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계열 진로를 꿈꾼다면 의사와 간호사 외엔 선택지가 없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에 와서 의공학이나 신약 개발 연구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구와 개발 쪽에 관심 있었기에 관련 학과를 찾아보다 만난 곳이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다. 고3 전체 정원이 30여 명인 남해의 소규모 학교에 재학했기에 선택 과목을 결정하는 데 교과 성적이 부담이 됐을 법하다. 그러나 대학 전공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생명과학Ⅱ> <화학Ⅱ>를 비롯해 학교 지정 과목이었던 <확률과 통계>, 선택 과목이었던 <미적분> <기하> <수학과제탐구>까지 모두 이수했다. 학생부에 기재된 수업 활동 중 전공 관련 개념에 대한 확인 질문을 면접에서 받기도 했지만, 의생명과학과 공부에 필요한 과목들을 충실히 이수했기에 편하게 답할 수 있었다는 윤시연씨를 만났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 이의종
윤시연(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경남 창선고 졸업)
소규모 학교의 어려움 속 유의미했던 과목 선택
소규모 학교에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상대평가 성적 체계다. 학생들이 3년 동안 배울 과목을 선택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첫 세대였지만, 진로선택 과목도 여전히 상대평가가 적용된 해였기에 특히 과학 Ⅱ과목 이수를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연씨는 희망 전공 분야에서 공부하려면 <생명과학Ⅱ>와 <화학Ⅱ> 이수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생명과학에서도 광합성 등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화학식은 무조건 따라오게 돼 있어요. 생명과학과 화학은 Ⅱ과목까지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학생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화학Ⅱ>는 선택자가 18명이었어요. <생명과학Ⅱ>는 11명이 선택해 석차등급이 산출되지 않는 소인수 과목이 됐지만요. 생명과학은 워낙 좋아했던 과목이지만, <화학Ⅱ>는 계산이 너무 헷갈려서 어렵더라고요. 화학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매번 붙들고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하하.”
수학을 좋아했던 시연씨에게 이공 계열의 기본이자 수능 출제 과목이기도 한 <미적분> 선택은 크게 고민되지 않았다. 지난해 수능 출제 범위에서는 빠졌던 <기하>의 경우 처음엔 고려하지 않았다고.
“수학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제가 하고 싶었던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MRI(자기공명영상) 등에도 기하가 쓰이더라고요. 배워놔야겠다 싶었죠. 선택자 수가 13명을 넘으면 소인수 과목이 안 되기 때문에 등급 부담이 있긴 했어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결정했어요. 결론적으로는 최종 12명이 선택해 소인수 과목이 되긴 했지만요.”
17~18명이 이수했던 <미적분>과 <화학Ⅱ>는 예상했던 대로 1등급 1명, 2등급 1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높은 원점수로 2등급을 받았으니 시연씨의 노력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소인수 과목인 <생명과학Ⅱ>와 <기하>에서도 모두 성취도 A를 받을 만큼 열심히 했다.
생명과학이 가장 자신 있고 재미있는 과목 되기까지
생명과학 공부를 더 즐겁게 해준 데는 독서 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 1학년 때 전학을 왔었기에 처음 적응하던 무렵에는 무거운 학습 부담에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다.
“선생님들께서 교과 시간에 배운 학습 내용을 단순히 외우지 말고 이해하는 과정을 꼭 거치되, 독서나 다른 과목의 학습 내용과 연관성을 생각하며 공부하라고 강조하셨어요. 제가 찾은 학습의 출발점은 독서 활동이었죠. <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를 읽어보니 유전자 이상 유전병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유전병을 다룬 책과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며 분석법을 접하게 됐고, 수업 시간에 관련 내용을 발표할 기회가 생겨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을 주제로 잡았어요. 평소 관심 있게 봤던 내용이어서 자신 있게 준비했는데요. 특히 친구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법한 부분을 예상해, 탄력성이 없어 눌린 그대로 있는 낫 모양 적혈구를 바람 빠진 풍선에 비유했어요. 정상 적혈구와 비정상 적혈구를 비교하기 위해서였는데, 덕분에 큰 호응을 얻었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학에 대한 흥미는 더 커졌고, 조금은 어렵게 다가왔던 생명과학이 가장 자신 있고 재미있는 과목이 됐다. <생명과학Ⅱ>를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다. <생명과학Ⅱ>에서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유전병 치료가 가능한지 호기심을 이어갔고, <수학과제탐구>에서는 DNA 연구에서 주로 활용되는 매듭이론을 탐구하기도 했다.
시연씨의 고3 시절은 코로나19와 함께 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코로나19 진실 혹은 거짓’을 주제로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백신을 미리 개발할 수 있는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자료 중 한 기사를 통해 ‘DNA 백신과 범용 백신’에 대해 알게 됐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발현되고 나서 개발하기에, 다음에 발현되는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은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었어요. 한데 DNA 백신은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담긴 DNA 자체를 백신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개발이 가능하고, 범용 백신의 경우 변이가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 코어 단백질에 작용하기에 돌연변이가 많이 나타나는 바이러스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백신을 개발하려면 보통 5년 넘게 걸리지만, 빠른 시일 내에 백신이 만들어지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와닿더라고요. 단기간에 개발된 백신의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고요. 이 분야를 연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경험이었어요.”
어떤 여건에서도 노력의 과정 봐주기를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는 지난해 신설된 학과다. 생명 현상의 근원적 원인을 밝히는 기초학문과 이를 활용해 의약품을 개발하는 응용학문이 융합된 전공이다. 신설 학과였지만 유튜브에서 학과 설명회를 찾아들으며 앞으로의 전망은 물론, 장학금 지원 혜택과 학석사 연계 산학협력 프로그램이 잘돼 있다는 점에 끌려 지원을 결정했다.
“수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서 보여준 모습이 학과에서 원하는 인재상과 잘 맞았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있다면 아무래도 어떤 과목을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학생부 종합 전형의 경우는 특히 연결고리가 많고요. 제 주변 친구들도 교과 성적은 3~4등급이었지만 희망 학과에 필요한 역량을 쌓기 위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경우 간호학과를 비롯해 합격한 사례가 꽤 있었어요. 노력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학생부에 담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시연씨는 대입 전형에서 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고려한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는 교육과정에서 성적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 교과 전형이 늘어나면 성적 스트레스가 정말 커질 수밖에 없어요. 1등급이 1명인 과목을 상상해보세요. 교과 전형은 처음부터 아예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예요. 수능 준비에 필요한 사교육을 받기도 힘든 여건이기 때문에 종합 전형에서도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있는 곳은 최대한 배제해야 했고요. 학생들이 어떤 여건에서도 희망을 갖고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전형이 지역의 소규모 학교에는 꼭 필요하답니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수학 동아리에서 빅데이터 강연을 듣고 생명 계열에서 난치성 질환의 치료법 개발과 의료비 부담 절감에 활용되는 게놈 빅데이터에 대해 조사, 진로 인턴십 멘토링 활동을 통해 지역 병원의 방사선 치료 시뮬레이션실 견학 및 종양학과 교수와의 면담 수행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통합사회> 도시화의 문제 중 의료 서비스의 편중을 주제로 대안 모색, <통합과학> <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를 읽고 생명과학의 발전에 대해 발표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동아리 활동으로 병원의 고압산소치료시설 및 원리에 대해 조사, 자율동아리에서 다양한 손 씻기 방법에 따른 세균 감염률 감소 보고서 작성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사회·문화> 의료 불평등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의료보험제도와 연결해 발표, <생명과학Ⅰ> 유전자 이상 유전병 중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에 대해 발표, <심리학> 생리심리학이 뇌과학 발전에 미친 영향 조사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코로나19, 진실 혹은 거짓’을 주제로 탐구 활동 수행, 각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조사하고 동아리 부원들과 온라인 토론 진행, 의료진들을 응원하고 위생수칙의 중요성을 알리는 동영상 제작을 비롯해 ‘덕분에 챌린지’ 진행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미적분> CT 촬영과 3D 프린터 출력, 치료제의 투여량 분석 등에 쓰이는 수학 조사, <기하> 체외 충격파 쇄석기 등에 쓰이는 수학적 원리 탐구, <수학과제탐구> DNA 연구에 쓰이는 매듭이론 조사, <생명과학Ⅱ> 생명공학 기술 중 줄기세포의 정의와 난치병 치료 활용 예시, 윤리적 쟁점 등 소개
선택 과목
▒ <미적분> 이공 계열 전공 공부에서 기본이 되는 과목이기에 기초부터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 선택했다. CT 촬영과 치료제의 투여량 분석 등에 쓰이는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 <기하> 당시 수능 출제 범위에서도 빠진 과목이지만, 의공학 기술에 기하가 쓰이는 범위가 넓다는 수학 담당 교사의 설명을 듣고 선택했다. 소인수 과목 기준을 넘어서면 석차등급이 산출될 수 있다는 부담이 있긴 했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직진한’ 과목이다.
▒ <수학과제탐구> 기존의 수학 문제 풀이와는 다른 접근으로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궁금해 선택한 과목이다. DNA 연구에 쓰이는 매듭이론에서 복잡한 3차원 구조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변형을 예측하는 과정에 대해 탐구했다. 연구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던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을 읽고 탐구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 <생명과학Ⅱ> <화학Ⅱ> 의생명 분야에서 생명과학과 화학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Ⅱ과목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학Ⅱ>는 이수자 수가 18명이었지만, <생명과학Ⅱ>는 11명으로 소인수 과목이 됐다.
▒ <심리학>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으로 이수한 과목. 사람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어 선택했지만,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다루는 수업이어서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고. 대학에 와서 교양 과목으로 선택한 심리학은 긍정심리학에 초점을 맞춰 관심 있던 분야와 좀 더 가까웠는데, 고등학교 때 접해본 경험이 계기가 됐기에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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