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씨는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볼 때면,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경험한 코로나19 자가 격리는 꿈의 시작점이 됐다. 2주간 꼼짝없이 방 안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 유튜브에 올라온 케이팝 영상을 모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2차 창작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뒤로 2년 넘게 꾸준히 영상을 올리며 ‘편집’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한데 영상 편집의 매력을 알아갈수록 아쉬움이 남았다. 편집을 넘어, 무엇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획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1 때 SBS 4부작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를 접하며 꿈은 명료해졌다. 거대한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 환경 파괴라는 무거운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연출에 깊이 매료돼 ‘자연 다큐멘터리 PD’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정해진 틀에 맞추기보다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경민씨로부터 열정 활활 고등학교 생활을 들어봤다.
취재 이도연 리포터 ldy@naeil.com
사진 이의종
최경민 | 서울대 인문계열 (강원 대성고)
3년간 이어간 하나의 주제 ‘묻지 마 칼부림’
고등학교 입학 당시 방송·미디어 분야에 대한 꿈이 분명했던 경민씨는 영상 콘텐츠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고민하고 싶었다.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는 ‘방송반’ 대신, 다양한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는 사회과학 토론 동아리 ‘하브루타’에 지원한 이유다. 1학년 때는 2023년 여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른바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다. 사건의 재구성이 아닌, 메시지 중심의 콘텐츠로 풀어내고자 했다. 경민씨는 감독을 맡아 기획부터 연출까지 종횡무진했다.
“한 인물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자극적인 묘사 대신 ‘선택’에 초점을 맞춰 그렸어요. 상담과 사회적 도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죠.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콘텐츠는 기획과 연출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2학년 때 제작한 영상에선 이전 작품에서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가 그대로 등장해 서사의 흐름을 이어갔다. 경민씨도 전편에 이어 감독을 맡았다. 다만 접근 방식에 차이를 뒀다. ‘머튼의 아노미 이론’을 적용해 ‘묻지 마 칼부림’을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과 이를 달성할 현실적 수단 사이의 괴리가 어떻게 개인의 좌절과 일탈로 이어지는지 분석했다.
3학년 때는 동아리장을 맡아 미디어의 ‘프레이밍’을 주제로 심층 탐구를 진행했다. 여러 논문을 통해 청소년은 범죄를 직접 목격하는 것보다 뉴스와 SNS 등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때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사건이 자극적인 틀로 반복 보도될 때 대중의 인식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고, 그 결과 범죄에 대한 인식이 미디어 노출 빈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
여러 사회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연계해 심화 탐구를 이어갔다. 통계나 전체 맥락보다 쉽게 떠오르는 사례나 자주 본 장면에 의존해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인 ‘입수 가능성 발견법(availability heuristic)’을 함께 분석했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정보가 사회에 미칠 영향과 전달 방식의 윤리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처음부터 3년 프로젝트를 계획하지는 않았어요. 1학년 동아리 활동에서 확장하고 싶은 주제를 다음 학년 활동으로 이어갔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큰 프로젝트를 동아리에서 마음껏 할 수 있었기에 가장 의미 있는 활동으로 남았죠. 실제로 서울대 2차 면접에서도 3년간 이어온 ‘묻지 마 칼부림’ 탐구 활동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고, 탐구가 깊어지고 확장된 과정을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었어요.”
내 인생의 책 <멋진 신세계>
경민씨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헤드라인 저널리즘> <미디어2.0> 등 관심 분야의 책을 20여 권 읽으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소설책도 즐겨 읽었다.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 같은 장편 소설을 탐독했다. 재판 심리 형식의 긴 대화문을 따라가며 여러 인물의 주장과 근거를 구분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해력도 길러졌다.
가장 인상 깊은 책으로는 소설 <멋진 신세계>를 꼽는다.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비판적 사고를 갖게 됐고, ‘결핍과 불완전함’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기 때문. 고등학교 생활 동안 크고 작은 실패를 겪을 때도 좌절하기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열정 가득했던 고교 3년 동안, 아쉬운 순간은 없었을까.
“1학년 때는 뭐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어요. 할 수 있는 활동은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있었지만, 방향성 없이 ‘많이 하는 것’에 집중했던 시기는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2학년부터는 내가 왜 이 활동을 하는지, 나의 관심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먼저 고민했어요. 열정은 소중하지만, 에너지를 쏟는 것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기 주도적 활동, 면접으로 빛을 발하다
서울대 지역균형전형은 학교별로 최대 2명까지 추천할 수 있다. 일반전형이 제시문 기반 면접을 하는 것과 달리, 지역균형전형은 1단계에서 서류 100%로 선발한 뒤, 2단계에서 1단계 성적 70%와 학생부 기반 면접 30%를 반영한다.
경민씨는 학교생활에 충실히 임해온 만큼 학생부 기반 면접을 시행하는 지역균형전형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교내 심사를 거쳐 추천 대상자로 선정됐다. 다만 염두에 뒀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는 일반전형으로만 선발하기에 지역균형전형으로 모집하는 인문계열에 지원했다. 과거 국제고 면접에서 준비 부족으로 당황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의 3년간의 활동을 정리하고 예상 질문을 뽑아보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경민씨는 <언어와 매체>에서 ‘인공지능 생성 예술과 인간 창작 예술의 차이’를 주제로 탐구했는데 이와 관련해 2차 면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예상했던 질문이었고, ‘결과물만 놓고 보면 대중이 두 작품을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발표 당시 학생들에게 AI가 쓴 시와 인간이 쓴 시를 구분하게 했지만, 대부분 정확히 가려내지 못했던 일을 근거로 들었다. 꼬꼬무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큰 차이는 없어도 조금의 차이는 있는 것 아닌가?’라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경민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결과물은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개입된 인간의 예술과 AI의 예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반 학생이 아닌 예술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탐구한다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대답했죠. 3년간 크고 작은 발표를 할 때마다 대본을 만들어 숙지한 뒤 완성도 높은 발표를 했고, 그런 습관이 ‘생각을 구조화하는 힘’을 길러줬어요. 덕분에 예상치 못한 꼬리 질문에도 논리를 확장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죠. 다소 아쉬움이 남는 내신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성장시킨 모교의 특색 활동 | 진로 탐색 꿈발표/
“진로 탐색 꿈발표 활동은 영상 제작에 대한 관심을 단계적으로 심화한 과정이었어요. 1차 활동에서는 현재 출시된 영상 생성형 AI의 현황을 조사하고, 기술 발전에 따른 저작권·윤리 문제를 분석한 뒤 개선 방안을 모색했어요. 이어 2차에서는 ‘180도의 법칙’을 중심으로 조명 배치와 카메라 구도를 탐구하며, 직접 제작한 단편 영화와 다양한 작품을 분석해 연출 기법을 설명했고요. 3차 활동에서는 영상 압축의 원리를 이해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할 때 발생하는 화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기술을 적용한 문제 해결 모델을 시연해봤어요”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정보> 희망 진로 탐구 활동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의 촬영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 인공지능 편집 기술을 이야기하고 미래 사회에서의 장단점을 논리적으로 발표 <국어> <심판>을 읽고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하고 ‘약점’을 받아들이는 삶에 대해 깊이 성찰
/2학년/
<문학> ‘인공지능의 문학이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가’를 주제로 창작 주체와 저작권 문제 등 핵심 쟁점을 분석하고, 인공지능 문학 작품의 가치와 인간이 창작자이자 소비자로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깊이 성찰. 다양한 신문 기사와 논문을 폭넓게 조사·분석하는 역량과 주제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 태도가 돋보임 <영어권문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연출 분석’이라는 주제로 코믹북을 영화에 흥미롭게 녹여내는 연출 기법에 대해 분석
/3학년/
<언어와 매체> ‘세대별 미디어 소비 경향과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 해결 방안’을 주제로 발표. 의미 중심 리터러시 교육을 제안하며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강연을 통해 알게 된 현직 PD에게 피드백을 요청해 보완한 후 학생이 직접 체험하도록 함 <진로영어> 진로 대비 영어 인터뷰 활동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의 희망 업무 및 미래의 목표 등에 관해 정확하고 수준 높은 어휘로 표현
의미 있었던 선택 과목
▒ <영화제작실습> 공동 교육과정 과목으로, 관심사가 비슷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이론적 배경과 영상 제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특히 키라이트·백라이트·필라이트로 구성되는 3점 조명 등 촬영의 기본 원리를 배워 인상 깊었다.
▒ <지구과학Ⅰ·Ⅱ> 인문 계열 과목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학적 시각을 더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어서 선택했다. 특히 기후·해양·지질 등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자연 다큐멘터리 PD라는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융합 프로젝트에서 대형 산불 발생 시 인공적으로 비를 내릴 방안을 탐구했던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 <생활과 윤리> 영상 제작 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감수성을 고민하게 만든 과목이었다. 사회적 쟁점과 가치 충돌을 다양한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재미있었다. 특히 생명·환경·과학기술 윤리 등을 다루며, 다큐멘터리는 ‘어떤 관점과 윤리적 책임으로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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