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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호

COLUMN

2020 시인의 학교 ④ ‘가난한’ 학생을 돕는 학교

조향미 교사(부산 만덕고등학교)

학생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스스로 배울수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주체적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해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고, 아이들과 배우고 가르치며 평생을 보낼 수 있었던것을 생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봄 꿈> 등의 시집과 <시인의 교실> <우리의 문학수업> <작전명 진돗개>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tvN의 <블랙독>이라는 드라마가 학교의 모습을 꽤 세밀하게 다뤘다는 세간의 평을 얻었다. 드물게 교사 집단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특히 비정규직 교사의 문제를 제기한 것에서 더 신선하고 의미가 있었다. 드라마는 신규 기간제 교사에게 진학부 업무와 3학년 담임을 맡기고, 학생부며 내신이며 수능 시험, 수시 모집, 정시 모집 등 평가와 입시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년에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스카이캐슬>만큼은 아니지만, 고교생의 공부란 오직 입시가 학교의 전부인 것처럼 진행된다. 심화반 학생들, 그중에서도 최상층의 아이 둘을 중심에 둔 인물 설정에서 더 그랬다.

그런데 후반부에 와서 구도가 좀 바뀌었다. 교사의 시선에 입시에서 비켜서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학생이 들어온다. 모든 학생을 입시생으로만 바라보던 교사들은 그것이 아님을, 그런 식의 교육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그리하여 심화반을 해체하고 공부를 잘하는 소수만이 아니라, 공부를 못하는 소수도 배려하는 교육, 무엇보다 건전한 시민이 될 다수 학생들을 위한 교육 혁신에 나선다. 드라마의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도 그렇게 바뀌고 있을까.


‘활동 중심’ ‘지식 중심’의 이분법을 넘어

EBS의 10부작 다큐 <다시 학교>도 교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1월 중순에 만났던 전국 혁신고등학교네트워크 워크숍에서 여러 교사들이 이 방송을 언급했는데, 전반부를 본 이들은 주로 비판적이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혁신 교육이 지향하는 학생 중심 수업, 역량 중심 교육을 부정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융합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프로젝트 수업을 중시하는 현재 핀란드 교육도 방향을 잘못 잡은 듯 보여주며 교사에게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과제만 잔뜩 받은 학생을 인터뷰 했다. 전직 교사이자 현 EBS 유명 강사가 세계의 교육을 탐방하는 출연자인데, 그는 다른 나라에서도 판서하고 강의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안도한다. 학생 중심 수업, 활동 중심 수업이 대세인 양 하더니, 결국은 교사가 강의하고 필기하고 학생은 듣고 받아쓰는 수업이 제일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런데 ‘잠자는 아이들’이라는 꼭지에서는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에 잠자는 아이들의 교실로 카메라를 맞춘다. 학교 수업 시간엔 잠을 자서 체력을 보충하고 공부는 인강이나 학원에서 하면 된다는, 학교는 친구들과 인간관계를 쌓으려 다닌다는 학생들.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풍경들이다.

이렇게 선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괴감에 빠져 있던 교사들이 수업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수업 규칙을 정하고 모둠 수업형으로 좌석을 배치해 학생들 스스로 탐구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늘린다. 그리고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 관심을 기울이니 잠자는 학생들이 줄어든다. ‘최고의 수업’ ‘창의력 교육’을 다룬 꼭지에서는 지금의 지식 교육이란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으면서 적용하는 수업을 강조한다. ‘지식 적용 수업’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학생의 ‘배움 중심 수업’ 아닌가.

수업의 목표는 학생의 배움이다. 학생이 교사의 강의를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의 주체가 되어야만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그래서 활동 중심, 지식 중심으로 수업을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이분법이다. 최고의 수업은 탐구하려는 ‘주제(지식 정보, 혹은 태도와 가치)’를 학생들이 잘 배우도록 이끄는 것이다. 잘 배우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도 필요하다.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고민은 결국 ‘무엇’을 얼마나 잘 배우게 할 것인가에 있다.

그래서 파커. J. 파머가 강조했듯이 ‘교사 중심’ ‘학생 중심’의 프레임을 넘어 좋은 수업은 ‘주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서 교사의 강의와 설명도 필요하고 학생들의 탐구, 토의, 토론, 표현과 발표도 소중하다. 수업의 중심에는 뚜렷한 ‘무엇’-‘주제’가 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 공부는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를 교사도 학생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오직 변별을 위한 시험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지식이나 개념 공부는 학습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학창 시절, 가장 괴로웠던 공부가 수학이었다. 이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문제만 풀어댔기 때문이다. 오직 좋은 점수를 얻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서 억지로, 정말 억지로 열심히 했을 뿐이다.

이번 EBS 다큐에서도 ‘수학이 불안한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다뤘다. 수학에 대한 절망감과 불안은 학교 공부 전체에 대한 ‘비호감’으로 연결 된다. 수학을 잘한다는 나라 덴마크의 고교 수업과 시험 문제와 비교하니 한국의 수능 시험은 거의 폭력적이었다. 수능 시험은 30 문항을 100분 동안 풀어야 하는데, 같은 문제를 덴마크 고3 학생에게 보여주니 4시간 동안 풀어도 50%도 풀기 어려울 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덴마크에서 수학 교사가 된 한국인 선생이 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수능 시험에 필요하다는 답을 했는데, 그 대답은 큰 사건이 되었단다.

“절대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돼요. 수능(대학 입시)을 보기 위해서 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나중에 다른 선생님들이 수학을 배우면 좀 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더 논리적으로 너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수학 공부가 필요한 것이라고 대답을 했어야 한다고 말해주시더라고요.”

인공지능의 시대는 수학의 시대라는데, 학생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리는 한국의 수학 교육은 과연 경쟁력이 있는 공부 방식일까. 수학이 이렇게 어려워지는 것은 오로지 수능의 변별력 때문이다. 덴마크에서는 어려운 문제는 수학에 대한 흥미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시험에 잘 출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난도가 높은 수능형 문제에 적응하기 위해서 어려운 문제를 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선 풀이 과정만 맞다면 간단한 계산 실수 같은 것은 큰 감점 요인이 아니다. 그런데 객관식 문항이 많은 한국의 수능 시험은 계산을 잘못하면 오답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수학적 사고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오직 상위 몇 퍼센트를 가르려는 수능 변별력을 위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공부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지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학교에서 난 ‘가난한 학생’이었다”

고2 문학 수업에서 백석의 <흰 바람벽 있어>라는 시를 읽고 감상문을 썼는데, 평소에 공부를 등한시하는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번쩍 띄었다. 여러 교사들과 돌려 읽었는데, 모두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 시를 읽고 학교에서 나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함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학교에서의 가난함이란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부분이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나처럼 공부를 못하면 사람들이 비웃고 무시해서 이 세상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간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절망스러운 일인지, 성적에 대해 별 관심도 없어 보이는 학생이 이런 글을 썼다. 얘도 이랬구나. 누구 하나 공부와 성적에 무관심한 학생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학생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만 강조하면 이런 학생들의 좌절감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시리즈 마지막 회에서 ‘문해력’이 낮은 학생들의 문제에 접근한 것은 이런 점에서 퍽 좋았다. 학생들이 잘해내지 못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고,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실행한 것이다. 문장을 잘 읽지 못하는 초등 2학년 학생에게 방과 후에 담임 교사가 별도의 읽기 수업을 지도한다. 특별한 수업은 봄부터 겨울까지 세 계절 동안 진행된다. 그리하여 5월에 한 글자씩 떠듬떠듬 읽어가던 아이가 12월에는 의미를 이해하면서 문장을 유창하게 읽게 되었다. 0점이던 받아쓰기도 90점으로 올랐다.

‘고모’가 할아버지의 딸이라는 것도 모르던 중2 학생들을 위해서는 문해력 캠프가 열렸다. 사전적 어휘력 부족도 문제였고, 문장을 맥락에 따라 해석하는 사고력의 부족도 문제였다. 학생의 수준에 맞춰 글을 읽는 방법을 캠프에서 차근차근 가르치니 훨씬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집중을 못하고 잠만 자려던 수업 시간에 이제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니 국어 점수가 쑥쑥 올랐다.

다른 나라의 읽기 수업도 보여주는데, 뉴질랜드 초등학교에는 ‘Reading Recovery’ 담당 교사가 한 학교에 3명이나 있어서 속도가 느린 아이들을 별도로 지도한단다. 문해력 교육은 국가가 담당한다는 의식이 확고하다.


성적의 ‘가난’ 앞에 엎드린 아이들을 위해

저출산의 시대, 학생 수가 줄고 폐교되는 학교도 많아진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더욱 소중해졌다. 뒤처졌다고 야단만 치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끌어줄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여러 유럽의 나라처럼 보조 교사 제도를 도입할 수 없을까? ‘문해력 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일반화시켜 학교에도 활용하면 좋겠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면 학교가 재미없어지고, 사회 적응력도 약해진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도록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성적의 ‘가난’ 앞에 엎드려 있는 학생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공교육의 가장 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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