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첫날, “아이고, 두야!”
꽃샘추위에 진눈깨비가 흩날린 개학 첫날부터 엄마의 핸드폰은 불이 납니다. 방금 집을 나선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네요.
“엄마, 엄마! 혹시 내 실내화 가방 집에 있어?”
그럼 그렇죠. 해가 바뀌었다고 덜렁대는 성격이 쉽게 고쳐지나요. 그래도 이번엔 가방은 메고 가서 다행입니다. 지난번 수학 학원에선 가방 없이 교실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차에 두고 내렸다나 봐요. 그래도 기죽지 않고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며 칭찬해달랍니다. 등교 첫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실내화를 안 챙긴 친구가 세 명이나 더 있었다며 ‘럭키비키’를 외치네요. 장원영 뺨치는 긍정적인 태도는 좋은데, 언제까지 덜렁거릴 셈인지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올해도 올 게 왔습니다. 해마다 막막한 마음으로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고민되는 학생 기초 조사서! 장래 희망 칸부터 영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꿈과 부모가 바라는 꿈. 나란히 있는 빈칸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이가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해서 순간 말문이 막혔네요.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중2가 되었지만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가 ‘롤 모델’인가 봅니다. <무한도전>에 나온 박명수 어록인 건 아는데, 마냥 웃을 순 없는 중2 학부모네요.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진로 탐색의 중요성이 커진다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반대로 세상이 너무 빨리 아이들에게 진로 선택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삐딱한 마음도 듭니다. 이제 겨우 중2인데 말이죠.
일반고냐 특목고냐 그것이 문제로다
장래 희망 칸을 채우고 나면 다음 고민은 고교 선택입니다. 일반고를 희망하는지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지 함께 묻더라고요. 상위권 학생들이 죄다 특목·자사고로 빠지는 동네이다 보니 학기 초에 미리 알려 비교과 활동과 관련해 조언을 받으라는 뜻일까요?
초등학교 때 베프도 영재학교를 목표로 쉬는 날 없이 공부에 매진하고, 영어 학원 친구도 외대부고 진학을 꿈꾸며 의지를 불태운다는데 우리 집 중학생에게는 그저 남 일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제 옆에서 따끈따끈한 신작 웹툰을 챙겨 보는 걸 보면요. 그럴 시간에 책이나 한 권 더 읽지, 작년 독서 기록이 달랑 두 권 뿐이라 자꾸 가자미눈을 뜨게 되네요.
생각해보면 우리 어릴 적엔 학원도 안 다니고 알파벳도 중학교 가서야 배웠는데, 아이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경쟁 속에 내몰리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입시 준비가 더 빨라지고, 진로 고민도 앞당겨지는 시대,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고 깊이 고민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닐까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꿈이 없다는 아이에게, 요즘 고민이 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고민? 나 요즘 고민 없는데”라는 겁니다. 아니 꿈도 없고 고민도 없고 또 뭐가 없냐고 되물었더니, “나 오늘 공부 할 맘도 없는데? 푸하하~”라며 엄마를 놀리듯 신나게 웃으며 잽싸게 도망갑니다. 이걸 태평하다고 해야 할지, 철이 없다고 해야 할지. 설마 사춘기의 반항일까요? 책가방에 달고 다니는 카피바라 인형처럼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아이. 영 틀린 말은 아닌데, 행복도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이는 언제쯤 알게 될까요?
글 김성미 리포터 grap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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