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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53호

COLUMN | 시인의 학교 ⑦

마음에 불을 지피는 우리의 공동 수업

2020 시인의 학교 ⑦
온라인 개학 그 후, 교사의 배움

◈ 부산 충렬고 조향미 교장은 소설책도 안 읽는 고‘ 딩들’ 이 소설을 쓸 수 있게 하는 분입니다. 학생들이 문학 수업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쓴 소설을 엮어낸 <작전명 진돗개>는 그렇게 탄생한 책이었죠. 부모는 모르는 요즘 10대들의 생각과 고민을 ‘시인의 학교’를 통해 생생하게 전합니다. 마음 한편 ‘작은 불꽃’을 안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시인 교사의 시선을 따라가 보시죠. _편집자



조향미 교장(부산 충렬고등학교)

학생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주체적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시를 쓰는 국어 선생이었다가 평교사 출신 공모 교장이 되었습니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행복하게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 푸른 느티나무 아래서 시 읽는 소리 낭랑한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봄 꿈> 등의 시집과 <시인의 교실> <우리의 문학수업> <작전명 진돗개>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작년 11월, 칼럼 하나를 읽었다. 평소엔 제대로 살필 틈이 없는데 그날은 마지막 페이지의 제목과 삽화가 시선을 끌었다. ‘혼자 있는 아이’. 가방을 메고 있는 소년의 그림이었다. 글을 다 읽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제주도 수학여행 중인 학생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내내 겉도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있을 수 있는,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다. 특별실로 이동할 때, 점심시간 급식실에 동행할 친구가 없다는 건, 아이들에겐 공포의 상황이다.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없어서 1년 내내 급식실에 가지 않는 아이도 있다(작년에 뒤늦게 알았다).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친구 관계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는 것. 배척하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않는 것. 반 배정 발표가 나기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예민하다. 신입생의 경우, 새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으로 입학식을 앞두고 숨이 막힐 정도였다고 한 아이도 있었다.
친구가 없는 것.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 않는 것은 학교폭력의 대표적 유형이다. 주먹을 휘둘러야만 폭력이 아니다. 따돌림은 마음을 칼로 찢는 일이다. 특별하게 악의가 없어도, 자신이 무리 속에 평화롭게 안착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혼자 있는 아이를 잘 배려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아이를 발견해도 성향이 달라서 친구가 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더구나 말이든 행동이든 동급생에게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관계에 매우 소극적이다. 자기 안으로 웅크리고 마음을 잘 열지 못하여 더욱 친구를 사귀기 어렵게 된다.

「그들에게 약자에 대한 감정이입 능력이 결여됐다기보다는 자기를 무리 속에 위치시키는 일이 더 급선무였을 것이다. 이들은 아직 정의, 연민 이런 공감의 낱말을 알기 전이다. 이런 무리 옆에선 어른들 역시 무력하다. 어떤 가시적인 폭력도 없으니 그들 세계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이 또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도….」
_<한겨레21> 2019. 11 혼자 있는 아이(이은혜)

관계의 문제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많이 봐온 터라, 학교에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임과 교과 교사, 학급 활동과 학과 수업을 통해서도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인권 감수성을 길러야겠지만. 학교 전체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교육하고 싶었다.
온라인 수업이 틀을 잡아가고 교안 준비와 피드백으로 교사들은 쉴 틈이 없는데, 나는 무척 답답했다. 학생들을 볼 수는 없고, 선생님들은 혼자 빈 교실에서 컴퓨터로만 수업을 하고 있으니 실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가 어렵다. 나도 어떻게든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과 수업을 할 수도 없고, 담임의 학급조례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어디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있다! 창의적 체험 활동 중 자율 활동에는 학급회의와 각종 교육, 학년이나 학교 단위의 교육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학생인성부에서 담당하는 학교폭력, 금연 교육, 성교육 등은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다. 보통 학급회의 시간을 빌려 동영상이나 문서 자료를 내주는 의례적인 교육에 학생도 교사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교사와 학생의 주체적인 ‘수업’과 ‘학습’이 아니라 상부에서 내려오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제를 살펴볼 때 그렇게 대충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은 물론, 최근의 N번방 사태에서도 보듯 올바른 성교육, 성범죄 예방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더구나 디지털 성범죄에 청소년 가해자와 피해자가 많다는데 교육을 가벼이 할 수 없다.
이런 주제들은 시민-인성 교육의 차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학급회의 시간을 빌려 해오던 것을 올해는 수요일 5, 6교시를 별도로 할애하기로 했다. 이 시간을 ‘민주 시민 교육’이라 이름 붙이고 구글 클래스룸에 학년별로 수업을 열었다. 나도 이 교육에 참여하기로 하고, 학생부 선생님들과 영상 자료, 읽기 자료를 찾아 올렸다. 그리고 간곡한 안내문을 공지로 띄웠다. 학생들에게 직접 띄우는 첫 메시지다.
“여러분이 학교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함입니다. 자립하고 공생하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고 더불어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교육의 가장 절실한 목표입니다.”

학교폭력,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

간단한 퀴즈 문제 외에도 ‘학교폭력과 나의 경험-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무엇이든’이라는 글감으로 글쓰기 과제를 냈다. 몇 시간 뒤, 학생들이 제출한 문서들이 줄줄이 올라왔는데 좀 놀랐다. 기껏 몇 줄 써내고 말 줄 알았더니 한 페이지 넘게 긴 글을 쓴 학생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 내용도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들이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피해를 알게 되었다…’라고 대충 쓰고 싶지만 내 주관과 생각을 적고 싶다. (중략) 학교폭력에 ‘누군가’의 경험담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무서웠던 것은 침묵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나쁜 일이고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침묵한다.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나도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는 동안 피해자는 많은 고통을 겪는다.」

마무리 단계에 가서 그 ‘누군가’는 사실은 자신이라고 밝힌다. 처음엔 의례적인 말로 때우려다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처벌받기를, 그래서 그 행위가 큰 범죄임을 깨닫기를 가장 바란다고 했다. 대충 설득하고 합의하고 화해시키는 식의 대응으로는 가해자를 교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만약 당신이 그 ‘누군가’의 친구라면 “괜찮냐”는 말을 한 번은 해주기 바란다. 작은 말 하나가 삶을 바꿀 수 있다. 그 말이 나에게는 가장 큰 힘이었다.」

이렇게 진지하게 쓴 글들에는 3개 학년 모두 댓글을 달았다. 이런 글을 써줘서 참 고맙다고, 학생들의 고통과 상처에 무심한 학교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썼다. 온라인 수업으로 교과와 담임 선생님들은 너무 바빠서 금방 피드백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꺼내기 힘든 진심을 드러냈는데, 선생님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매우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라도, 아니지, 교장이 직접 피드백을 해주면 학교 교육을 좀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특히 마음에 상처가 있는 학생들의 글은 저장해두고 이름을 수첩에 적어놓는다. 등교를 하면 어떤 기회든 만날 것이다.
초등 1학년에 입학하고 유치원 때의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는 학생. 선생님에게 말해도 초등 1학년이 그럴 리가 있느냐며 믿지 않더란다. 동급생들에겐 고자질을 했다고 더 따돌림을 당하고 선생님에겐 거짓말하는 학생으로 낙인찍혔다. 엄마한테도 말했으나 역시 믿지 않으며 그 애는 좋은 친구니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만 들었단다. 그 학생은 이렇게 썼다.

「남들은 초등학교에 가서 처음 배우는 게 뭘까 항상 궁금했다. 나는 초등학교 가자마자 첫날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왕따당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믿을 수 있었던 부모님은 나를 믿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처음 배운 것이 사람을 믿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너무 싫었다. 남들은 공부하면서 지식을 쌓아갈 때 나는 시험 때도 아무것도 안 하고 무슨 수업이 있어도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다. 나에게 학교폭력이란 학교를 가장 싫어하게 된 계기이자 나의 성격과 내 인생을 크게 바꿔버린 것이다.」

이 학생을 아느냐고 학생부장에게 물었더니, 늘 무기력하게 있는 학생이라고,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싶었더니 이런 상처가 있었군요’라고 한다. 그 오랜 세월 학생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일 기회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불신, 삶 자체에 대한 무기력으로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마음이 춥고 힘들었을까. 학창 시절이 끝나기 전, 그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온라인 수업의 힘

이렇듯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꽤 있는데 전체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었다. 다른 어떤 학교폭력 자료보다 같은 학교 친구들의 글이 큰 교육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가리고 글쓴이가 노출되지 않게 해서 공개해도 되겠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위의 학생은 가장 늦게 답을 주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공개해달라고. 그래서 학생들과 선생님들, 학부모 밴드에도 올려서 함께 읽도록 했다. 등교를 하면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은 학생들이다. 위에서 내려온 ‘교육’만으로는 학생들의 마음을 열게 하기 힘들다. 진심을 담은 ‘수업’과 ‘학습’이 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신입생 한 명이 쓴 글에서 우리의 공동 수업에 용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평생 학교폭력 교육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내가, 이렇게 몰입을 하다니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반응들은 어쩌면 온라인 수업의 힘일 수도 있다. 집에서 조용히 영상과 글을 음미하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것 같다. 오프라인 수업에서 이런 것을 어떻게 이어갈까. 등교를 앞두고 수업과 학교의 변화에 대한 사색과 토론이 필요하겠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자의 내적 동기를 깨우는 일이다. “교육이란 들통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일이다.”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서 인용된 예이츠의 글귀를 마음에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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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05월 13일 9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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