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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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1077호

특별기고 _ 정유훈 교사 (제주 대정고등학교)

“그냥 우리가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 _ 제주교육공동체 100인 시민 원탁회의의 첫걸음









# 1

2020년 3월, 코로나 펜데믹으로 학교는 3월 신학기 개학이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게 되었다. 내게 3월의 봄날은 매해 가장 의욕적이고 설렘 가득한 시기였지만, 4월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기 전까지 그해의 무기력했던 3월은 그저 기다림에 지쳐갔던 시기였다.

3월 신학기에 텅 비어버린 교실을 보며 처음으로 학생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학생 대부분이 농어촌 지역에 살다 보니 공부는 둘째치고, 점심은 잘 챙겨 먹고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학교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아이들의 삶이 학교 밖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아이들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 교사였다. 학교를 넘어 교사시민으로, 어른시민으로, 시민으로서의 나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 2

우연치 않은 기회에 제주의 한 혁신학교에서 공모교장으로 근무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학교와 학교 밖을 넘나드는 교육, 학교와 마을이 함께하며 교육을 넘어 어린이·청소년의 삶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 분이었다. 공모교장으로 부임한 학교에서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설득하며 지역 전체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함께 논의하는 협의체를 만들었다. 책을 통해 이론으로만 보고, 타 시도의 사례에서 풍문으로만 듣던 ‘마을교육’의 실제 사례를 그분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작년 8월, 선생님은 4년의 공모교장 임기를 마치고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면서 자신은 퇴임 이후에 ‘마을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정 선생님, 저와 마을교육에 대해 함께 공부해보실래요?”라고 청하셨다. 고등학교 교사에게는 너무나 낯선 분야지만, 시민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초대였다.


교육으로 연결된 자발적 시민 100인

작년 7월 마침 제주에 정착해 연구를 하고 있던 <교육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저자 홍지오 박사를 모시고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나를 포함해 평소 마을교육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교 교사, 어린이 도서관 관장, 지역아동센터 센터장, 평생학습지도사, 학부모단체 대표, 학교 밖 청소년 센터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모였다.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끝난 후에도 모처럼 만난 반가운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외에도 더 많은 분들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 이야기 중에 무심코 던져진 누군가의 한마디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급속도로 이야기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주변에 교육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아주 많을 텐데요.” “그런 분들이 함께 모여 서로 연결하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에 마지막에 놓인 질문은 결국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지자체는 아직 이런 부분에 의지가 없는 것 같으니 교육청에서 추진해달라고 건의할까요?” “교육청이 나서면 결국 학교 내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요? 정작 우리가 함께 모이고자 하는 분들은 학교 밖에서의 활동가 분들인데요.”

결국에는 다시 또 허탈한 결론 속에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한 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냥 우리가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

그날, 그 자리에 있던 9명은 직업적인 연결이나 특정 조직에 포함된 것도 아닌 그저 학교와 학교 밖 아이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만 있었다. 그 공통점 하나만으로 ‘우리가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추진팀 결성까지 이어졌다.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추진할까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각자 생업으로 바쁜 날이 많았지만 잠깐씩 시간을 내어 온라인 화상회의도 자주 가졌다. 자발적 시민들이 참여하는 교육과 관련한 원탁회의라는 큰 틀을 갖고 하나씩 답을 찾아나가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Q) 행사 주관과 주최 기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A) 꼭 기관 주최일 필요가 있을까요? 참여하는 모든 시민의 이름으로 주최하는 것으로 하죠. 누가 누구를 초대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시민들이 직접 주최가 되어 한자리에 모이는 거예요.
Q)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죠? 분임별 퍼실리테이터도 필요하고, 진행 스태프도 있어야 하고요.
A) 장소 대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후원을 알아봅시다. 그리고 퍼실리테이터나 스태프는 자원봉사를 하실 분들을 찾아봐요.
Q) 참가자 모집이나 홍보는 어떻게 할까요?
A) 참가 신청과 홍보 포스터를 웹자보로 만들고 온라인과 메신저를 중심으로 홍보해요. 홍보를 해주실 분들을 우리가 직접 찾아나서봅시다.
Q) 분임 토의 주제로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을까요?
A) ‘교육공동체, 만남, 연결, 연대, 지지, 응원’을 핵심 키워드로 선정하고 더 고민해봐요.


최종적으로 행사명은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제주교육공동체 100인 시민 원탁회의’로 결정했다. ‘제주교육공동체’라는 새로운 고유명사를 통해 향후 논의를 더 확대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모두가 각자 역할을 나누고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가 신청서 양식을 온라인으로 만들고 홍보 문구를 작성하고 전체 진행 구성, 스태프 모집, 참가자 안내 등을 담당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100명의 자발적 시민이 모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함께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도록 도청, 교육청, 도의회도 찾아가 행사 취지를 알리고 참여를 부탁했다.

10일 동안의 참가 신청 기간이 시작된 첫날 저녁, 떨리는 마음으로 참가 신청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링크가 연결된 내 계정을 열어보았다. 다음날 오전 100번째 참가 신청서가 접수되자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참가 신청서 링크의 문을 닫았다. 대학교수, 교사, 마을교육 활동가, 학부모, 상담사, 동네책방 운영자, 시민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참여를 희망하는 많은 분들의 문의에 나는 연신 “죄송합니다. 공간 문제로 100분 이상이 어렵습니다. 다음에 더 큰 공간에서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분들은 감사하게도 별다른 불만 없이 오히려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자리를 기획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주셨다.


학교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교사시민으로

그렇게 9월의 어느 날, 100명의 시민이 모여 첫 번째 ‘제주교육공동체 100인 시민 원탁회의’가 진행됐다. 퍼실리테이터로 활동가 12분이, 진행 스태프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선생님 5분이 별도 수당 없이 자원봉사로 참여해주셨다. 12개의 분임이 많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2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에 분임별로 모인 분들은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거나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축제처럼 마무리되었다. 비록 이날의 자리가 어떤 변화를 바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자발적 시민 참여의 동력이 언젠가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이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날, ‘마을 선생님’이 꿈인 선생님께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오셨다.

“선생님, 오라동에서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지난번 우리가 했던 형식처럼 마을 단위 원탁회의를 하고 싶다면서 도움을 요청하시네요.”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의 12월 어느 날, 제주에서 처음으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하고 지자체가 직접 후원하는 형태로 마을 단위의 교육공동체 원탁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너무나 반가운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 조성과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어요.”

고등학교에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공동 교육과정과 관련해 지역 간 격차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향후 학교 밖 학점 이수가 본격화될 때는 교육과정과 관련한 지역 간 격차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결국에는 학교 밖에 존재하는 교육 환경과 인프라, 청소년에 대한 관심의 문제다. 이것을 누가 만들어나갈 것이냐에 대한 물음은 일차적으로 교육청과 지자체를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었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그냥 우리가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

학교를 넘어 존재하는 학교 밖 교육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학교공동체의 교사를 넘어 지역공동체의 교사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을교육’이라는 주제가 더 이상 돌봄 문제에 한정된 초등 저학년의 논의라는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고등학교 교사에게 낯선 분야가 아닌 반가운 초대가 되어야만 한다. 2023년에 이루어질 두 번째 ‘제주교육공동체 100인시민 원탁회의’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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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3년 01월 18일 1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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