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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24호

폴란드 욱일기 디자인 음료 생산 중지 이끈 대학생 조중희

“욱일기=하켄크로이츠, 폴란드·한국 시민이 함께 알렸죠”


폴란드 대표 식품가공회사 중 하나인 호르텍스(Hortex)는 올 상반기 출시한 ‘일본 맛’ 음료 생산을 중단했다. 욱일기 디자인의 음료병을 본 카스얀 노바코프스키씨(바르샤바대한국어문학과)와 조중희씨(한국외대폴란드어과4)의 문제 제기에 폴란드인들과 한국 교민까지 합세해 회사에 항의했기 때문. 숱한 정치·외교적 이슈 속에서 ‘핫피플’로 떠오른 조중희 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전호성


조중희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레었다. ‘욱일기 디자인의 주스’를 생산 중단시킨 한국 학생의 기사를 접했을 때 바로 스크랩해 아이들에게 읽어줄 만큼 감동했는데,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외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난 중희씨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사와 한국사에 관심이 많았단다. 초등학교 5학년,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가 대두됐을 때 민간외교사절단 ‘반크’를 알게 돼 활동했다고. “어린 마음에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았어요. 활동을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인정받는 게 참 기쁘더라고요. 이번에도 공동체의 힘이 컸어요. 저 혼자 한 일처럼 부풀려 알려졌지만, 폴란드 친구와 많은 폴란드인들 또 교민들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바로잡을 수 있었죠."



일본이 감춘 피의 역사, ‘SNS’로 드러내다

호르텍스사가 욱일기 디자인을 주스병에 사용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나요?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폴란드 바르샤바 한국문화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어요. 8월 중순, 귀국 준비를 하던 중 바르샤바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폴란드 친구 카스얀이 그 음료를 발견하고 사진을 전송해줬죠. 그리고 “항의 메일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했어요. 카스얀이 없었다면, 전 그냥 귀국했을 거예요.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 그 친구가 정말 고마워요.”


폴란드 대학생이 왜 중희씨에게 항의 메일을 제안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지난 7월, SNS에 욱일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폴란드어로 글을 써 올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걸 본 카스얀이 제가 욱일기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호르텍스에 이점을 알리는 데 제격이라 생각했고요.


언어 전공자의 작은 날개짓, 폴란드 시민을 움직이다

폴란드 생활 중 SNS에 욱일기에 대한 글을 올린 이유가 있나요?

반년간 폴란드에서 지내면서, 폴란드인들이 욱일기와 그 역사적 의미를 모른다는 걸 체감했어요. 욱일기나 가미카제 이미지가 새겨진 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거든요.

폴란드는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아픔이 있어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던 나라 정도로 알려졌지만, 123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나치 독일에 의해 인구의 20%가 학살당했죠. 이런 폴란드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모르기 때문에’ 욱일기에 대해 저항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올린 짧은 SNS 글이 여기까지 왔네요.


이번 일에 대한 보도 중 꼭 바로잡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했죠?

앞서 언론에서 항의 메일을 받은 즉시 음료 생산 중단이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꼭 정정하고 싶어요. 저와 카스얀의 메일을 받고도 호르텍스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SNS에 폴란드어로 이 사안에 대한 글을 올렸죠. ‘욱일기 문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전쟁 범죄와 더불어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제국주의의 상징물’이라고 썼어요. 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제품에 사용할 경우, 폴란드인들이 느끼게 될 고통과 슬픔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라고 반문했어요.

나치에게 희생당한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 이 사안의 중요성을 몰랐던 폴란드인들의 이해를 도운 거죠. 글을 본 수많은 폴란드인들은 분노하고 아파했어요. 의도한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라는 제 생각을 확인해서 기뻤죠. 특히 많은 폴란드인들이 ‘한국과 같은 아픈 역사가 있는 폴란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자국 기업의 행위에 분노하고, 호르텍스사에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어요. 한국 교민들까지 합세해 기업에 항변했죠.

결국 저희가 첫 메일을 보낸 지 2주 만에 호르텍스사 부사장이 해당 음료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답 메일을 보내왔어요. 폴란드 시민과 교민분들이 없었다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았을 거예요. 국적을 뛰어넘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들의 힘을 느꼈죠.



폴란드 음료 회사가 욱일기를 사용했다고?

중희씨가 유튜버 정웅규씨와 이번 사건을 정리한 영상. 더 많은 폴란드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폴란드어로 말하고, 한글 자막을 덧붙였다. - QR코드용 앱으로 열어보세요.




한국에선 소수어로 분류되는 폴란드어를 배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고1 때까지 방황을 많이 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죠. 답은 ‘언어’였어요. 사실 대학에서 전공할 언어로 프랑스어를 염두에 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던 중 폴란드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독일 옆에 이렇게 큰 나라가 있었나? 싶어 찾아보니 인구도 적지 않고 한국 기업도 꽤 많이 진출해 있더라고요. 우연이었지만, 자꾸 폴란드가 궁금해졌고 미래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커져서 전공을 결심하게 됐어요.

사실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어요. 나중에 밥은 먹고살겠냐 하시면서요. 담임 선생님도 말리셨고요. 하지만 의지가 있으니 길이 보이더라고요. 부모님을 설득하려 폴란드 경제에 관한 최근 기사를 스크랩해 A4 용지 60장 분량으로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폴란드의 발전 가능성을 객관화한 셈이죠.

보고서에 설득당하신 건지, 제 열정에 포기하셨는지, 더는 반대하지 않으시더라고요. 하하!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았으니, 다음은 대학을 물색했죠. 국내에서 폴란드어과를 개설한 대학은 언어에 특화 된 한국외대뿐이었어요. 남들은 특수한 대학 혹은 소수어과로 부를지 모르지만, 저한텐 우리 학교, 제 전공이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죠. 대학 4학년인 지금, 이 선택에 대한 자부심은 더 커졌어요.


반성없는 일본, 미래 위해 스스로 직시하길

일본은 우리 정부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2020 도쿄하계올림픽에 욱일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이에 대한 중희씨의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이번 일로 생에 받아본 적 없는, 진심 어린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악플’도 만만치 않게 받았죠. ‘이게 얼마나 예쁜 디자인인데 문제 삼냐?’ ‘싫으면 너 혼자 안 사 먹으면 되지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 ‘욱일기와 나치 문양이 어떻게 동급이냐? 무식하게!’라는 악플은 양반이고, ‘쌀통에 처박혀 죽어라’라는 말도 들었죠. 하지만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댓글은 ‘이 문양은 현재 일본 자위대기로 사용되고 있고 일본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문양’이라는 거였어요. 바로 이게 문제인 거잖아요. 과거 다른 나라에 준 아픔의 상징을 반성 없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것. 그 문양을 보며 많은 이들이 불행하고 슬픈 역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면 그건 분명 재고돼야 하는 대상이 아닐까요? 이건 단순히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닌 일본에게 이유 없이 희생당했던 여러 나라들과의 문제이기도 해요. 밝은 미래를 함께하려면 무엇보다 평화가 필요해요. 일본이 지혜를 발휘해 이웃나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봐요.

끝으로 대학 졸업을 앞둔 중희씨에게 졸업 후 계획을 물었다. 중희씨의 답은 “쉽진 않겠지만 전공을 살린 직업을 찾고 싶다”였다.

“청소년들에게는 지금 입시가 가장 큰 고민이겠지만, 꼭 전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조금 방황해도 괜찮아요. 나를 알기 위해 고민한 시간들은 결코 낭비가 아니에요. 쉽지 않은 입시를 견뎌내려면,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해야 그 마음을 지킬 수 있어요. 저는 폴란드어를 공부하며 행복했고, 그 덕분에 세상을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에 기여할 수 있었어요. 지금, 뜨거운 담금질을 잘 견뎌내고 원하는 길 위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활약하길 기원할게요.”


또 한명의 주인공



카스얀 노바코프스키의 이야기

이번 일의 첫 단추를 꿴 인물은 카스얀이다. 카스얀의 외조부는 볼히니아(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극우파 점령군으로 인해 폴란드로 망명했다. 외조모 또한 나치 독일 군대에 의해 가족과 수용소에 끌려갈 뻔했던 아찔한 기억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이런 가족을 둔 그에게 일제강점기라는 아픔을 겪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폴란드였다. 메일을 통해 이번 일에 대해 물었다.


폴란드에서 소수어로 분류되는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세계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났죠. 제국주의 열강에 희생당한 역사가 폴란드와 참 많이 닮았더라고요. 어려움을 이겨내고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도 인상적이었죠. 한국을 더 깊이 알고 싶었고,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폴란드에서마저 욱일기가 사용된다니 놀라워요. 유럽에서 욱일기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유럽인들도 욱일기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사용한 깃발이라는 사실은 알아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부정적 의미는 잘 몰라요. 유럽 학교에서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보다는 태평양 전쟁과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만 가르치거든요. 어디서도 욱일기의 문양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임을 알려주지 않죠. 저도 대학에서 한·중·일 역사에 대한 수업을 받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어요.


폴란드도 한국처럼 아픈 역사가 있죠?

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처음 침공한 나라이자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국가입니다.

한국에서는 독일이 피해국인 폴란드에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했다는 인식이 큰 것 같아요. 이는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기도 해요. 독일의 정치가들이 거의 매 해 폴란드를 찾아와 거듭 사과하고 있지만, 배상은 다른 문제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독일은 소련(현 러시아)에 배상금을 지불했으나 당시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폴란드는 배상금을 받지 못했어요. 소련 붕괴 후 체제가 달라졌고 현재 폴란드 정부는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어요. 반면 독일은 배상은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요. 잘못된 정치적 합의로 진짜 피해자들은 구제받지 못한 일, 어디서 많이 본 일이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이를 바탕으로 조언해준다면요?

저는 전쟁의 참혹함과 폐해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해왔어요. 그러나 일방적인 미움은 경계하되, 역사를 왜곡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선조들이 그랬듯, 나라를 사랑했으면 해요. 대한민국은 수많은 이들이 일궈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죠. 제가 한글을 공부해 이렇게 한글로 여러분에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그를 증명하고요. 역사는 개개인의 소망이 모여 만들어간다고 믿어요. 조국을 사랑하는 자만이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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