실력이 좋은 프로그래머들은 코딩 실력은 기본이고,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경우가 많아요.
<쿠키런: 오븐브레이크>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 개발 화면 스크린숏.
김한지 게임 디자이너
유저들을 열광케 한 이벤트모드 ‘탐정런’과 ‘얼음파도의 탑’ 등
<쿠키런: 오븐브레이크>의 콘텐츠·이벤트를 기획하는 2년 차 디자이너.
신문방송학·문화콘텐츠학 복수 전공.
게임의 미래를 그리는 게임 디자이너
Q. 게임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나요?
게임 운영 전반과 다음 업데이트 내용을 기획합니다. <쿠키런: 오븐브레이크>는 매달 업데이트를 하는데 먼저 새 쿠키와 그 짝꿍 펫의 능력, 보물의 기능 등을 정하고, 그에 맞는 맵을 구상해요. 게임을 계속 즐길 이벤트·시스템도 만들어요. 새 게임을 개발하듯 심도 있게 작업합니다. 예상치 못한 버그나 시스템의 악용사례, 유저들의 불만족 개선에도 애쓰고요. 게임 문화가 성숙되면서, 게이머들이 킬링 타임 이상의 ‘가치’를 찾고 있어요. 흡입력·완성도를 고루 갖춘 게임, 프로그램·디자인을 잘 전달할 시스템을 고민하는 게임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거예요.
Q. 일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유저들에게 호응을 받을 때요. 기획한 콘텐츠가 ‘재밌다’며 유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거나, ‘이 이벤트 또 해주세요’ 같은 의견을 받으면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머릿속 아이디어가 구현됐을 때, 아티스트·개발자의 손길이 더해져 상상 이상의 작품이 나올 때 성취감도 크죠. 사실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도 많아요. (웃음) 전부 엎어야 할 때도 있고요. 내 아이디어에 책임감을 갖고 비판을 감내하는 것, 힘들지만 게임 디자이너에게는 꼭 필요한 자질이에요.
Q. 게임 디자인도 코딩 실력이 중요한가요?
코딩을 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좋긴 하나, 따로 배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실제 채용할 때도, 특정 전공을 요구하거나 코딩 실력을 확인하지는 않아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전달하는 역량입니다. 의도대로 아티스트나 개발자가 제작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야 하거든요. 저는 PPT와 글을 조합한 ‘더미’ 화면을 보여주는데, 데이터 구조를 짜거나 화면·진행 플로를 그림으로 그리는 등 디자이너마다 방법이 제각각이에요.
더불어 재밌어 보이는 요소를 짜깁기하는 게 아니라, ‘완결된 시스템’을 머릿속에 설계해보고 유저의 입장에서 어떤 경험을 할까 고민해야 하죠. 또 ‘경제 밸런스’, 즉 수익을 도모하면서 유저들이 불편하지 않을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해요. 최신 경향을 빨리 찾고, 과도하지 않은 소비 기준을 판단하고, 이전의 데이터에 대한 분석 등을 반영해 유저와 회사 모두 만족할 지점을 찾는데요, 고등학교 사회 교과에서 배운 기본 지식들이 꽤 많이 도움이 돼요.
<쿠키런: 오븐브레이크> 게임 이벤트 플로 정리 자료 일부.
강수지 아티스트
<쿠키런: 오븐브레이크> 아트팀 소속 아티스트. 허브맛 쿠키부터 메론맛빵 쿠키까지,
5년째 귀엽고 독특한 <쿠키런>의 쿠키들을 선보이고 있다. 애니메이션학 전공.
게이머를 설레게 하는 아티스트
Q. 게임 아트의 영역이 궁금합니다.
게임 속 캐릭터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배경, 이펙트 등 시스템 틀과 관련된 것 이외에 모든 이미지 요소는 아트 파트에서 담당한다고 보면 돼요. 신규 업데이트 콘셉트의 기초가 되는 자료를 찾아 초안을 만들기도 하죠. 재밌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시각화해서 유저들이 납득하고, 설레게 하는 아트를 만드는 게 저희 일이에요.
Q. 개성 있는 캐릭터 디자인의 비결은?
캐릭터의 능력·역할에 맞는지 고민하는 거예요. ‘이 캐릭터는 왜 이 옷을 입었지?’처럼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생겨 캐릭터가 생명력을 가져요. 이때 작업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해요. 필요한 작업 시간·양을 정확히 알고 기간 내에 실제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품질을 유지하는 훈련을 해야 마감을 지킬 수 있죠. 대중성도 갖춰야 하고요.
책이나 영상 등으로 식견을 넓히고, 자신의 감상과 해석을 집요하게 끄집어내는 훈련을 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청소년들에겐 국어나 사회·역사·도덕 수업을 잘 들어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아이디어의 보고가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핼러윈의 시대·지리적 배경을 잘 안다면 훨씬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핼러윈 쿠키를 만들 수 있겠죠?
또 요즘 콘텐츠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매우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문제는 그 기준을 작업에 반영하려면 아티스트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도덕·윤리를 충분히 배우고, 고민해본 경험은 나중에 아티스트로 일할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Q. 게임 아티스트의 출신 학교나 전공이 궁금해요.
팀원들은 그림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만화, 디자인 등 전공이 제각각이에요. 대학을 중퇴한 분들도 있고요.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배움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웃음) 일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많이 배우고, 학교의 장학 혜택·취업 지원을 잘 이용하면 원하는 일에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며 캐릭터를 움직이는 그림이나 연출 의도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구도 등을 배웠는데 지금 큰 도움이 돼요. 학교·전공을 넘어, 자신이 배우고 얻을 것을 꼼꼼히 따져보길 바랍니다. 중·고등학생이라면 회화 실력의 기초를 잘 다져두고, 컴퓨터 프로그램도 접해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쿠키런: 오븐브레이크>에 선보인 메론빵맛 쿠키와 고블린맛 쿠키 디자인 시안(왼쪽부터).
멘토들의 한 마디_
코딩보다 협업 역량 다지길
코딩이나 아트, 기획 등 실무 역량에 집중하기보다는 실제 일할 때 무기가 돼줄 바탕을 잘 쌓을 때예요. 특히 게임 개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협업으로 시작해 협업으로 끝납니다. 원만한 대인관계가 매우 중요하니, 청소년기에 협동의 방법과 태도 등을 잘 익혀두길 바랍니다. 그중 의사소통 능력을 잘 키웠으면 해요. 채용 면접에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말만 반복하는 지원자들이 예상 외로 많아요. 지금 학교에서 수업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게임뿐 아니라 사람을 잘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와 정확한 듣기·말하기 실력과 경험을 쌓아가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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