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세희 리포터 say2sei@naeil.com
대치동은 언젠가부터 동네 이름이라기보다 교육와 관련된 고유명사가 된 듯합니다. 자녀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대치’. 그런데 이 곳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대치동’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언젠가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를 쉬게 하기 위한 캠핑카까지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었습니다. 실제 목격담에서 시작된 이야기였겠지만, 일부 인터넷 기사에는 캠핑카가 대치동 거리를 점령한 듯한 AI 생성 이미지까지 등장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대치동에서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줘본 사람이라면 ‘저 큰 차를 대체 어디에 세워놓지?’라는 생각부터 했을 겁니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면 도로 가장자리는 아이를 태우려는 차들로 빼곡하지만 주정차 단속 카메라도 곳곳에 즐비해서 아이 한 명 내려주고 얼른 출발하는 것조차 쉽지 않거든요.
캠핑카 이야기가 그토록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 자체가 우리가 ‘대치동’이라는 공간에 많은 상상을 덧씌우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연예 기획사 같던 대형 학원
저 역시 대치동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소위 비학군지에 살아 생활권에서 유명 학원가를 접할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대치동 학원가에 왔을 때는 조금 촌스럽게도 시골쥐가 서울을 보듯 건물들을 올려다봤지요.
시대인재, 두각, 깊은생각 등등 이름만 알았던 학원들이 커다란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고, 외벽에는 유명 강사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는 연예인들의 얼굴이 있다면, 대치동과 그 일대에서는 강사의 얼굴과 이름, 과목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문득 연예 기획사가 떠올랐어요. JYP, SM 같은 유명 학원이 있고, 소위 일타 강사는 스타 못지않은 연봉과 인기를 자랑합니다. 학원 문이 열리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거대한 기획사에서 연습생들이 나오는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학원들이 집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내 아이가 바로 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인기 강사의 수업이나 설명회, 레벨 테스트 신청일이면 부모들은 시간을 맞춰 대기합니다.
콘서트 티켓이라도 예매하듯 정해진 시각에 초를 보며 버튼을 누르고, 몇 초 차이로 금세 마감되기도 하지요. 대학 시절 수강 신청에 실패했을 때보다 아이의 레벨 테스트 신청에 실패했을 때 더 허탈해하는 제 모습을 보니 얼마나 웃기던지요.
많아서 더 어려운 선택
대치동에는 1천 곳이 넘는 학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편했어요. 선택지가 많으니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원 하나쯤은 금방 찾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결정 장애가 심해지더군요.
요즘 카페에 가면 커피 카테고리에 아메리카노뿐만 아니라 플랫화이트, 마키아토, 에스프레소 콘파냐 등등 읽기도 어려운 이름이 즐비하잖아요. 게다가 어렵게 메뉴를 골랐더니 또 원두를 고르라고 해서 골치 아팠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시죠? 대치동에서 학원을 고르는 일이 꼭 그런 것 같았어요.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수많은 메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고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 생깁니다. 앞 사람이 주문한 것을 얼떨결에 따라 시켰다가 의외의 인생 커피를 만날 수도 있지만,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내 입맛은 아닌데’ 하며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학원도 마찬가지 같아요. 유명하다는 이유로, 친구가 다닌다는 이유로, 누구네 아이가 성적이 올랐다는 이유로 골랐다가는 답을 찾기 어려우니까요.
대치동에도 정말 다양한 부모가 삽니다. 이곳의 교육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지척에 살면서도 아이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사교육을 이용하는 집도 있습니다. ‘대치맘’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그 수많은 학원의 수만큼 부모도, 아이도 너무나도 제각각입니다.
몇 번의 설명회, 레벨 테스트, 상담을 거치며 오히려 질문은 단순하게 한 곳을 향해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걸까,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적뿐만 아니라 성향도 봐야 했습니다. 오가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수업의 속도, 숙제의 양, 그걸 감당할 아이의 ‘맷집’까지도요.
혹자는 대치동에는 교육의 정답 같은 것이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대치동에는 정답보다는 수많은 선택과 판단이 있습니다. 대치동식 교육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도, 무조건 손사래 치는 것도 정답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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