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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33호

COLUMN

시인의 학교 ② 우리 안의 차별과 혐오 모난 조각에서 동그라미로


조향미 교사(부산 만덕고등학교)

학생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습 니다. 언제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주체적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요.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해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고, 아이들과 배우고 가르치며 평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을 생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봄 꿈> 등의 시집과 <시인의 교실> <우리의 문학수업> <작전명 진돗개>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쌤 이 소설 완전 꿀잼이에요!”

“완전 꿀잼이에요!” “와, 이 소설 소름 돋아요.” “이런 거 더 해요.”

조잘조잘 말이 많은 2반 아이들의 반응이다. 최은영의 단편소설 <고백> 수업을 방금 마쳤다. 공부에 집중을 잘 못하는 기원이도 안 졸고 집중해서 잘 들었다. 처음엔 각자 전문을 읽고 나서 질문을 쓰라고 했다. 종이로 받아보려다 친구들 이야기도 듣는 것이 좋겠다 싶어 국어 단톡방을 열었다. 줄줄이 올라오는 질문을 보고, 얘들이 작품을 읽은 거야 만 거야 한숨이 나왔다. 세세하게 의미 파악이 안 된 것을 발견하고 안 되겠다, 강독 수업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전문을 띄워서 중요한 대목을 크게 확대시켜 소설의 맥락과 인물의 행동과 대화에 드러난 심리를 분석하며 두시간 수업을 끝낸 것이다.

‘소울 메이트’라고 할 만큼 친한 세 명의 여고생 이야기다. 직설적이고 조금 거칠게 행동 하는 주나, 조용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를 좋아하는 진희, 그 가운데 글쓰기를 좋아하는 미주가 있다. 미주는 진희를 둥글고 부드러운 진주 같다고 느끼며 같이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눈다. 주나도 진희 앞에서는 말을 삼가며 진희를 아낀다. 진희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사람’이다

그런데 진희가 생일날 뜻밖의 고백을 한다. “너희들은 이해해줄 거라고, 이런 말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라며 꺼낸 말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이다. 주나는 우웩, 토하는 시늉을 하고 웃으며 장난치지 말라고 한다. 진희는 장난 아니라고, 이게 나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미주는 아무 말도 못하고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미주에게 너도 말 좀 해보라고 다그치던 주나는 ‘역겹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난다. 미주는 진희가 ‘그런 사람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왠지 같이 집에 가는 것이 꺼려져서 평소처럼 같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 진희는 혼자 걸어간다. 그 등에 대고 미주는 “생일 축하해.” “내일 보자.” 소리친다. 그러나 진희에게 내일은 없었다. 그날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작년 말에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다가 이 작품을 발견하고 가슴이 설레었다. 내년에 아이들에게 읽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소설로 수업하면 정말 생각할 게 많겠어! 그래서 수능을 마친 고3 우리 반 학생에게 전문을 타이핑시켰다.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언제 이 작품을 한 번 읽게 하지, 하고 있었 다. 그러다 2학기 교과서 수업에 좀 여유가 있던 참에 이 소설을 꺼냈다. 그때 하고 있던 ‘혐오와 차별’이라는 주제 수업의 연장선으로도 좋았다.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편견

아이들은 대체로 학교에서 끼리끼리 무리 지어 논다. 한 학급에 있어도 거의 교류가 없는 관계도 있다. 그러다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에게 안 좋은 소문이 들리면 그것을 사실이라 단정하고, 뒷담화를 이어가면서 소문을 확산시킨다. 학년 초에 한 아이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되었 다. 학급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등교를 거부한 상황까지 되자, 피해 학생 부모가 크게 분노했다. 결국 처음 말을 퍼뜨린 아이는 학교폭력대책자치 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를 받았고, 피해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학급을 옮겼다. 그 뒤론 각자 안정을 찾아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모두 학교를 잘다니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그렇게 커진 것은 가해 학생의 잘못 못지않게 근거 없는 소문을 진실이라 믿고,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를 배척한 다수의 아이들 책임이 컸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가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며, 차별과 혐오는 세계적인 문제다. 다른 인종, 다른 국민, 다른 성정체성, 다른 계급, 다른 가치관…. 모든 분쟁과 갈등의 근본은 진실을 볼 줄 모르는 좁은 생각, 잘못된 가치관에서 기인한다.

차별과 혐오라는 주제를 집중 탐구해야겠다 싶어서, 요즘 일본과의 문제도 많고 하여 ‘수요시네마’ 시간에 학년 전체에게 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카운터 스>라는 다큐 영화로 일본 극우단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 시위와 그에 맞서는 ‘카운터스(인종차별반대행동)’ 회원 들과의 대결을 다루며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어가는 시민단체 활동을 그린 작품이다. 카운터스 중에서 더 열렬하게 혐오 반대 시위를 하는 단체는 ‘오토코 구미(남자조직)’다. 이 단체의 대표는 한때 야쿠자이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타락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정의의 투사로 변신한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감독도 초청을 하여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일본 유학 시절 혐오시위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를 만들 었다고 한다. 혐오 시위를 마주했을 때 재일 조선인들은 칼이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 한국 사람이야 그런 꼴 보기 싫으면 언제든 제 나라로 돌아가면 되지만, 일본을 떠날 수 없는 재일조선인 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 모멸감을 견딜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이 처럼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남의 말만 듣지 말고 자신의 생각 으로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잘못된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든 사람 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젊은이들 중에도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자신만의 편견을 버리지 않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섣불리 단정하는 것, 무자비한 혐오표현이 얼마나 큰 불행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그래서 소설 <고백>을 읽었다. 꼼꼼히 강독 수업을 하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였다.


대중들의 혐오표현이 불러온 죽음

설리, 구하라… 숱한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혐오표현(악플)으로 목숨을 끊었다. 아무렇게나 장난스럽게 갈겨댄 혐오표현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고 있다.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진실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고 편협한 자들이 멋대로 뱉어내는 말들, 그 말에 깃든 독이 쌓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섣불리 단정하는 것, 무자비한 혐오표 현이 얼마나 큰 불행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그래서 소설 <고백>을 읽었다. 꼼꼼히 강독 수업을 하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였다. 이를 테면 주나가 남겼던 ‘역겹다’ 라는 말이 처음엔 진희에게 하는 말로 보였다. 그런데 후반부에 미주가 진희를 ‘사람도 아닌 양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화의 맥락을 다시 살펴보니 주나의 ‘역겹다’라는 말은 미주를 향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진희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은 채 야멸차게 경멸하는 미주의 행동이 주나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나의 거칠지만 장난스런 말보다 미주의 싸늘한 태도가 진희에게 결정적인 절망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가 동성애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면 그 애에게 어떻게 할 거야? 미주처럼 금방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 친구를 볼 것 같니?” 아이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친구를 믿으니까 그동안의 내 생각을 버리고 곧바로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 역시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맞아. 금방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떤 태도가 나올까? 혼란스럽겠지. 그럼 질문해야 하고 친구와 대화를 나눠봐야 하고, 이후에 더 폭넓게 탐구를 해봐야지. 이것이 진실을 찾아가는 방식이야.” 그런데 미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말 좋아했던 친구에 대한 신뢰보다 선입 견이 앞섰던 것이다. 그래서 진희는 이 친구들마저 이렇다면 이 세상의 누가 나를 받아줄 수 있을까, 절망하여 목숨을 버렸던 것이다.

“자, 작가는 왜 이 소설을 썼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 작품을 너희에게 보여줬 겠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고요.” “그것만은 아니야. 동성애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돌아보자는 거지. 실제로 너희들의 생활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편견이 많은 문제를 빚지 않니? 조금 개성이 다른 친구는 이상 하다고 밀어내고. 따돌림도 그래서 생기는 거잖아.”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수업이 우리에게 남긴 것

소설 수업 마무리로 소감문을 받았는데, 학년 초에 문제가 있었던 학급의 반장 은 이렇게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A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도 A 에게 친해지려 하지 않고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를 주변에서 본 적이 있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 무엇이든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던 동성애 문제, 그리고 자신이 행했던 누군가에 대한 선입견을 성찰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중에 또한 명, 새벽에 단톡방에 떠 있는 글을 읽고 좋아서 담임 선생님들 방에 올려 함께 읽고 얘기 나눈 아이가 있다. 학습 태도나 생활 면에서 잘못된 언행으로 종종 지적을 당하는 녀석인데, 뜻밖에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을 쓴 것이다. 진희의 절망에 너무 공감이 된다며, 자신도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을 믿지 못하여 자꾸 불쾌한 행동을 하게 된단다. 이것도 편견인 데, 고치려 하는데 쉽지 않다고 썼다.

쟤는 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태도가 저럴 까. 한숨을 쉬었던 우리 교사들은 답을 좀찾은 느낌이었다. 또 불손한 태도를 보여도 금방 나무라지 말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주도록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삐쭉 삐쭉 모난 조각에서 둥글고 조화로운 동그 라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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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19년 12월 04일 9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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