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앞두고 중학생 학부모 앞에 던져진 화두는 ‘독서’다. 모처럼의 여유 시간, 성장의 자양분이 돼줄 좋은 책을 집에서 읽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결같은 바람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 책 선정부터 독후 활동까지 산 넘어 산이다. 여기, 같은 학교의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해 2년 반 넘게 자녀와의 독서·토론·체험 활동을 끌어온 의미 있는 사례가 있다. ‘책(Book) 읽기’와 ‘토론’으로 세상 탐험에 나선 ‘북토대장정’이 바로 그것. 사춘기가 한창인 남학생 7명을 데리고 꾸준히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모임 결성부터 주제·책 선정, 읽기·토론하기, 사후 활동까지 단계별로 따라 할 수 있도록 자세히 들여다봤다.
취재 백정은 리포터 bibibibi22@naeil.com
도움말 허수진 교사(경기 조원중학교)
학습의 연장 아닌 ‘즐기는 독서’ 찾아주기
중학생들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학교·학원 일정 탓에 1달에 1권의 책을 읽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학원을 보낼까 하다가도 자칫 독서마저 학습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일까 싶어 망설여진다는 학부모도 있다. 경기 조원중 허수진 교사는 국어 교사지만 아들의 독서 교육 때문에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고민이 많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허 교사는 “시간 여유가 많은 자유학년 동안 다른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아들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 7명의 부모들이 모여 독서 토론 모임을 만들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출발한 ‘ 북토대장정’은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책(Book) 읽기와 토론으로 세상을 향한 대장정에 나서자는 뜻의 모임 이름도 자녀들과 함께한 독서 활동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허 교사는 “처음에는 토론은커녕 자리에 앉혀놓기도 힘들었다. 한 번은 바퀴 의자가 있는 동아리 방을 빌려서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이 전부 의자를 타고 돌아다녀서 난리가 난 적도 있다. 개인 차는 있겠지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처음 시작은 무조건 재미있고 흥미 있게 이끌어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부모가 읽히고 싶은 좋은 책을 아이가 즐기면서 깊게 읽는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자녀가 어른이 돼서도 스스로 책을 찾아서 읽을 수 있도록 책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면 ‘북토대장정’이 전하는 노하우에 귀 기울여보자. 사춘기 자녀와 마주 앉아 세상사를 논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뭔지어떤 삶을 꿈꾸는지 속 깊은 대화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모임 결성부터 사후 활동까지 따라 할 수 있도록 스텝 1부 터 4까지 단계별로 정리해봤다
활동 사례
독서 토론 모임 북‘ 토대장정’은 경기 과천중 3학년 김건우·김경준·김선홍·문성현·윤승우·이상현·이준건 등 7명의 학생과 그 학부모 14명이 모여 결성했다. 중1의 ‘자유학년’을 보람 있게 보낼 방법을 찾다가 의기투합한 것. 그 후로 지금까지 2주에 1번씩 꾸준히 모임을 지속해왔다. 허 교사는 “독서 주제와 목록 선정은 주로 내가 맡았고, 나를 포함해 부모들이 번갈아가며 진행을 맡아 1학기에 14번의 독서 토론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아이들만으로 팀을 짜고, 독서 선생님을 따로 구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시각, 균형감 있는 사회의식, 기본적인 인문학 소양 정도만 있다면 부모들이 충분히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 교사를 제외한 다른 학부모들은 독서·토론과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진 않았다. 2년 넘게 모임을 꾸준히 끌어오면서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 허교사는 “대단히 수준 높은 토론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2시간 동안 한자리에 차분히 앉아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장난도 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됐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책의 주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혹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고 평했다. 시행착오가 없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자녀들과의 재미난 추억으로 남았다는 전언이다.
Tip
자녀가 친하게 지내는 같은 학년 친구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드는 게 좋다. 보통 독서 토론 모임이라고 하면 독서력·글쓰기 수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년에 따라 엇비슷한 수준인 경우가 많고, 모임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친분과 유대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독서·토론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만으로는 모임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 수 있다. 부모가 멘토로 참여하면 각 가정의 서로 다른 문화, 부모들의 다양한 직업과 사고방식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학부모가 각자의 집에서 ‘북토대장정’ 모임을 진행하는 모습. 모임 시간은 일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다. 다소 부담되고 긴장되지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즐거움에 비할 순 없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다.
“첫 수업으로 진행한 <소녀의 마음>이 ‘제일 재미없는 책’에 뽑혀서 충격을 받았어요. 소녀들의 심리도 한 번 들여다보란 의미에서 고른책인데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고 지루하다며 한바탕 난리가 났죠. 하하. 그걸 만회하고 재미있게 진행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공정무역에 관한 책을 맡았을 때는 공정무역 페스티벌에 가서 직접 물건을 사오기도 했고요. 경험이 전혀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해보니 방법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사춘기의 장벽 없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네요.”
_김건우 학생의 학부모 송미진(43·경기 과천시 부림동)
STEP 02 독서 주제와 목록 정하기
활동 사례
독서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책 목록이다. 허 교사는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면 아이들은 저절로 모인다. 우리도 독서 모임을 처음 시작 했을 때, 중학교에 갓 입학한 점을 고려해 학교생활과 관
련된 주제와 책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예를 들면 시즌 1은 ‘나, 너, 우리’를 주제로 정하고, 자신의 몸과 자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뚱보, 내 인생>, 또래 소녀들의 심리를 이해해보란 의미의 <소녀의 마음>, 학교의 왕따 문제를 다룬 <지독한 장난> 등을 골라 읽혔다.시즌 2는 ‘세상 구경하기’, 시즌 3는 ‘소년, 세상을 만나다’, 시즌 4는 ‘공감’, 시즌 5는 ‘길 위에서 길을 만나다’ 등으로 각 시즌마다 큰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책들을 선정해왔다.
눈높이에 맞고, 재미와 흥미를 주되 책을 통해 얻는 본질적인 유익함도 고려해 책을 고르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허 교사는 “어떤 책을 읽히느냐가 정말 중요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많이 공개돼있다. ‘북토대장정’의 사례를 참고해도 좋고,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물꼬방) 등 신뢰할 만한 곳에서 학년·상황에 따라 읽을 만한 책 목록을 공개하고 있으니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학교도서관의 사서 교사에게 추천을 부탁하거나 지역공공도서관의 인기 대출 목록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Tip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게 이름난 책, 좋은 책을 우선적으로 읽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수준까지 가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욕심을 내려놓고 자녀의 눈높이에 맞는, 자녀가 흥미로워할 만한 책을 중심으로 골라주자. 학교의 왕따 문제와 같이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는 메인 책인 <지독한 장난>과 함께 만화책 <삐꾸 래봉>을 읽게 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STEP 03 책 읽기와 토론하기
활동 사례
‘북토대장정’은 초기에는 책만 읽고 오게 하고 토론 주제는 모임 당일에 각자 포스트잇에 적어서 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허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끌어가길 바라서 그렇게 했는데 단편적인 감상의 나열에 그치거나 책의 주제에는 접근하지도 못한 채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고 털어놨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지금은 책을 읽기 전에 논제를 미리 준다. 책을 읽고, 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모임 이틀 전쯤 해당 책 수업을 맡은 학부모에게 제출한다. 7명의 글이 모이면 각각의 메일로 다시 보낸다. 학생들은 전체 내용을 읽어온 후 토론한다. 허 교사는 “주어진 논제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기 때
문에 토론할 때 보다 깊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토론을 위한 독서 방법으로는 괜찮은 것 같다”고 평했다. 경준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지만 미처 몰랐던 친구들의 반전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토론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활동 소감을 밝혔다.
Tip
‘아이들이 생각하고 말하게 하자. 그래서 수업이 주인이 되게 하라!’ 는 모토 아래 부모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단, 모임 전에 책을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읽어야 좋은 논제를 뽑아서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토론 전 주제와 관련된 영상을 보면 생각의 폭을 넓히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STEP 04 사후 활동
활동 사례
독후 활동이라고 하면 보통 글쓰기를 떠올리지만 몸으로 하는 체험 활동도 의미가 크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들은 책의 내용과 주제를 더 강하게,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허 교사는 “왕따였던 학생들이 원예반에서 만나 서로 우정을 쌓으면서 자존감을 찾아가는 <원예반 소년들>이란 책이 있다. 이 책으로 독서 토론 모임을 한 후에 산으로 보물찾기를 하러 갔다. 숨겨놓은 보물쪽지를 찾으면 과자를 상품으로 주는 평범한 게임이었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 ‘친구’라는 인생의 보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활동이 끝난 후에는 산에서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아이들은 그런 순간을 통해 책을 더 인상 깊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학 때 독서 캠프를 떠나는 것으로 한 시즌을 마무리한다. 준건 학생은 “독서 모임 덕분에 공부에 쫓기면서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나 책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행복하다.나와는 다른, 새로운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활동 소감을 전했다.
Tip
사춘기 아이의 특성상 진지한 분위기에서 감상을 말하라고 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식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책을 즐기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책하고 노는 경험을 만들어주자.
<원예반 소년들>을 읽은 후 산에 오른 문성현, 윤승우, 김건우, 김경준, 이준건, 김선홍, 이상현 학생(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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