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놀이공원보다는 고즈넉한 한옥마을에 더 끌렸다는 나보현씨는 드라마 마니아다. 그중에서도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정통 사극에 애정이 깊다. 학생부 진로 희망 사항의 ‘사극 드라마PD’는 3년 내내 변함없었다. 학교에 역사 동아리가 없는 걸 알고, 친구들을 모아 역사 탐구 자율동아리를 만들었는가 하면, 교내 신문부 활동을 통해 드라마 비평과 드라마PD 인터뷰의 기회도 스스로 찾아나섰다. 덕성여대의 덕성인재전형은 ‘융합적 사고와 창의적 능력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 인재’를 선발한다. 덕성여대 글로벌융합대학에 입학한 보현씨의 합격기를 통해 그 의미를 가늠해본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이의종
나보현
덕성여대 글로벌융합대학
경기 조원고
역사 왜곡 논란 많은 사극 드라마, 이유가 뭘까
사극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덕성여대 면접에서도 드라마에 관한 질문을 받으며 긴장이 풀렸다는 보현씨는 가족여행을 다니며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을 즐겨 찾았던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여행을 자주 했는데 주로 박물관이나 역사 유적지, 한옥마을,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 갈 기회가 많았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방송반, 고등학교 때는 신문반에서 활동하며 역사와 드라마 같은 제 관심 분야를 취재하거나 글을 쓸 기회가 생겼고요. 생각해보면 제 청소년기는 온통 미디어 콘텐츠로 채워졌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역사와 글쓰기, 드라마를 접목하니 ‘사극 드라마PD’라는 진로에 다다르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푹 빠져 봤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배우 김태희와 유아인이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장희빈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이유로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유독 좋아한 드라마이기에 속상하고 안타까웠지만, 어린 마음에도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궁금했다.
“얼마 전에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 논란까지 겹치며 조기 방영된 드라마도 있었잖아요. 세월이 흘렀지만 사극 드라마의 역사 왜곡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역사 창작물을 만들 때 건강한 역사 인식을 지닌 제작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죠.”
조선 시대 역사 기록관 ‘사관’과 사극 드라마PD의 공통점
일찌감치 사극 드라마PD로 진로를 정해놓으니 고등학교 생활의 시작도 순조로웠다.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진로를 빨리 정한 저는 운이 좋은 편이죠. 사극 드라마PD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공부와 활동을 찾아 차근차근 준비하면 됐으니까요.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역사 동아리가 없는 걸 알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역사 탐구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워낙 글쓰기를 좋아하는 데다, 기사 콘텐츠 기획과 취재력을 기르고 싶어 교내 신문반에도 들어갔죠. 특히 무슨 일이든 앞에 나서는 걸 즐기는 성격 덕분에 학급 임원도 빼놓지 않고 맡아 했고요.”
역사 탐구 자율동아리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 역시 동아리 회장인 보현씨의 몫이었다. 역사를 더 재미있고 쉽게 배우기 위해 각자 기억에 남는 조선 시대의 직업에 관해 탐구하고 소개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저는 한국사 시간에 <조선왕조실록>을 배우며 알게 된 ‘사관’이라는 직업을 주제로 발표했어요.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이를 후세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관과 사극 드라마PD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역사의 진실 앞에 본인의 사명을 다했을 사관을 생각하니, 시청률만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최근 드라마의 제작 실태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사극 드라마PD가 지녀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도 한 번 더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청소년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미디어 제작 경험 맛봐
중2 때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4년간 경기도교육청 청소년방송 ‘미디어 경청’ 활동에도 애정을 쏟았다.
‘미디어 경청’ 안에서 청소년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면서 관심 분야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다.
“드라마 칼럼을 쓰기 위해 사극 드라마 촬영장에 직접 가 볼 기회가 있었어요. 촬영 일정을 미리 문의하고 경기도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 한 곳을 찾았죠. 그런데 촬영 현장이 너무 열악해 충격을 받았어요.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의자와 탁자 등 소품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더라고요. 돌아와서 이 문제를 주제로 칼럼을 쓰자고 마음먹고, 후속 자료조사를 했습니다. <정치와 법> 수업 시간에 배운 근로자의 권리 부분을 실마리로 삼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덕분에 드라마 촬영 과정의 의무적 공개, 최소한의 제작 예산 한도 설정 등을 제시하는 칼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칼럼에서 사극 드라마 제작과 관련해 그 내용이 대중의 역사의식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받는다면 국가가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제안했다. 다행히 주변 반응이 좋았다. 미디어 경청의 홈페이지에 실린 건 물론, 우수작으로 뽑혀 지역 신문에까지 보현씨의 칼럼이 게재됐다.
학원과 결별하자 관심 분야에 몰두할 시간 많아 행복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교과 성적 관리도 놓칠 수 없었다.
“시간 안배가 가장 어려웠어요. 성적 수치와 비례하진 않지만, 고교 3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수업 시간에 조는 일 없이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교과 외 연계 활동은, 없으면 새로 만들거나 멀리 찾아나서는 한이 있어도 꼭 해내고야 말았으니까요.”
한국사나 국어, 사회 교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학과 과학 성적이 부족했지만, 하고 싶은 진로가 명확하니 불안감은 적었다. 5학기 평균 내신은 3등급대로 6장의 수시 원서 모두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없는 전형에 지원했다. 입시 막바지에 수능 공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저를 향한 엄마의 무한 신뢰와 지지가 큰 힘이 됐어요. 고1 겨울방학에 학원 숙제에 치여 시간에 쫓기며 지쳐 있을 때도,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엄마가 먼저 제안하셨죠.”
엄마의 지지와 응원 덕분에 불안한 마음을 털고 다니던 학원을 모두 정리했다. 잠을 줄여가며 학교 활동과 교과 공부까지 하느라 버겁던 시간들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EBS 인터넷 강의로 혼자 공부하면서 학원에 안 가니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확실히 많아졌어요. 신문반에서 KBS 드라마PD님을 직접 섭외해 인터뷰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SNS로 무작정 연락했는데도 흔쾌히 수락해주셨죠. 나중에 청소년 드라마 연출을 맡게 됐다며 요즘 10대들의 언어 사용 행태에 대해 취재를 요청하시길래 거꾸로 제가 인터뷰이가 돼드리기도 했어요.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극 드라마의 부활을 꿈꾸며
덕성여대는 2020학년도 신입생부터 수도권 대학 최초로 ‘전면 자유전공제’를 도입했다. 때문에 신입생들이 1년간 다양한 학문을 접하면서 충분히 다양한 전공을 탐색하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현씨는 폭넓은 안목과 소양을 갖춘 드라마PD가 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2학년 때 사학전공으로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덕성여대 모의면접에 참여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면접 첫날 첫 번째 순서로 면접장에 들어가야 해서 긴장감이 엄청났습니다. 한데 면접관님이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얘기로 편하게 대화를 건네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사극 드라마PD라는 꿈을 위해 열심히 학교생활한 부분을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아요.”
보현씨는 덕성여대 사학전공 역사 탐방 동아리 ‘시랑사랑’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얼마 전에는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견학도 다녀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구르미 그린 달빛>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효명세자 때문에 저와는 인연이 깊은 장소예요. 고2 때 드라마를 통해 처음 효명세자를 알게 됐는데, 왕위에 오른 드라마 속 이영과는 달리 오래 살지 못했고 왕위에도 오르지 못했거든요. 효명의 애달픈 실제 삶에 관심이 생겨 드라마 방영 당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특별전에도 갔었죠. 그때 구입한 책을 요즘 다시 꺼내 읽고 있어요. 효명세자를 보면서 역사와 드라마를 오가는 허구와 진실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곤 해요. 역사 왜곡 논란 없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선한 역사 인식을 퍼트리는 사극 드라마 제작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드라마PD를 진로 희망하면서 ‘픽션과 팩션 사이에서 맥 못 추는 사극’이라는 칼럼을 교내 신문에 기고함. 드라마의 역사 왜곡 문제를 주제로 요즘 사극의 과도한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통찰력을 보여줌. 역사 탐구 동아리 회장을 맡아 책임감과 리더십으로 동아리 활동을 알차게 진행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한국사> 평소 역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틈틈이 찾아보는 열정을 보임. 역사 부문에 대한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돋보임. <국어> ‘매체를 활용해 발표하기’ 시간에 ‘드라마 촬영장 테마파크’를 주제로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드라마PD의 작품과 촬영장을 소개함.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학급 자치회장으로 학급의 크고 작은 일을 기획하고 운영함. 학급회의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역량이 돋보임. 신문반 활동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취재해 작성한 기사문이 지역 신문에 학생 기자 자격으로 게재되기도 함. 직접 드라마PD를 섭외하고 인터뷰한 후 기사를 써 교내 신문에 기고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세계사> 수업 시간에 ‘몽골족의 대제국 원나라’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와 원의 관계를 보여주는 드라마 장면을 삽입하는 등 자신이 축적한 역사적 배경지식을 드라마 분야에 응용하고자 노력함. <언어와 매체> 고대·중세·근대 국어에 나타난 언어적 특성을 배우면서 드라마 장면 속 국어 표기법과 그 의미를 알고, 국어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 사료 분석 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수업에 몰입함.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교육청 청소년 방송 ‘미디어 경청’에서 드라마 칼럼니스트로 활동함. ‘나보현의 드라마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편의점 샛별이, 웰메이드 사극의 저력, 짧지만 가볍지 않은 드라마 단막극 등 7편의 칼럼을 게재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심화수학Ⅰ> 과제 집착력이 우수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주어진 과제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에서 문제 해결력을 엿볼 수 있음. <확률과 통계> 바른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교사의 설명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매 수업 시간 전달되는 학생임. 이해 안 되는 내용이 있으면 교사나 급우들에게 적극적인 자세로 질문하는 모습에서 학습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음.
선택 과목
▒ <세계사> <동아시아사> 사학을 전공하고자 했기에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과목들이었다. <세계사>는 한국사가 아닌 동양사와 서양사를 배운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동아시아사>는 나중에 사극 드라마PD가 돼 문화콘텐츠를 만들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다.
▒ <정치와 법> 미래에 건강한 사회인으로 언론 방송 계열에 종사하려면 사회 현상과 이슈들을 이해하고 정치와 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선택했다. 근로기준법과 형법을 배울 때 가장 재밌었다. 이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사설도 작성했다.
▒ <생명과학Ⅰ> <심화수학Ⅰ> 드라마PD라는 직업이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쓰고 그리는 것인 만큼, 인체를 다루는 생명과학 분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생명과학Ⅰ>을 택했다. <심화수학Ⅰ>은 인문 계열에 갇히지 않고 계열을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가 되는 데 필요할 것 같아 선택한 과목.
▒ <한문Ⅰ> 사학을 배우고, 사극 드라마를 연출할 때 한문이 유익할 것 같아 신청했다. 우리 선조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낸 사료를 분석하고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후손들의 역할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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